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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의 사회적 기능과 힘

윤진섭

퍼포먼스의 사회적 기능과 힘


Ⅰ. 서 론
예술과 사회와의 관계는 미학을 비롯하여 미술사, 예술철학 분야에서 가장 빈번히 다루어지는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이른바 예술의 본질과 기능, 그리고 그 효용을 놓고 제기된 다양한 이론들과 그러한 이론들이 야기한 숱한 논쟁들은 예술 혹은 사회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을 넓히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과 사회의 문제를 총체적인 문화의 준거틀(total cultural framework) 내에서 다룰 경우, 쾌도난마식으로 일거에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사안이 아니라는 데 본 주제의 어려움이 있다. 또한 이 문제는 하우저(Arnold Houser)도 지적한 것처럼, 예술과 사회중 어느 것에 보다 큰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예술작품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난점을 지니고 있다.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낭만주의에서 유래한,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 개념을 중심으로 예술과 사회와의 관계를 거론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본래 고전적 예술 규범에 대한 예술가들의 반항에 지나지 않았던 이 구호가 낭만주의 이후의 예술운동을 거치는 동안 예술의 외적 제약에 대한 저항과 “모든 비예술적이고 도덕적이며 지적인 가치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고 한다1). 그러한 연유로 낭만주의 시인인 고띠에(D. Gautier)에게 있어서 예술적 자유는 “부르주아 가치기준에서의 독립, 공리적 목표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이 목표의 실현에 있어서의 협력의 거절” 2)을 의미하였던 것이다.

그런 관계로 낭만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예술을 위한 예술’의 이념은 모든 실제적인 행동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하나의 상아탑이 되었다. 그들은 기성의 질서를 묵인하는 대가로 안전을 도모하고 관조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또한 낭만주의 이후에 심화되기 시작한 예술에서의 자율성(autonomy)의 확보와 미적 관조에 있어서 칸트의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의 이념은 자본주의가 정착됨에 따라 예술의 전문화 현상을 촉진시켰다. 예술이 전문화됨에 따라 예술작품은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되어 예술 자체의 내재적 혹은 형식적 가치의 추구에 국한되게 된다. 미학사적으로 볼 때, 예술을 바라보는 이러한 태도는 19세기에 접어들어 ‘미적인 것(the esthetics)’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쇼펜하우어를 비롯한 여러 철학자들의 철학적 전통으로부터 발전된 이러한 견해들은 ‘미적태도론(aesthetic attitude theories)’이란 용어로 묶여 미적 태도에 관한 논의의 대강을 이루었는데, 이러한 유형은 메타크리티시즘의 출현과 함께 미적 대상의 본질을 올바르게 해명할 수 있는가 라는 관점에서 미학상의 한 쟁점을 이룬다. 그 중에서 스톨리츠(J. Stolnitz)와 비바스(E. Vivas)에 의해 제기된 무관심적 주목이론은 18세기의 취미론중 ‘무관심성’ 개념을 발전시킨 것이다.

스톨리츠는 미적 태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어떠한 인지의 대상에 대해서건 여하한 궁극적 목적도 갖지않는, 오로지 자체만을 위한 무관심적이고 공감적인 주목이자 관조”로 정의한다3). 여기서 말하는 ‘무관심적’이란 말의 의미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나아가 그 대상을 사용하거나 조정하려고 하지도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벌러흐(Bullough)는 ‘심리적 거리이론(Psychical Distance Theory)’를 제기하였는데, 그의 이론의 골자는 미적 지각에 있어서의 현상을 ‘개인적인 욕구나 목적으로부터 벗어나 있게’ 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벌러흐가 말하는 거리는 “현상을 우리의 실천적이고 실제적인 자아로부터 일탈하게 하는 일”, 다시말하면 ‘심리적으로 억제적인 국면(psychical inhibitory aspect)’을 가리킨다4).

이러한 미적태도론들은 필연적으로 미적 대상, 즉 예술작품의 고립화를 촉진하게 된다. 예술작품을 실제적 관심이나 효용으로부터 분리시켜 관조적으로 지각해야 한다는 이 입장은 서구의 문화사를 통해 이러한 태도에 걸맞는 합리적인 장치들을 산출하였다. 문학에서의 허구, 연극에서의 프로시니엄 아치, 회화에서의 액자, 조각에서의 대좌와 같은 것들은 현실과 예술을 분리시키려고 했던 합리적 지배문화의 산물이었다5). 또한 칸트에서 시작하여 로저 프라이(Roger Fry), 클라이브 벨(Clive Bell)로 이어지는 근대 형식주의 비평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에 이르러 근대주의 회화(Modernist Painting) 이론으로 수렴됨으로써, 현실과 유리된 환원주의적 미학을 낳게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실제적인 관심으로부터 벗어난 미적 지각이나 미적 태도는 모더니티(modernity)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예술의 완전한 규범이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은 플라톤 이후 고대 희랍의 예술 형태를 살펴보면 자명해지는데, 고대 희랍에서의 예술은 폭넓은 현실참여와 정치적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고대희랍에서의 예술은 독재자를 비판하거나 인간조건을 억압하는 부당한 처사에 대항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이다6).

제인 해리슨은 <고대예술과 제의(Ancient Art and Ritual)>라는 기념비적인 저서를 통해 예술과 제의(祭儀)가 본래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하였다는 ‘예제동원설(藝祭同源說)’의 이론적 근거를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그녀에 의하면 고대 사회에서 춤은 농부들이 오월제의 기둥이나 추수한 옥수수 낱가리를 둘러싸고 도는 형태7)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형식이 나중에는 신상이나 제단을 둘러싸고 도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데, 처음부터 배우나 관객의 구분이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드라마(drama)라는 용어의 탄생은 실제적 목적을 지닌 제의에서 ‘무관심성’에 근거를 둔 예술의 분화를 관객의 태도 변화를 기준으로 명확히 보여주는데, 드로메논(dromenon) 8)에서 관객은 실제로 행위를 함으로써 참여자의 자격을 갖고 있었으나 드라마에서는 배우를 통한 대리적 체험으로 바뀌게 된다. 제의와 예술의 차이점은 제의가 하나의 재현인 동시에 삶의 모방(mimesis)인 반면, 예술은 삶이 가져다 주는 정서의 구현이지만 직접적인 행위와는 관계가 없다는 데 있다. 예술의 목적은 그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제의는 실제적 삶과 예술 사이를 연결하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봄의 제전에서 드로메논은 식량의 수급을 위하여 노래하고 춤추는 농부들의 현실적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었으나, 드라마에서의 재현은 한동안 드로메논의 의미와 비슷하게 존속할 수 있었으나 의도는 바뀌게 된다. 인간은 행위에서 벗어났으며, 점차 무용수들과 분리되어 관객이 되었다. 드라마는 이제 그 자체가 목적이 된 것이다9).

예술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고대 예술이 지닌 또 하나의 의미는 정화(purification)의 기능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6세기에서 4세기에 걸친 고대 희랍의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보듯이, 희생 제의는 춤과 노래, 연극을 통하여 공동체적 사회의 정화(淨化)를 기원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10).

아테네에서 매년 봄이면 벌어졌던 부포니아(Bouphonia)라고 불리우는 소의 희생제의는 봉헌과 관련된 것인데, 소를 살해함으로써 희생의 의미를 거룩하게 하며 신성화(sanctifying)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제의에 참석한 참가자들은 소의 살을 나누어가졌으며, 속이 밀짚으로 채워진 가죽은 살아있을 때처럼 세워지고 멍에가 씌워졌다. 여기서 죽은 소는 부활을 의미한다11).

디오니소스(Dionysos) 제의건,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Osiris) 제의건 간에 모든 형태의 희생제의는 죽음과 부활을 나타낸다. 엘리아데(M. Eliade)에 의하면 제의적 정화는 단순한 ‘정화’ 이상의 무엇, 즉 “개인 및 공동체 전체의 죄와 과오가 마치 불에 태워지듯 무화되는” 12) 것을 의미한다. 이 때 ‘무화(無化)’는 단순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의 시작, 즉 거듭남을 전제로 한다. 산 짐승의 희생을 통해 거룩함을 체험하고 공동체의 죄와 과오를 씻어버림으로써 더욱 자유롭고 순수해졌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즉 집단적 난장(orgies)을 통한 승화와 죽음을 통한 부활내지 재생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이상 간략히 살펴본 것처럼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중시하는 입장과 예술 자체의 내재적 가치에 주목하는 입장은 물과 기름처럼 걷돌며 늘 충돌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본고는 이처럼 표리관계를 이루는, 소위 예술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의 관점과 예술의 현실참여를 주장하는 사회적 관점의 차이를 퍼포먼스(Performance Art)를 중심으로 비교․검토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본고는 예술의 자율성 개념에 입각하여 형식적 가치를 통시적 관점에서 진전시켜온 형식주의 내지 순수주의의 입장보다는 예술을 사회 발전의 한 동인(動因)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였다. 특히 후자의 개념은 흔히 지적되는 것처럼 도구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맹점에도 불구하고 형식적 완결성과 예술적 완성도만 확보된다면 일정한 예술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퍼포먼스 또한 충분히 고찰의 대상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따라서 본 논고는 현대예술에서 나타난 퍼포먼스의 다양한 경향 가운데 특히 현실참여적 성격을 지닌 작가의 작품을 통해 퍼포먼스의 사회적 기능과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行爲하는 藝術家들: 純粹냐, 參與냐?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예술의 장르나 매체 중에서 퍼포먼스는 가장 개방된 형식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퍼포먼스는 작가가 추구하는 방향이나 목표가 무엇이냐에 따라 형식주의적 입장과 현실참여적 입장으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예술 고유의 매체적 특성에 주목하는 계열에 속하고 후자는 사회개혁을 추구하는 계열에 속한다. 예술에 있어서 순수성을 추구하는 퍼포먼스 작가들은 가령 신체 자체의 속성이라든가 소리, 빛, 선, 색, 이미지 등과 같은 요소들을 주 표현대상으로 삼는 반면, 현실참여를 주장하는 퍼포먼스 작가들은 퍼포먼스를 사회개혁이나 개조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경향이 짙다. 전자에 속하는 작가들로는 백남준을 비롯하여 이브 클랭(Yves Klein), 피에로 만조니(Piero Manzoni), 그리고 보디 아티스트들을 들 수 있고, 후자의 대표적인 예로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를 비롯하여 게릴라 아트그룹(Guerrilla Art Group)과 자유공생군(Symbionese Liberation Army: SLM) 등이 있다. 그러나 형식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퍼포먼스 특유의 속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구분이 분명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퍼포먼스가 이처럼 형식실험을 중시하게 된 이유는 그것이 아방가르드 및 모더니즘의 미학적 실천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진행돼 왔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특히 개념미술이 팽배했던 1970년대는 금전적 가치로 교환될 수 없는 ‘정보(information)’로서의 예술작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취지에 부응하는 퍼포먼스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퍼포먼스들은 기존의 예술 관념이나 규범을 전복시키고자 했던 아방가르드의 입장을 충실히 견지하면서 제도화된 예술의 관습에 도전하는 무기가 되기도 했다13). 로즐리 골드버그의 표현을 빌리면 퍼포먼스는 ‘전위중의 전위(an avant avant garde)’로서 20세기 미술의 역사를 통하여 아방가르드 운동의 선도적 역할을 해 왔다.

퍼포먼스에서 형식실험의 요소가 많이 발견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퍼포먼스 작가들 가운데 상당 수가 개념미술이나 대지예술, 환경미술, 영화, 비디오, 테크놀로지, 대중문화와 같은 예술 분야의 작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진다. 퍼포먼스가 다양한 매체나 장르를 통합하는 예술의 한 형식(unifying mode)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14), 공동작업의 방식을 통해 새로운 예술 형식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매체적 유연성은 퍼포먼스가 지닌 장점임에 분명하다.

가) 純粹 藝術의 입장
화가나 조각가들이 퍼포먼스 작업을 병행했던 예로는 미래파나 다다, 혹은 초현실주의의 경우를 들 수 있지만, 순수하게 회화에서 출발하여 점차 퍼포먼스적인 요소를 가미, 결과적으로 퍼포먼스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작가로는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을 꼽을 수 있다.
이는 평론가 해롤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가 폴록이나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의 격렬한 붓질의 특성을 지칭하여 액션 페인팅이라고 명명했던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폴록의 드리핑 회화가 지닌 회화적 특질 속에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담겨 있었음을 말해준다. 폴록의 드리핑 회화는 비록 행위의 결과물로서의 작품이 전시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지만, 바닥에 놓인 크고 넓은 화폭을 하나의 투기장(arena)으로 삼아 폭발적인 힘을 쏟아부었던 그의 행위는 단순히 캔버스 앞의 방관자로서의 화가의 역할에서 벗어나 행위 자체가 곧 회화의 주제가 되는 행위자로 전환시켰다15). 폴록의 이처럼 거침없이 전통적 규범을 파괴하는 행위는 2차원 평면의 재현회화가 비로소 종언을 고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것임과 동시에 제의(祭儀)가 인간적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고대 희랍의 전통으로 회귀하는 것이다16). 제의적 성격이 강한 젝슨 폴록의 드리핑 회화에 대한 앨런 캐프로(Allen Kaprow)의 이러한 통찰은 예술이 제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제인 해리슨의 고찰을 상기시킨다. 제인 해리슨은 <고대예술과 제의>에서 오늘날 단순히 외적 현실의 재현 내지 모방을 의미하는 미메시스(mimesis)가 희랍시대의 제의에서는 내적 리얼리티의 표현을 의미했다고 밝히고 있는데17), 이는 작가의 내면적 정념(情念)을 밖으로 투사하는 표현주의나 추상표현주의, 혹은 앵포르멜(Art Informel)의 표현방식과 흡사한 것이다.

고대 희랍의 제의와 현대의 액션 페인팅의 근친성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행위예술가 헤르만 니취(Hermann Nitsch)의 신비극(Orgies Mysteries Theatre)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도살된 양을 해체하는 제의적 형식을 작품의 토대로 삼고 있는 그는 그 모델을 고대 희랍의 디오니소스 희생제의나 소포클레스의 ‘외디퍼스 왕’과 같은 비극에서 이끌어 낸다. 현대판 희생제의인 니취의 행위극(Action Play)은 극단적인 잔혹성으로부터 야기되는 공포를 통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심리적 카타르시스와 함께 감정의 승화를 느끼게 한다. 즉 집단적 난장(Orgies)을 통한 정화(靜化)를 유도하며 죽음을 통한 탄생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니취의 행위극은 고대 이집트 및 희랍의 희생제의와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18).

한편, 바닥에 눞혀진 폴록의 거대한 캔버스는 잭슨 폴록으로 하여금 그 안에 들어가서 드리핑을 하지않을 수 없게 만들었는데, 그러한 ‘환경(environment )’적 요소는 앨런 캐프로를 자극하여 환경미술을 주창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캐프로는 환경미술을 졍의하여 ‘걸어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불렀는데, 이러한 의미는 폴록의 거대한 캔버스와 관련이 있다. 캐프로는 사각의 평평한 캔버스를 포기하는 대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주목했다. 그것은 예술이 자율화되기 이전, 즉 제의의 시대에 축제, 봉헌, 숭배, 마술, 그리고 삶에 예술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던 양태와도 같은 것이었다. 회화가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는 자율적 입장보다는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캐프로의 이러한 사고는 예술이 자율화된 이래 견고하게 유지되어온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혁신적인 태도를 반영한다. 이러한 태도는 이미 쿠르트 쉬비터스(Kurt Schwitters)를 비롯한 다다이스트들에게서 엿볼 수 있지만, 캐프로는 보다 적극적으로 예술을 삶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 의자, 음식물, 연구, 물, 낡은 양말짝, 개, 네온 등 일상적 사물들은 새로운 예술을 위한 충분한 재료가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게다가 빛이나 소리, 향기, 움직임, 사람들 등 특수한 실체들은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들로서 이들로 구성되는 일상적 삶은 우연한 사건들로 가득차 있는 경이의 보고(寶庫)인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경찰서의 파일이나 쓰레기통, 호텔 로비, 상점의 진열장, 그리고 길거리에서 흔히 발견된다19).

캐프로의 해프닝이 일상적 삶과 예술의 연계를 꾀한 것이었다면, 이브 클렝(Yves Klein)의 ‘인체측정(Anthropométries)’은 인체를 붓으로 삼아 새로운 회화의 방법론을 개척한 ‘보디 페인팅’의 한 예를 보여준다. 쟝 팅겔리(Jean Tinguely),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다니엘 수포에리(Daniel Spoerri)와 함께 1960년대 초엽에 피에르 레스타니(Pierre Restany)에 의해 주도된 누보 레알리즘(Nouveau Réalisme)의 일원이었던 그는 1950년대 초반, 일본을 여행하던 중 보디 페인팅의 영감을 받았다. 1952년 유도를 공부할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했던 그는 1953년 히로시마에서 2차대전 당시 원자폭탄의 화염에 의해 한 남자의 불에탄 몸의 흔적이 바위에 실루엣 형태로 남겨진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불행한 남자의 흔적과 원시인들의 제의에 대한 클렝의 관심은 1950년대 후반에 인체를 붓으로 삼아 캔버스에 신체의 흔적을 찍는 ‘인체측정’ 시리즈를 낳게 된다20). 1960년, 클렝은 <진리가 현실이 되다>라는 에세이를 발표하였는데, 이 글 속에서 그는 오래전부터 붓을 배척했던 자신이 살아있는 붓(인체)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게 된 연유를 밝혔다. 그에 의하면, 이 새로운 수법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몸을 더럽힐 필요조차 없으며,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할 일이란 오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살아있는 붓인 벌거벗은 모델에게 지시하는 것 뿐이었다. 그것도 귀족적인 턱시도 차림으로.....

1960년 3월 9일, 파리에 있는 현대국제미술화랑(Galerie Internationle dArt Contemporain)에서 열린 클렝의 퍼포먼스는 앵포르멜 화가인 죠르주 마티유(Georges Mathieu)의 형식적이며 다소 연극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퍼포먼스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했던 자신의 개념을 절충시킨 것으로 오케스트라까지 동원된 대단히 화려한 것이었다. 세명의 바이얼리니스트와 세명의 첼리스트, 그리고 세명의 합창대원이 동원된 이 음악회에 클랭은 마치 지휘자처럼 흰 넥타이에 턱시도 차림으로 나타나 자신이 작곡한 ‘단음조 심포니(Monotone Syimpony)’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향헤 절을 하였다. 이 곡은 20분간의 침묵이 흐른 뒤에 하나의 음표가 역시 20분간 연주되는 것이 한 주기를 이루는 단조로운 것이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세명의 벌거벗은 여자 모델들이 이브 클랭의 청색(International Klein Blue: IKB)을 온몸에 묻혀 크고 넓은 종이에 찍었다. 이 퍼포먼스는 실연되기 전날 안무가 된 것이었다.

퍼포먼스가 끝나자 마티유가 클랭에게 다가와 물었다. “자네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클랭이 대답했다. “예술, 그것은 바로 건강입니다.” 클랭의 이 말은 즉석에서 꾸며낸 것이라기 보다는 신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것으로 신체의 건강은 정신적 초월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였다. “이 건강이 우리를 존재하게 합니다. 그것이 삶 자체의 본질이죠.” 21)

이브 클랭이 퍼포먼스를 벌이기에 앞서서 일본에서는 구타이 그룹(具體藝術協會)의 멤버들이 5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액션 페인팅과 전후 유럽의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퍼포먼스 작업을 펼쳐 나갔다. 이들의 작품은 앨런 캐프로의 환경미술이나 해프닝 보다 몇 년 정도 앞선 것이었다. 그 가운데 가즈오 시라가는 진흙속에 들어가서 온몸으로 행위를 하였는데, 1955년 작품은 ‘진흙에의 도전’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가즈오 시라가가 극대화된 행위를 통하여 폭력적이며 격렬하게 내부의 정염을 표출하였던 반면, 또 한사람의 구타이 그룹 멤버인 아키라 카나야마는 기계적인 개입을 통해 계산되고 객관적인 회화를 시도하였다. 그는 비닐로 덮힌 캔버스 위로 자동차를 몰아 그림을 그렸다. 쟝 팅겔리(Jean Tinguely)의 키네틱 아트를 연상시키는 그의 이러한 시도는 1990년대의 젊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쳐 예컨대 디지틀 다이오드가 장착된 모터카를 이용한 작업을 시도한 타스오 미야지마라든지 개미가 지나가는 통로를 분필로 표시하는 작품을 발표한 야나기 유키노리와 같은 작가들의 선구자가 되었다22).

나) 參與 藝術의 입장
이제까지 미술의 맥락에서 형식주의적인 작업을 펼쳐나갔던 작가들의 퍼포먼스 작품을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퍼포먼스를 통해 사회적 주석(註釋)을 가하거나 적극적으로 현실에 개입함으로써 사회적 변혁을 꾀하고자 했던 작가내지 퍼포먼스 그룹들의 활동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이러한 시각을 지닌 작품들 거의 대부분이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표방함으로써-그것이 정치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간에-예술에 있어서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개인이나 그룹들과 충돌을 빚어왔다는 사실이다23). 그러나 이러한 충돌이나 갈등은 리얼리즘의 기초를 이루는 미메시스(mimesis) 개념의 변천사만 살펴보더라도 현실에 대한 정치(精緻)한 해석에 근거한 것이라기 보다는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나 정치적인 의도의 개입과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동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루시 리파드(Lucy R. Lippard)의 말처럼, 문화적 민주주의는 예술을 의사소통의 행위로 보는 예술관에 기반을 둠으로써 다양한 의사표현이 보장되고 또 보장되어야 하는 하나의 권리이다24). 나는 그러한 관점에서 진정한 문화 민주주의란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또 그것이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서 막힘없이 소통될 수 있는, 하나의 권리로서의 의사소통의 채널이 다면화된 사회에서만이 가능하다고 본다.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전망이 불투명해진 현대사회에서 퍼포먼스는 이러한 딜레머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서 그 가능성이 많은 작가들에 의해 시도됐고 또 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공동체 의식의 회복과 관련시켜 볼 때, 예술은 삶과 예술이 분리되기 이전의 제의(ritual)의 기능(淨化)과 사회 내에서의 권리를 회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퍼포머(performer)는 병든 사회를 치료하는 샤먼(shaman)의 기능을 회복해야 하며, 예술은 고대 원시사회에서의 그것처럼 삶 자체로서의 전일성(全一性)에로 복귀해야만 한다.

죠셉 보이스(Joseph Beuys)의 퍼포먼스가 재음미되어야 할 이유는 바로 이러한 총체적 삶의 회복과 관련된다. 우선 1972년에 그가 주창했던 ‘창조성과 학제적 연구를 위한 자유국제대학(Free International University for Creativity and Interdisciplinary Reserch)’ 프로젝트를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하인리히 뵐(Heinlich Böll)과 공동발기인이 돼서 유럽경제공동체(EEC)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선언문의 구절이 보인다.

“창조성은 예술의 전통적 형식들 가운데 하나를 실천하는 사람들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예술가들에 있어서도 창조성은 예술의 훈련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우리들 각자는 경쟁심과 성공에 대한 억압된 추구에 가려진 창조적인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잠재력을 인식하고, 탐구하고 계발시키는 것이 곧 이 학교의 역할인 것이다25).

카셀도큐멘타를 통해 실천에 옮겨지기도 했던 그의 이러한 구상은 사회 내에서 현상태의 교육이 개인에게 미치는 불안과 학생들로 하여금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데 현대의 교육이 실패하고 있다는 사려깊은 진단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그 이유로 전문가들에 대한 요구가 사회의 어떤 분야에서는 점차 소멸돼 가고 있고, 또 상황이 변하고 있는 데도 국가로부터 국가경영의 제도교육기관에게 전문가들을 끊임없이 양성하도록 하는 정치적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26). 그는 따라서 국가가 경영하는 제도교육기관의 이러한 문제점과 전통적 교육구조와 방식은 궁극적으로 사회의 각 분야들이 파편화되고 고립되는 상황을 영속화시킴으로써 현재의 사회적 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우려가 있다고 전망했다.

보이스의 이러한 생각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견해와도 일치한다. 하버마스는 모더니티 이후 서구사회에서 진행돼 온 계몽주의 프로젝트의 성과가 20세기의 문화적 상황에서는 지극히 회의적일 수 밖에 없음을 우려한다.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물질의 공정한 배분과 이를 통한 복지의 실현을 꾀하고자 했던 계몽주의 프로젝트는 과학, 윤리, 예술의 분화로 말미암은 사회 각 분야의 전문화• 자율화를 초래함으로써 결국은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달성을 불가능하게 함은 물론 전문가의 문화에 대한 불신과 부정을 초래하였다고 비판한다. 그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막스 베버(Max Weber)의 관점에서 찾는다. 주지하듯이 베버는 문화적 모더니티를 종교와 형이상학 분야에 나타난 실체적 이성(substantive reason)이 과학, 도덕, 예술이라는 세가지의 자율적 영역으로 분화되었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자율적 영역으로의 분화는 종교와 형이상학에 의한 통일된 세계관의 붕괴를 의미한다27).

이러한 통일된 세계관의 붕괴는 학문, 종교, 예술이 제도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따라서 세계에 대한 총체적 전망이 불투명하게 된 것이다. 이제 개별 문화영역에서의 과학적 언술, 도덕과 법률이론, 예술의 생산 및 비평과 같은 문제들은 전문가들의 관할 영역으로 전가되게 되고 더욱 전문화됨에 따라 인식적-도구적(cognitive-instrumental), 윤리적-실천적(moral-practical), 미적-표현적(aesthetic-expressive) 합리성의 담론들은 일반인보다 더욱 전문적으로 취급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손에 넘어가게 됨으로써 그들의 통제하에 놓이게 되었다28). 그런데 특정한 담론들의 전문가 계층에 의한 장악은 일상적 담론의 소통을 어렵게 함으로써 생활세계를 더욱 황페화시키게 된다. 계몽주의에 의한 모더니티의 프로젝트가 세계에 대한 몽매와 비의(秘儀)를 해소함으로써 무지로부터 인류를 해방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자승자박을 하는 패러독스를 야기시키고 만 것이다. 카셀 도큐멘타에서 열린 100일간의 자유국제대학에서 보이스는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을 나누고 공유하는 새로운 교육방식을 실천에 옮겼는데, 그의 이러한 시도는 전문화 시대에 불어닥친 담론의 위기적 상황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인종이나 성별, 민족, 혈통을 초월하여 만민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면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문명화되었다는 현대사회에도 종교, 인종적 편견, 문화적 차이, 성차별로 인한 분쟁과 쟁투는 끊이지않고 인류를 괴롭힌다. 인류에게 빛과 희망, 복지, 무지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했던 계몽주의의 프로젝트는 제국주의의 팽창과 그로인한 식민화 정책, 각종 사회적 불평등과 성차별, 빈부의 격차 등 제도의 불합리에서 비롯되는 사회문제를 양산하였다. 70년대 이후 퍼포먼스에서 나타난 다양한 정치적 담론이나 각종 제안작업들(proposal pieces)들은 현대사회가 지닌 불합리와 맹점을 고발하는 한편, 보다 개선된 사회적 조건의 수립을 위해 노력한 예술적 전략들이다. 특히 80년대에 들어서 더욱 부각되기 시작한, 페미니즘(Feminism) 작가 및 단체들의 퍼포먼스 작업이나 복합문화주의(multi-culturalism)와 관련하여 소수민족 작가들의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탐색(예: Adrian Piper) 등은 퍼포먼스의 사회적 실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페미니즘은 프랑스의 후기구조주의의 학문적 성과에 힙입어 80년대에 들어서 세계적으로 번진 포스트모더니즘에 견인되어 예술계 내에서 지배적인 정치적 담론중의 하나로 부상되었다. 이는 모더니즘 시대의 지배적인 담론 형태였던 남성중심적내지 이성중심적 사고에 가려졌던 부분이 문화지형도의 변화에 따라 표면으로 돌출, 재검증되기에 이른 것이다. 운동사적으로 볼 때, 페미니즘은 19/20세기 초에 걸쳐 구미에서 일어났던 인본주의적 여성해방운동, 1970년을 전후로 가부장제의 구조적 모순을 인식하고 남성중심의 문화에 도전, 여성의 특성을 탐구하는 현대적 의미의 페미니즘, 부계사회의 구조를 검증하고 해체하는 입장을 띤 문화운동으로서의 80년대 포스트 모던 페미니즘으로 대별되는데29), 퍼포먼스는 페미니즘의 이념에 따른 실천적 전략의 한 방법론으로 전개되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1974년부터 5년간 400여명을 동원, 거대한 실치작품 ‘디너 파티’를 제작한 주디 시카고(Judy Chicago)(1974-1979)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여성의 정치의식과 집단의식을 드러낸 대표적인 1세대 페미니즘 작품으로 작품의 바닥을 이루는 타일에는 999명의 역사적 여성들의 이름들이 금물로 새겨져 있고, 삼각형의 식탁에는 자궁모양의 채색도자기 접시 39개가 놓여있는데, 이 접시는 디너 파티에 초대된 30인의 여류에게 헌정된 것이다30). 그러나 이 작품의 해석을 놓고 여성 페미니즘 이론가들 사이에서 비판이 제기되었는데, 특히 자궁형태의 도자기는 성기를 여성과 동일시하는 남성중심 사회의 고정된 편견으로 인하여 여성해방과 관련된 본래의 의미가 약화 내지는 변질될 수 있다는 리자 티크너의 견해는 그 가운데 하나이다31).

자궁이란 여성의 신체구조적 특성을 퍼포먼스에 활용함으로써 정치적 담론의 수단으로 삼았던 또 한 사람의 여성 작가로는 캐롤리 슈니만(Carolee Schneemann)을 들 수 있다. 그녀의 작품 ‘몸안의 두루마리(Interior Schroll)(1975)는 벌거벗은 작가가 자궁속에서 탯줄같은 형태의 텍스트를 꺼내며 읽는 퍼포먼스 작품인데, 슈니만의 이러한 작품들은 그녀의 초기 사진 퍼포먼스 작품인 ‘눈/신체(Eye/Body)에 있어서 처럼 페미니스트 아방가르드의 성격을 보여준다32). 슈니만은 여성으로서 신체와 살(flesh)을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고찰의 대상으로 삼아 작업을 펼쳤는데, ’몸안의 두루마리‘는 “체내에 간직된 신성한 모성적 지식이 외부로 나오면서 부계적 의미로 오염” 33)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었다.

다다 이후에 예술과 삶의 혼융을 꾀하는 시도들이 퍼포먼스 분야에서 빈번히 나타나고 있는 사실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연극을 일상적 차원으로 끌어내려 작위적인 형식을 배제한 테스타모비다(Testamrobida)의 ‘발견된 연극(Found Drama)’은 이의 한 사례이다. 삶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철폐하려는 인위적인 방법에 지겨움을 느낀 그는 아스토리아의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특정시간의 사건을 자신의 연극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인위적인 연극의 허구성을 벗어나려고 하였다. 그는 한 마을의 지도에 화살을 쏘아 임의적으로 한 가정을 선택하였는데, 그 가정의 식구들은 자연스럽게 배우가 되었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일상적 오브제 선택을 연상시키는 이 ‘발견극’은 현대의 퍼포먼스에는 특정한 관객이 부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예술이 일상적 삶의 맥락으로 내려옴에 따라 오늘날의 관객은 퍼포머/관객이라는 과거의 이분법적 도식에서 벗어나 발신자(작가)→익명적, 불특정 다수의 수신자라는 체계 속에 위치하게 된다. 오늘날 퍼포먼스에서 수신자는 불특정 공간 속에 존재한다. 가정에, 사무실에, 공장에, 공항에, 고속터미날에 존재하고 있다.


Ⅲ. 결 론
모더니티의 프로젝트이후에 학문이나 종교와 마찬가지로 예술 역시 자율적 영역으로 제도화되었다. 특히 모더니즘이 정교한 이론적 체계와 비평적 전략에 의해 하나의 기획으로 전개되면서 미술은 형식적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예술은 점차 생활세계로부터 유리되게 되었다. 호르크하이머(Horkheimer)와 아도르노(Adorno)가 지적한 것처럼 예술작품은 세속적 삶의 맥락에서 일탈하여 예술자체의 특별한 법칙이 적용되는 자폐적인 울타리 속에 갇히게 된 것이다. 예술이 제도화․전문화․미분화 현상은 결과적으로 문화의 총체적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들어버렸다. 오늘날 예술은 본연의 영성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그것은 과연 고대사회에서 제의가 수행했던 정화내지 치료적 기능을 하고 있는가. 바로 여기에 오늘의 예술이 처한 문제적 상황이 있다고 본다.


참고문헌
김홍희, 페미니즘•비디오•미술, 재원, 1998.
윤진섭, 현대미술의 쟁점과 현장, 재원,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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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창작과 비평사,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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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 Bronson and Peggy Gale, Performance by Artists, Art Metropole,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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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 Marsh, Body and Self: Performance art in Australia 1969-92.
Roselee Goldberg, Performance Art from Futurism to the present, Thames and Hudson,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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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ann Nitsch, Orgien Mysterien Theater, M?rz Verlag,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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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Harrison, Ancient Art and Ritual, Greenwood Press Publisher, 1969.
W. Tatarkiewicz, History of Aesthetics, Mouton, PWN, 1970.
W. Tatarkiewicz, A History of Six Ideas, Martinus Nijhoff, 1980.





1) “예술은 그 자체 하나의 목적인가 아니면 목적에 이르는 수단에 불과한가”하는 문제는 낭만주의에 기반을 둔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의 개념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을 이룬다. 하우저에 의하면 ‘예술을 위한 예술’은 산업시대에서 비롯된 분업화 현상에 대한 예술계의 반응이며, 산업화•기계화된 생활로부터 예술을 지키려는 예술가들의 투쟁에 다름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또한 예술의 합리화•비마술화•축소화를 의미하며 생활의 기계화에 맞서 예술의 독자성과 자발성을 지키려는 예술가들의 노력을 의미한다.

“예술작품은 유리자체의 구조나 투명도, 색깔에는 관계없이 다만 그것을 통해 인생을 관찰할 수 있는 하나의 유리창에 비유되어 왔다. 이런 비유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관찰과 인식의 단순한 도구, 즉 그 자체로서는 이해상관이 없으면서 어떤 목적을 위해서 수단으로서만 봉사하는 창유리나 안경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창문 저쪽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주의를 뺏기지말고 창유리의 구조에만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다면, 예술작품은 또한 스스로를 위해서 존재하는 자립적 형식체(Formgebilde)로, 자체 속에 완결된 의미의 결합체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경우 ‘창문을 통해서 내다본 것’은 언제나 그 내적인 구조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 예술작품의 의미는 줄곧 이 두 관점 사이를-생활과 모든 작품외적 현실에서 단절된 하나의 존재라는 관점과, 생활과 사회와 실제에 의해서 제약된 하나의 기능이라는 관점 사이를 왕래한다.”

아놀드 하우저, 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문학과 예술의 사회사(현대편), 백낙청•염무웅 역, 창작과 비평사, 1974, 20~21쪽.

2) 아놀드 하우저, 같은 책, 20쪽.

3) G. Dickie, Aesthetics, An Introduction, Pegasus, 1971, 52쪽.

4) G. Dickie, 같은 책, 42쪽.

5) 윤진섭, 로즈셀라비, 왜 재채기를 하는가?, <현대미술의 쟁점과 현장>, 미진사, 1998, 87쪽.

6) J. Harrison, Ancient Art and Ritual, Greenwood Press Publisher, 1969, 83쪽.

7) 고대 그리이스의 원형극장에서 오케스트라(Ochestra)는 원형의 무대에 붙혀진 이름이었다. 그것의 기원은 봄의 축제에서 농부들이 드트램보스를 추던 평평하게 다져진 원형의 마당이었다. 일단의 무용수는 코러스(Choros)라고 불렀는데, 그 원형은 본래 노동을 하다가 여가가 있을 때 춤을 추던 농부들이었다(J. Harrison).

8) ‘행해진 것(a thing done)’을 의미하는 희랍어로서 드라마의 어원을 이룬다.

9) J. Harrison, 같은 책, 123~136쪽.

10) W. Tatarkiewiez, History of Aesthetics, Vol. Ⅰ, Mouton, PWN, 1970, 16쪽.
동물의 희생제의에 대한 보다 상세한 묘사는 다음의 문헌을 참고할 것.
David G. Rice and John E. Strambaugh, Sources for the Study of Greek Religion, Scholars Press, 1979, 107~116쪽.

11) J. Harrison, 같은 책, 89~90쪽.

12) M. Eliade, The Sacred and the Profane, The Nature of Religion, New York, Harcourt, Brace & World, 1959,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83, 60~61쪽.

13) Roslee Goldberg, Performance Art: From Futurism to the Present, Thames & Hudson, 1995, 7쪽.

14) Anne Marsh, Body and Self: Performance Art in Australia 1969-92, Oxford University Press Australia, 1993, 2쪽.

15) Paul Schimmel, Leap into the Void: Performance and the Object,
16) Allan Kaprow, The Legacy of Jackson Pollock, Art News 57, no 7(October 1958), Paul Schimmel, 같은 책, 20쪽에서 재인용.

17) ‘미메시스’는 호머 이후(post-Homeric)에 형성된 개념으로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벌어졌던 제의 및 신비극과 관련이 깊다. 애초에는 사제가 행하는 무용, 음악, 노래를 가리켰으나, 나중에는 조각 및 연극술에서 재생을 의미하였다.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 모방은 제의(cult)에서 벗어나 철학적 용어로 변용되면서 외적 세계의 복제를 뜻하게 된다. 미메시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숱한 개념의 변천을 겪게 되는데, 미메시스에 근거한 모방이론은 세잔느에 이르게되면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해석내지 주석이란 의미를 띠게 된다.
W. Tatarkiewicz, A History of Six Ideas, Martinus Nijhoff, 1980, 266~279쪽 참고.

18) Hermann Nitsch, Orgien Mysterien Theater, M?rz Verlag, 1969, 36~55쪽.

19) Allan Kaprow, 같은 책, 20쪽.
바바라 로즈(Barbara Rose)는 그러나 캐프로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은 폴록의 잘짜여지고 억제된 그림들이 아니라 드리핑을 하는 그의 행위 장면을 연속적으로 찍은 나무드(Namuth)의 다큐멘타리 사진과 영화였음을 밝히면서, 나무스의 사진이 폴록의 대중적 신화 형성에 미친 영향과 함께 60/70년대 예술가들과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Barbara Rose, Hans Namuths Photograph and the Jackson Pollock Myth: Part One: Medea Impact and the Failure of Criticism,
20) Paul Schimmel, 같은 책, 31~32쪽.

21) Paul Schimmel, 같은 책, 33~35쪽.

22) Paul Schimmel, 같은 책, 25~27쪽.

23)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이러한 사례는 1980년대에 나타난 모더니즘 진영과 민중미술(Minjoong Art) 진영간의 갈등과 반복을 들 수 있다.

24) Lucy R. Lippard, Trojan Horses: Activist Art and Power, , edited by Brian Wallis, The 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 New York, 1984.

25) Bronson and Peggy Gale, Performance by Artist, Art Metropole, 1979, 289쪽. 원문은 다음과 같다.

“Creativity is not limited to people practising one of the traditional forms of art, and even in the case of artists creativity is not confined to the exercise of their art. Each one of us has a creative potential which is hidden by competativeness and the aggressive pursuit of success. To recognise, explore and develope this potential is the task of this school.”

26) 죠셉 보이스, 같은 책, 50쪽.

27) J?rgen Habermas, Die Moderne ein unvollenedetes Projekt , 1981. 모더니티: 미완성의 프로젝트, 이영철 역, <현대미술 비평 30선, 중앙일보사, 1987, 166~167쪽.


28)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책, 166쪽.

29) 김홍희, 페미니즘•비디오•미술, 재원, 1998, 64~65쪽.

30) 김홍희, 같은 책, 106~107쪽.

31) 김홍희, 같은 책, 108쪽,

32) Kristine Stiles, Uncorrupted Joy: International Art Action, , 296-297쪽.

33) 김홍희, 같은 책, 296~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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