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신화의 복권과 구상미술의 회복

윤진섭

제11회 인도트리엔날레(2005. 1.25 - 2.10)를 다녀와서

Ⅰ.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인도는 신비스런 나라로 자리잡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잡지를 통해서 봐 왔던 수많은 이미지와 구절들, 예컨대 타지마할 묘,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시, 깡마른 간디의 모습,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가에서 목욕하는 순례자들, 화장터의 연기, 때에 절은 거지들 등등은 마치 인도를 포장하는 포장지와도 같다. 그러나 그 포장지를 한 꺼풀 벗겨내고 다시 인도를 들여다본다면, 인도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것이 바로 인도를 여행해 본 경험이 있는 많은 여행자들로 하여금 다시 인도를 찾게 하는 요인이다. 마치 벗기고 또 벗겨도 다시 새하얀 속살을 들어내는 양파처럼, 인도는 늘상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오리엔탈리즘이란 다소 경멸조의 용어로 동양을 지칭했던 유럽인들이 실수를 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대목일 것이다. 남루와 빈곤의 옷자락 속에 숨겨져 있는 여유와 낙천, 그리고 삶에 대한 뜨거운 긍정이야말로 인도를 지탱해온 저력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올해로 열 한 번째를 맞이한 인도트리엔날레가 바로 그렇게 보였다. 다소 두서가 없어 보이는 행사장의 분위기, 국제적 세련과는 거리가 먼 듯한 전시장의 디스플레이 방식, 느릿한 진행요원들의 걸음걸이 등등이 겉으로 보이는 트리엔날레의 면모라고 한다면, 행사장 곳곳에서 느껴지는 인도인들의 강렬한 문화적 자부심은 그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인도의 실체이다. 그러한 자부심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유장한 역사만큼이나 도도한 인도 지식인들의 자국(自國) 문화에 대한 긍지야말로 인도트리엔날레를 이끌어 온 원동력일 것이다.

나는 어느 글에선가 ‘문화란 냄새와도 같다’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남이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더 잘 맡는 것처럼, 각각의 문화에는 독특한 향취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잘 가꿔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당시 그 글을 쓸 때 내가 품었던 생각이었다. 매우 평범해 보이는 이 언설 속에 평범한 진리가 담겨있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인도를 여행하면서 보고 느꼈던 수많은 풍경과 물상들로부터 가장 인도적인 그 무엇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남의 몸에서 나는 뚜렷한 냄새였다. 좀 더 유추하자면, 인도트리엔날레의 전반적인 성격과 델리 시내를 활보하는 전통복장의 수많은 인도인들의 삶의 방식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미의 기준을 서구적인 세련성에 두고 바라보는 오늘날 지구촌 문화인들의 습성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다소 촌스러워 보이는-이것이야말로 유럽인들이 동양을 가리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 수사적 표현의 실체이다-인도트리엔날레의 모습은 카메라의 앵글을 행사 자체에 맞췄을 때 고유의 생명력을 갖고 당당히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의 생명력은 신화적 주제와 구상적 화풍의 압도적인 색채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4개의 전시장에 포진된 수많은 회화와 조각작품의 대다수가 이 범주에 속해 있었으며, 우리의 광주비엔날레나 베니스비엔날레, 기타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 보는 것과 같은 영상이나 설치작품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이다. 나는 지난 1월 중순, 인도에 도착한 뒤 여장을 풀자마자 찾았던 전시장에서 받았던 충격의 여운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National Gallery of Modern Art)의 전시실에 걸려있는 작품들의 대다수와 오프닝 행사가 열린 민속박물관(Crafts Museum)의 비좁은 전시실에서 보았던 작품들의 상당수가 소위 촌스런 미적 취미를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세련된 서구적 취향과는 거리가 먼 듯한 이런 광경은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가 얼마나 서구적 기준에 중독돼 있는가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에피소드일 것이다. 마치 서구의 비엔날레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은 국내의 비엔날레 풍경은 그런 점에서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인도트리엔날레의 출품작들 중에는 다소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의 대학미전 수준에 해당하는 것들도 더러 눈에 띄었지만, 그 표현의 소박함이라든가 미적 취향의 당당한 드러냄만을 두고 말한다면, 가히 인도다운 대국적 자부심의 소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Ⅱ.
34개국에서 온 167명의 작가들 작품 약 300여 점으로 구성된 제11회 인도트리엔날레(2005.1.15-2.10)는 모두 네 개의 전시장으로 구성되었다. 가장 많은 작품이 전시된 라릿 칼라 갤러리(Lalit Kala Galleries, 우리의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 해당)를 비롯하여 인도 현대미술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National Gallery of Modern Art), 국립 인디라 간디 예술센터(Indira Gandhi National Centre for the Arts), 민속박물관(Crafts Museum) 등이 그것이다. 이들 전람회장의 공통된 특징이라면 건물의 규모에 비해 천장이 낮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규모의 설치작품이나 영상보다는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작품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인도트리엔날레가 다른 비엔날레에 비해 영상이나 설치작품의 비중이 낮았던 이유는 이러한 전시장의 조건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동안 이 행사가 추구해온 방향성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였다. 이런 방향성이 곧 행사의 정체성에 다름 아니라면, 인도트리엔날레의 그것은 이번 행사의 총감독인 스쉬마 발(Sushma K Bahl)의 언급처럼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에 녹아있는 예술의 형식들을 들춰내는 것에 그 초점이 있다. 현대의 예술적 풍경에 대한 뷰파인더로서의 트리엔날레는 스쉬마 발의 지적처럼 예술 자체에 대한 고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지역으로부터 온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등이 복합적으로 혼합된 상황을 작품이라는 일종의 뷰파인더를 통해 현대의 예술적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기회를 갖는 데 있다. 전시기획자로서 발의 이러한 바램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왜냐하면, 예술은 그처럼 복합적인 제반 요인들로 혼합된 사회를 비추는 거울임에 분명하고(마치 사회의 목탁인 신문처럼), 예술가들은 투명한 예지와 직관으로 우리의 사회를 건전하게 지켜나가는 목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도트리엔날레의 큐레이팅 시스템에 있다. 알다시피 인도트리엔날레는 각 참가국에 참여작가를 의뢰하는 가장 손쉬운 방식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은 사전에 전시 전체의 밑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단점을 지니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의 국가관을 연상하면 되는데, 베니스비엔날레의 국가관 전시가 이따금씩 전시주제와는 전혀 무관한 듯한 작품들이 출품되는 이유는 주제를 해석하는 커미셔너들의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총감독이 일관되게 콘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나의 관점으로 볼 때 이번 인도트리엔날레에 대한 의미부여는 오히려 인도트리엔날레만이 지닌 독특한 칼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데 집중되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베니스비엔날레나 카셀도큐멘타와 같은 유럽 중심의 매머드급 비엔날레와는 완전히 차별을 이루고 있으며, 전통적인 구상회화나 조각작품들의 대대적인 등장을 통해 신화의 세계가 압도적인 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굳이 신매체의 등장을 강조한 스쉬마 발의 발언(Triennale as a Viewfinder to Contemporary Artscape)은 어쩐지 본말이 전도된 감이 짙다. 그것은 구상회화나 전통적인 조각매체들이 주류를 이루어 온 과거 트리엔날레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총감독의 서구 콤플렉스를 자극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현대적 교육을 받은 비서구권 지식인들이 보여주는 이러한 서구 콤플렉스의 행태에 실망감을 금치 못한다. 아시아권의 내로라 하는 비엔날레의 전시기획자들이 범하는 이러한 오류는 서구라고 하는 거대한 블랙홀에 빠져 들어가는 나방과도 같다. 전 지구촌의 입장에서 볼 때, 균형감각을 상실한 듯한 이러한 사고와 행태는 거대한 자본을 투자하면서 적진을 향해 스스로 손을 들고 투항하는 지휘관의 비열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구상회화면 어떤가. 전시된 작품이 다소 촌스러우면 또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보다 중요한 것은 그릇(매체)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내용인 것이다. 그 내용이 오늘의 세계적 상황이 절실하게 요청하는 것일 때, 그 전시는 어느 것보다 성공적인 것이며 의미가 있게 될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나와 이번 인도트리엔날레는 서구적 의미에서의 세련미와는 거리가 먼, 생소한 촌스러움의 집단적 제시를 통해 오히려 인도트리엔날레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역설임에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한국미술협회의 국제위원회에서 추천한 장동문, 김학곤, 류일선, 문인수, 이강모, 설경철, 신문용, 김남호, 황순칠, 김성회, 이영희 등 11인의 작가가 참가하였는데, 이 작가들 역시 대부분이 구상적 경향을 띄고 있어서 인도트리엔날레의 전체적인 성격과 잘 어울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대다수의 참가국들이 3명 이내의 참가작가를 파견한 것과는 달리 10여 명에 달하는 작가를 참가시킴으로써 공간의 확보는 물론이요, 수상에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고 본다. 이는 한국미협의 경우 거의 관행처럼 굳어져 내려 왔는데, 앞으로 개선하여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Ⅲ.
게으르고 더러운 동양에 대한 표제어로 유럽의 지식인들이 고안해 낸 ‘오리엔탈리즘’이란 용어는 자신들의 우월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애초부터 상대의 정당한 파트너쉽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었다. 동양은 비합리적이며, 유치하고, 자신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의식의 이면에는 유럽인들은 합리적이며, 성숙하며, 정상적이라는 은근한 자부심이 깔려있었다(E. Seid, Orientalism). 그것은 실로 유럽의 지식인들이 지어낸 실체 없는 허깨비이자 근거 없는 편견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의 빈약한 문화와 역사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심리적 콤플렉스를 간파할 수 있다. 기원전 수 천년 전에 이미 고도로 성숙한 모헨조다로 문명을 이룩한 인도를 비롯하여 기원전 5천년 전에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이집트 문명, 기원전 4천년 경에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일어난 메소포타미아 문명, 중국의 황하 문명 등등이 공교롭게도 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그곳은 고도의 문명이 일어날 수 있는 천연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인들이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고 있었을 때, 유럽인의 조상들은 야수와도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유럽인들에게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상흔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오랜 세월이 흘러 세계의 정복자가 되자 그들의 가슴속에 잠재해 있던 심리적 콤플렉스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껍질로 외면화하기에 이른다. 실로 비합리적이며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잔꾀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신화적 세계의 복권과 구상회화의 우위가 전체적인 색채로 드러난 이번 인도트리엔날레는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에서 봤을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무엇보다 신화가 암시하듯 제의(ritual)의 회복과 관계가 깊다. 흔히 물질문명이 진전될수록 정신은 황폐해지기 쉬운데 다양한 시각매체를 통해 현대사회가 처한 제반 상황을 반성하고, 그 돌파구를 찾고자하는 예술가들의 의지가 개별적인 작품을 통해 다양한 주제로 표출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아르헨티나의 모니카 에스피노사의 제의적 성격이 농후한 설치작품들이다. 원형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 이 작품은 의미를 전달하는 시니피에로서의 상징과 사인들로 구성돼 있다. 오월제를 비롯한 고대 제의의 특징인 원형의 마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으로 나의 눈길을 끌었다.

모니카 에스피노사의 작품과 같은 제의 내지는 신화적 주제는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심지어 유럽 지역의 작가들에게서도 흔히 발견되었다. 따라서 이번 인도트리엔날레의 최대 성과는 유럽권역의 비엔날레가 주도하는 설치나 디지털 영상매체의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 아날로그 매체의 잠재력과 예술적 가능성이 현재적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며, 신화를 비롯한 제의의 세계가 현대문명이 처한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한 처방임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아시아권의 비엔날레들이 창설의 의미를 근본적인 입장에서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 월간 아트인 컬처 2005. 3월호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