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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현의 <접합> 연작에 대한 연구

윤진섭

침묵의 메시지



Ⅰ.
나는 지금 한 장의 도판을 보고 있다. 하종현의 <접합(Conjunction>(1974년 작)이란 작품이다. 유성 물감에서 나온 기름이 번져 누렇게 변한 한지의 색이 인상적인 이 작품에서 눈길이 가는 부분은 패널의 사이로 삐죽 모습을 드러낸 흰색 유성 물감의 자취들이다. 파상의 모습을 지닌 이 물감의 덩어리들은 이후 하종현의 <접합> 연작의 시초를 말해주는 증거이다. 마치 벽돌담의 모르타르처럼 일정한 사이즈의 나무판 사이에 얹혀진 흰색 물감의 반죽은 두 나무판이 맞물릴 때 발생하는 물리적 힘에 의해 나무판의 틈새를 비집고 작품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관람자가 보는 것은 한지로 감싼 나무판들과 그 사이에 존재하는 흰색 물감의 자취들이다1).
이 작품은 하종현이 [A.G]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70년대 초반에 주력했던 입체, 설치작업과 그 이후 현재까지 약 30여 년에 이르는 <접합> 연작의 시기를 가르는 분수령을 이룬다. 이 작품에서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흰색 유성 물감이 지닌 물질감이다. 그가 마치 진흙이나 시멘트의 반죽처럼 걸쭉한 유성 물감에 주목했다고 하는 것은 회화적 질료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물감이 지닌 물성(物性)과 더불어 그것을 발현시킨 행위성이다. 왜냐하면 30여 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지속된 <접합> 연작의 요체가 되는 것이 바로 이 ‘물성’과 ‘행위성’, 그리고 그것을 매개하는 신체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 두 개의 핵심어를 중심으로 하종현의 <접합> 연작을 살펴본 것이다.
<Ⅱ.
나는 지금 또 한 장의 도판을 보고 있다. 하종현의 다른 <접합> 작품인 <접합 74-98>이다. 같은 해에 제작된 이 작품은 현재 보는 것과 같은 스타일의 초기적 형태이다. 이 작품이 중요한 것은 마대로 짠 캔버스의 뒷 면에서 걸쭉하게 갠 유성 물감을 나이프로 눌러 전면에 물감의 미세한 알갱이들이 송골송골 맺히게 하는 특유의 기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1970년대 중반 어느날 그가 작업하는 광경을 지켜본 적이 있다. 나무로 짠 거대한 프레임에 마대를 팽팽하게 당겨 마대의 틈이 일정한 간격으로 벌어지게 만든 다음, 그 위에 잘 반죽된 유성 물감의 덩어리를 큰 나이프로 떠서 척척 쳐바르는 광경이었다.

그때 그의 모습은 마치 숙련된 미장이가 잘 이긴 흙을 벽에 바르는 동작과 흡사해 보였다. 하종현의 이 기법은 전통 한옥을 지을 때 흙벽을 만드는 방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옥의 흙벽은 흔히 수수깡을 격자로 엮은 다음 잘 이긴 흙을 공처럼 뭉쳐 벽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밀어내는데, 이때 흙은 수수깡의 격자 틈 사이로 빠져나오게 된다. 일꾼들은 바깥으로 빠져나온 흙을 물에 적신 흙손으로 잘 다져 벽을 매끄럽게 만든다.

이러한 발상이 보여주는 형태적 유사성은 하종현의 작업이 우리의 고유한 문화적 전통으로부터 태동된 것임을 말해준다. 한 민족의 문화가 역사적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공동체적 삶의 양식의 총화라고 할 때, 하종현의 작품에서 보이는 이 근친성은 그의 작업이 지닌 독창성과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입증해 주는 한 단서가 될 수 있다2). 그러나 그의 이러한 작업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국외자적 시선도 존재한다. 가령, 일본의 미술평론가인 미네무라 토시아키(峯村敏明)의 경우, 하종현의 작업을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반에 걸쳐 일본에서 유행했던 모노하(物派)와 연관시켜 해석한 적이 있는데, 이는 지나친 아전인수격의 시각이 아닌가 한다3).

<접합 74-98>은 물감을 캔버스의 뒤에서 밀어내는 기법으로 제작된 것이다. 걸쭉하게 갠 흰색 유성 물감을 뭉텅이로 캔버스의 뒤에 포치한 뒤 페인팅 나이프로 밀어내, 밀려나온 물감의 알갱이들이 뭉쳐 흘러내리는 상황을 연출한 이 작품은 균질적인 화면보다는 원형의 흰색 물감 자취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표정에 작의(作意)를 두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작품은 유성 물감의 찐득한 물질감이 두드러지고 있어 주목된다. 옆으로 여섯 개, 위에서 아래로 각각 네 개, 합해서 스물 네 개의 둥근 원반 형태의 흰색 물감 덩어리들이 각자 표정을 달리하며 흘러내리는 모습을 통해 시간성이 개입된 일종의 프로세스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된 이 일련의 시도는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이르는 기간에는 균질적인 화면 구성으로 옮겨가게 되는데, 이는 회화에서의 ‘평면성’을 의식하는 시기이다4).

<접합 79-1>(도 3)은 균질적인(allㆍover) 화면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접합’이라는 명칭이 시사하듯이, 마대의 틈새에 물감의 질료가 꽉 들어차 마대와 물감이 일체를 이루는 상호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미네무라 토시아키가 미니멀리즘(Minimalism)과의 연관성을5),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가 미국의 후기회화적 추상주의 작가 모리스 루이스와의 방법적 유사성을6) 거론한 이면에는 이 균질적인 화면 효과가 가져오는 시각적 내지 방법적 유사성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의 비평가들이 피력하는 이러한 견해는 비교문화론적인 시각에서의 치밀한 고찰이 뒤따르지 않는 한, 작가의 작품세계가 지닌 독창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특히 그러한 의견의 피력이 엄밀한 비평적 분석이 아닌, 다분히 인상적인 기술(記述)일 경우 작가 개인에게 미치는 폐해는 때로 심각할 수 있다7). 하종현의 작품에 대한 평가에서 비교적 우호적인 비평가는 프랑스의 미술평론가인 필립 다장인데, 그는 하종현의 작품을 추상표현주의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는 관례를 부정하면서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가들인 로버트 라이만이나 브라이스 마든 등과 연관성이 없다고 말한다8).

아마도 이러한 견해들은 하종현의 작품에서 보이는 편평한 그림의 표면과 무채색 계열의 단색에서 오는 형식적 유사성에 기인하는 것 같다. 하종현을 비롯한 동시대의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추출되는 이 평면성의 근원이 미국의 미니멀 회화라고 기정 사실화하는 관례는 한 나라의 문화적 성과를 종속화할 우려가 있다. 이른바 양식의 수용론을 둘러싼 한국 현대미술의 딜레머는 이 문화적 종속화와 관계가 깊다. 1970년대에 나타난 단색화적 경향을 가리켜 단순히 서구의 미니멀리즘에 연원을 둔 한국적 모더니즘의 한 분파라고 할 때, 이와 관련된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 내지 예술적 특수성은 훼손될 위험이 있다9).

문화가 지닌 스밈/수용과 짜임/변용의 관계 혹은 상호작용(interactivity)이란 특수한 성격을 고려할 때, 70년대에 평면성을 요체로 하는 서구의 미니멀리즘이 유입된 것은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용인의 대상이지 경원하거나 배척해야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스미고, 뒤섞여, 짜이고 난 뒤 혹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타난 미적 성과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또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가령, 70년대 단색화로 총칭되는 다양한 작품들에 대한 해석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다.

그 가능성을 열어가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문화적 전통 속에서 미적 선례들을 찾아내는 일이다10). 위에서 언급한 우리의 전통 가옥에서 보이는 흙벽 제작의 방식과 하종현의 <접합> 사이에 보이는 방법적 유사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이우환의 <점에서> 연작과 <선에서> 연작에 나타난 작화 태도와 그가 밝힌 바 있는 ‘바둑론’이 뜻하는 바와는 의미심장한 연결고리가 있다. 그는 점을 찍는 행위를 바둑돌에 비유, 바둑판에 임의의 바둑돌 한 점을 놓을 때 판면이 팽팽히 긴장하는 것처럼 캔버스의 흰 바탕에 물감이 둑뿍 묻은 점을 찍을 때 캔버스 표면이 돌연 긴장감을 유발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11).

이우환의 사례가 보여주는 이 일화는 그가 소시적에 서당에서 한문과 서예를 익힌 경험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미적 모더니티를 체득한 문화적 배경이 다름을 시사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흰 바탕에의 화선지에 검은 색의 먹이 스미면서 나타나는 흔적과 여백의 관계는 서구에서 긴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 원근법에 의한 구축적 이미지 및 그 문화적 배경과 맥락을 달리한다. 즉 서구 모더니즘의 평면성이 인상주의 이후 기나긴 이미지 사상(捨象)의 과정을 거쳐 얻어진 것이라면, 동양의 회화적 전통에 기반을 둔 이미지의 무화(無化)는 애초부터 변증법적 물화(物化)의 여지가 없는 원초적인 개념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위의 무목적성은 자기충족적인 개념일 수 밖에 없다.”12)

하종현의 <접합> 연작에서 나타나는 평면성의 개념은 앞서 인용한 것처럼 “행위의 무목적성에 따른 자기충족적인 개념”에 가깝다. 그것은 화선지에 선을 긋거나 점을 찍을 때 나타나는 흔적과 여백의 관계와도 같다. 하종현에게 있어서 이러한 개념이 구체화되는 것은 80년대 초반에 들어서이다. 물론 서체추상에 가까운, 보다 기호화된 형태들이 행위의 제스처로서 구체화되기 시작하는 것은 2000년대 들어서지만, 그 이전에 이 작품은 작가가 캔버스 표면을 거침없는 회화적 행위를 위해 펼쳐진 장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물감이 지닌 물질감이다. 마대의 틈 사이로 비져나온 걸쭉하게 갠 물감의 알갱이들을 넓적한 평붓이나 특수하게 고안된 나무주걱으로 이리 밀고 저리 밀 때 형성된 흔적들은 무목적적인 행위의 자취들이다. 그것들은 기호로서의 의미소(意味素 )를 지니고 있지 않다. 물감을 짓이겨놓은 듯한 형상은 걸쭉하게 반죽된 진흙 마당을 맨발로 헤집어놓듯이 순수한 유희의 흔적만을 남겨놓고 있다. 이 경우 물감의 걸쭉한 물질감이 드러내는 물성은 대담한 행위의 결과다. 그만큼 하종현에게 있어서 물질과 그것이 드러내는 성질 곧 물성(物性)은 중요한 개념이다.

“물감을 성긴 마대 뒤에서 밀어냄으로써 하나의 물질이 자연스럽게 다른 물질의 틈 사이로 흘러나갈 때, 그리고 흘러나간 물질들의 언저리를 느긋이 눌러 놓았을 때, 내가 바라는 것은 가능한 한 물질 자체가 물질 그 자체인 상태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를 말해줄 수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되도록 말하지 않는 쪽에 있고 싶다.” (1984년 작가와의 인터뷰 중에서, <<김복영, 하종현의 <접합>, 발상에서 전개까지>>에서 재인용)

그의 이 묵언의 메시지는 물질이 드러내는 물성의 발현을 이끄는 직접적 동인(動因) 이 다름아닌 행위이며, 그것의 매개체가 작가의 신체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행위성이 강조되는 것은 제스처의 폭이 큰 일련의 작품에 이르러서이며, 그 이전의 물감의 즉자적인 표정을 손대지 않은 작품들에서는 관조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Ⅲ.
물질이 지닌 고유의 성질, 즉 물성에 대한 탐구는 하종현에게 있어서 중요한 과업의 하나다. 그의 이러한 탐구는 가시철망, 석고가루, 용수철, 솜, 종이 등등 다양한 성질의 사물을 다룬 70년대 초반의 입체작품들에서 비롯되고 있다. 내부에 솜이 들어있는 정방형의 천 패널을 격자형의 가시철사로 감싼 작품은 부드러운 성질의 사물(솜)과 강하고 질긴 성질의 사물(철사) 간의 속성을 대비시킨 것이다13). 이 대비의 등식은 정돈이 안 된 신문지더미와 가지런하게 정돈된 같은 크기의 백지더미를 높이 쌓아놓은 입체작품에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는 가시철사와 솜, 화장지의 부드러운 성질과 둥근 골판지 심봉, 딱딱한 사각의 기둥과 부드러운 석고가루 더미 간의 대비를 통해 이 등식을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이 대비의 등식과 함께 살펴봐야 할 것은 용수철, 가시철사, 실을 이용한 일련의 오브제 성 캔버스 작품이 보여주는 상황성의 표출이다. 이는 횡렬적(橫列的) 구조를 지닌 가시철망 작업, 산포(散布) 구조를 지닌 가시철사 작업, 지그재그식의 구조를 지닌 실 작업, 닳아서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긴장감이 느껴지는 로프 작업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일련의 상황성이 연출하는 사물들의 표정은 <접합> 연작을 통해 다양하게 변용되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유성 물감의 걸쭉한 물질감이 드러내는 물성이 캔버스 표면 위에서 행위를 통해 충돌할 때 나타나는 흔적들의 다양한 표정이 “물질 자체가 물질 자체인 상태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를 말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을 상기시키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14). 근자에 와서 하종현은 서체적인 느낌의, 그러나 엄밀하게 서예적인 것이라고는 잘라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빠져있다. 화면을 종횡으로 누비는, 분절된 직선의 자유로운 조합이 이루어낸 이 세계가 향후 그의 작업의 진행 과정에서 어떤 양상을 띠고 나타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참고문헌
하종현 작품집, 미술사랑, 2001
Ha Chong-Hyun Paintings, Mudima, 2003
김미경, 한국의 실험미술, 시공사, 2003
김미경, 한국현대미술자료 略史(1960-1979)
이일, 한국미술에서의 모더니즘, 한국현대미술에서의 환원과 확산, 열화당, 1991
김복영, 하종현의 <접합>, 발상에서 전개까지, 하종현 작품집, 미술사랑, 2001
필립 다장, 하종현, 불안과 침묵, 하종현 작품집, 미술사랑, 2001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 하종현의 예술세계, 하종현 작품집, 미술사랑, 2001
미네무라 토시아키, 초원과 폭풍우, 하종현 작품집, 미술사랑, 2001
윤진섭, 한국 모더니즘 미술연구, 재원, 2000
윤진섭, 행위를 매개로 한 물성의 다양한 변주, 미술평단, 2001 봄호






1) <접합(Conjunction)>은 지난 30여 년간 하종현의 작품에 붙여진 일관된 명제이다. 캔버스의 뒷면에서 걸쭉하게 갠 물감을 페인팅 나이프로 밀어붙여 올이 성긴 마대의 틈새로 물감이 새 나오게 만드는 기법은 그가 창안해 낸 독자적인 것이다. 이 독창적인 기법은 70년대 초반에 재작된 같은 명제의 작품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윤진섭, 행위를 매개로 한 물성의 다양한 변주, 하종현 정년 퇴임기념전 리뷰, 미술평단, 2001 봄호, 104쪽.

2) 영국의 미술평론가인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도 이와 유사한 지적을 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전통 한옥을 만들 때 수수깡을 이용해 흙벽을 만드는 기법은 몰랐던 것 같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의 방법은 진흙 벽을 만드는 방법에 비유될 수 있다. 이 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진흙을 갈대와 섞고 뼈대로 지탱하면서 엮어야 한다. 이런 종류의 벽처럼, 그의 회화는 신체가 움직여간 명확한 자취를 보여준다. 그러한 자취는 그가 사용하는 재료와 더불어 작가가 신체적으로 연루되어 나가는 기록을 제공한다.
애드워드 루시 스미스, 하종현의 예술세계, 하종현 작품집, 미술사랑, 2001, 200쪽

3) 미네무라 토시아키, 초원과 폭풍우, 앞의 책, 208쪽
“이러한 회화적 수단을 통해서 회화 비판, 회화의 물질주의에 대한 회의, 회화의 비인간화 현상과 객체화 등을 시도하는 그 배경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1970년 전후로 일본의 모노파(Monoha)나 프랑스의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urface)의 사상이 어느 정도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고, 그 무엇보다도 1960년대 후반부터 세계의 예술가들을 매료시켜온 ‘표현의 객체화’라고 말할 수 있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에 대한 동경이 특히 하나의 형태로 그 열매를 맺은 것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미술사학자 김미경은 미네무라의 이러한 관점은 일본중심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김미경, 한국의 실험미술, 시공사, 2003, 231쪽 참조

4) 미술평론가 김복영은 하종현의 <접합>의 시기적 구분을 시도하고 있는데, 1972년에서 1985년에 이르는 ‘전기’와 그 이후의 15년 간을 ‘후기’로 상정한다. 그는 ‘전기’의 특징을 ‘질료의 실험기’로 부르고 있다.
“전기에 해당하는 1972년에서 1984년에 이르는 시기의 <접합>은, 처음 2년에 걸쳐 이루어진 캔버스와 철사라는 이질적인 개성을 갖는 두 개의 물질을 탄성(彈性)과 긴장을 이용해서 접합하고자 한, 다분히 ‘오브제’의 실험 기간을 제외한다면, 1974년에서 1984년에 이르는 10년간은 마대라는 하나의 질료와 물감이라는 또 다른 하나의 질료를 접합하고자 한, 이를테면 ‘질료의 실험기’라고 할 수 있다.”
김복영, 하종현의 <접합>, 발상에서 전개까지,하종현 작품집, 미술사랑, 17-18쪽

5) 미네무라 토시아키, 각주3 참조.

6)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 하종현의 예술세계, 앞의 책, 198쪽 참조.
“그의 작품은 미국의 후기 회화적 추상주의자들, 특히 모리스 루이스(Morris Louis)의 작품과 맥락을 같이 한다. 루이스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추구했던 것은 그가 쓰는 재료와 캔버스의 화합이다. 그렇지만 루이스가 선택한 과정은 하종현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루이스는 밑칠을 하지 않은 캔버스(unprimed cotton duck)와 묽게 풀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여, 그 위에 부어 흔들고 접는 과정을 통해 아크릴이 밑칠을 하지 않은 천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스며들도록 한다. 그가 이런 과정을 선택한 이유는, 루이스의 업적에 대해 열광하는 사람들에 의해 종종 설명되어지듯이, 두 개의 서로 다른 물질이 명백한 물체의 양질성(object quality)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7) 이 두 비평가의 경우 모두 짤막한 서문에서 이러한 견해가 피력되고 있다.

8) 그러나 그 역시 미니멀리즘과의 연관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입장은 아니다.
“단지,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도식적인 이유로 미니멀리즘의 변형물로만 인식할 수 있겠지만......굳이 비교할 필요가 있다면, 아마 장 드고텍스(Jean Degottex)가, 가장 간소하고 간결한 말기의 작품들을 고려할 때, 그의 바로 앞에 놓일 것이다.”
필립 다장, 하종현, 불안과 침묵, 하종현 작품집, 미술사랑, 187쪽 참조.

9) 1970년대의 단색화(Dansaekhwa), 그리고 평면성의 개념과 관련하여 볼 때,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비평적 입장을 원용한 당대의 비평가는 이일이었다.
“그리고 70년대 후반기, 우리는 이 시기를 흔히 미니멀 아트의 시기또는 단색의 시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아마도 이 시기에 있어서처럼 회화가 자기 한정적인 성격을 강하게 띤 일도 없었을 것이며, 그리하여 회화의 평면화(平面化)를 철저하게 밀고 나가면서 반(反)일루저니즘 반표현성 반구성을 그처럼 철저하게 추구한 경우도 없었을 것이다.”
이일, 한국미술에서의 모더니즘, <<현대미술에서의 환원과 확산>>, 열화당, 1991, 133쪽
이일의 이 인용문은 회화에 있어서 근대적 각성이 회화의 존재론적 기반인 평면성, 즉 매체 자체를 하나의 매체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회화 고유의 매체에 대한 인식이 우리 고유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데 단색화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알다시피, 서구미술의 역사에서 평면성이 정치한 미학적 이론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1960년대 초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근대회화(Modernist Painting)에 관한 비평이론에서 비롯된다. 그린버그는 회화에서 환원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으로 평면성과 평면성의 한정이라는 두 개의 관습 내지 규범을 들며, “이 두가지 규범을 준수하는 것만으로도 그림으로 경험될 수 있는 대상을 창조하기에 충분”하다고 보았다. 그는 모더니즘을 자기 비판이 심화된 역사로 간주하고 회화에 있어서 평면성과 순수성을 강조하여 모더니즘의 역사를 자기환원적 경향의 극대화로 보았던 것이다.
윤진섭, 한국 모더니즘 연구, 재원사, 2000, 130쪽 참조.

10) 가령, 미술사학자 김미경은 한국단색조회화를 ‘소예(素藝)’의 개념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김미경, ‘素’-‘素藝’로 다시 읽는 한국단색조회화-<<韓國․五人の作家 五つのヒンセク<白>展>>에 대한 고찰, 한국현대미술자료 略史(1960-1979), ICAS, 2003, 참고).

11) 윤진섭, 한국 모더니즘 미술 연구, 재원사, 2000, 138-9쪽

12) 윤진섭, 앞의 책, 139쪽.

13) 하종현의 작품에 대해 서문을 쓴 바 있는 필립 다장은 가시철사를 이용한 이 일련의 캔버스 작품을 정치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있어 주목된다. 아마도 가시철사가 연상시키는 수용소, 감옥, 노선, 군법, 선언, 전시상황의 이미지 때문인 듯 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는 지나치게 상징성을 부여한 확대해석처럼 보인다. 그 보다는 오히려 용수철이 지닌 가변성과 탄력의 물성, 솜의 유연하며 부드러운 성질, 두루마리 휴지가 지닌 부드러운 속성과 촉각적 성질, 한지에 지그재그 형태로 부착된 실을 뜯어냈을 때 드러나는, 한지와 실이 연출하는 상황성과 충돌의 이미지 등등이 하종현의 <접합> 연작의 전개와 연관시켜 볼 때 더욱 밀접해 보인다.

14) 하종현의 작업에 있어서 캔버스 뒷면은 작업이 최초로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그는 그 위에 걸쭉하게 갠 물감을 페인팅 나이프로 밀어 넣는다. 물감은 성긴 마대의 틈 사이로 빠져나가 송글송글 맺히게 된다. 그렇게 형성된 물감의 장(場)은 작가의 의식이 전적으로 개입하기 힘든, 우연의 결과물이다. 작가의 신체는 단지 개입할 뿐이며, 작가의 의식은 나이프를 쥔 손의 속도와 힘의 강약에 국한된다. 작업의 국면이 바뀌어 캔버스의 전면(관객이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작업에 이르면, 비로소 작가의 의식이 전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때 비로소 작가는 캔버스 화면을 ‘통어(control)’하고 ‘요리(manipulate)’하게 되는 것이다.
윤진섭, 행위를 매개로 한 물성의 다양한 변주, 미술평단, 2001 봄호, 105쪽.

15) 필립 다장은 하종현의 1990년대 초반 이후의 작업에서 서체적 요소를 언급한 바 있다.
“그리 확실치는 않지만, 1990년대 초부터 제작된 그의 최근 작품들 <접합>을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서예는 서체와 가독성(可讀性), 어떤 코드와 약정을 지켜야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바, 여기서는 잘못 된 서예가 아니라 반(反)-서체라는 점에서 분명히 역설적이다. 거기에는 해독할 것도, 읽을 것도 없다. 흔적들은 다시 덮히고, 선들은 겹치고 부서진다. 필립 다장, 하종현 불안과 침묵, 하종현 작품집,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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