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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설치ㆍ실험미술-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윤진섭

한국 현대미술에서 설치미술(installation)의 시작은 1967년 12월 11일부터 17일까지 중앙공보관에서 열린 [청년작가연립전]에서 비롯된다. 이 전시회는 당시 홍대 출신의 20대작가들의 실험미술 단체인 <무>, <신>, <오리진> 동인들이 연합하여 구성된 것이다. 한국에서 미술은 그 이전 만해도 회화는 캔버스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조각은 구상이나 추상을 막론하고 3차원 양괴의 미술을 지향하고 있었다.

한 연구에 의하면, 60년대 중반에 캔버스에 기성의 사물을 부착한 회화가 있었다고 하나, 엄격히 말해 이는 설치미술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서구나 한국 모두 설치의 역사는 기성의 사물, 즉 오브제(objet)를 예술의 문맥 속으로 끌어들인 고유의 방법론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 있어서는 마르셀 뒤샹의 부삽, 자전거 바퀴, 의자, 변기와 같은 이른바 ‘발견된 사물(found object)’이나 쿠르트 쉬비터스의 ‘메르츠 바우’처럼 명백히 회화의 범주를 떠난 설치가 여기에 해당된다. 한국의 경우에는 예의 [청년작가연립전]에 최초로 등장한 연통, 철제함, 석고, 합판, 비닐 등이 조합된 구조물들이 그 효시이다. 이때의 설치작품들은 당시 서구 미술계에 선풍을 불러일으켰던 네오 다다, 팝아트, 오브제 아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비록 형식은 외부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해도 실제 전시된 작품의 내용은 대부분 당시 한국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가령, 연통이나 성냥은 추운 겨울을 보내야 했던 대다수 서민들의 생활감정이 반영된 것이며, 젊은 여인의 인물초상과 첨단의 패션을 결합한 작품은 당시의 소비사회를 풍자한 것이다.




이러한 설치미술의 등장은 이 무렵에 시도된 해프닝(Happening)과 함께 대중들에게는 이상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설치나 오브제는 겉의 형태보다 그것이 의미하는 개념이 보다 중시되는 미술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대중들로서는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웃지 못할 여러 해프닝이 속출하기도 했던 것이다.

1995년 ‘미술의 해’ 사업의 일환으로 필자가 기획했던 [공간의 반란-한국의 입체․설치․퍼포먼스 1967-1995]전은 [청년작가연립전] 이후 한국에서 전개된 입체․설치․퍼포먼스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설치미술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도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분야에 대한 한국적 변별성을 추출하기 위해 기획한 이 전시회는 같은 해 8월 26일부터 9월 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정도6백년기념관)에서 열렸다. 이 전시회에 맞추어 ‘공간의 반란’이란 책자도 발행했는데, 이 책은 풍부한 도판과 함께 이 시기의 미술운동과 경향에 대해 여러 비평가들이 쓴 기존의 글들을 모은 일종의 엔솔로지였다.




이 책에 수록된 ‘전시회를 기획하며’란 필자의 글을 보면, 서양에 비해 50년, 가까운 일본에 비하면 약 10년이 늦은 한국의 오브제 내지 설치미술의 역사가 어떻게 장족의 발전을 기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 살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에 의하면 한국현대미술의 발전은 근대화 이후 꾸준히 진전을 본 경제적 상황에 힘입고 있음이 드러난다. 우선 가시적인 지표로 드러난 것은 현격히 증가한 전시회의 개최 건수이다. 예컨대,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이 건립된 1995년에 이르면, 연간 약 5천 건을 웃도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30년 전에 비해 볼 때 현저한 증가를 말해주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에 있어서 오브제나 설치, 퍼포먼스의 역사는 전위(avant-garde)의 역사와 병행한다. 이는 또한 전위예술이 집단적 성격이 짙은 점을 감안할 때, 집단(group)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국의 전위 혹은 실험미술은 대부분 집단에 기대고 있다. 50년대의 소위 앵포르멜(Informel)을 비롯하여 60년대 후반의 [청년작가연립전], 70년대의 , , <신체제>, 80년대의 <현실과 발언>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아방가르드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전위미술 운동은 집단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술운동의 배경에는 한국 특유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황과 논리가 버티고 있다. 예술이 사회의 한 반영이라는 사회사적 관점이 유효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의 실험미술은 단순히 서구미술의 재판이요,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단순화의 함정에서 벗어나 명예회복이 가능하다. 그것은 새로운 해석학적 관점을 필요로 한다. 최근에 일고 있는 ‘한국 현대미술 다시 읽기’의 새로운 바람과 이 시기에 대한 활발한 미술사 분야의 저술은 다같이 한국 미술을 살찌우는 토양들이다.

설치를 중심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두 개의 패러다임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 그 단층의 첫 번째는 60년대 후반의 소위 청년작가연립전 세대의 등장이요, 두 번째는 80년대 후반 <뮤지엄> 그룹의 등장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단층에 굳이 표제어를 붙이자면 전자는 경제적 개발의 세대, 후자는 성장의 세대라고 부를 수 있다. 전자가 근대화, 도시화, 아날로그를 미감적 특징으로 지니고 있다면, 후자는 포스트 모던, 키치, 디지털, 영상세대적 미감을 특징으로 한다. 이 도식화된 단순화가 혹여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겠다. 그러나 오해 마시길. 이는 단순히 40여 년에 걸친 설치미술의 색채적 변별성을 느껴보기 위한 편의적 가름에 지나지 않으니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아날로그는 마치 시침과 분침의 추이를 느긋하게 완상하는 것처럼 사물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에서는 이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디지털에 의한 가상의 세계에서는 원본이 없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세대의 설치작품은 필요에 따라 재현이 가능하다. 그러나 디지털 세대의 작품은? 재현해 낼 대상이 없는 이미지를 갖고 노는 디지털 세대에게 있어서 원본 없는 이미지는 그 자체가 현실이다.
T.V, 비디오, 컴퓨터 등 각종 영상매체에 예속된 이들은 가상의 세계에 몰입하며 거기에서 자신의 삶의 둥지를 튼다. 이른바 오타쿠, 호모 비르투엔스라는 신인류의 등장인 것이다.
설치미술은 이제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의 시기로 넘어와 있다. 외형적인 구조보다는 거꾸로 소프트웨어를 위한 구조가 탄생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신인류는 그러한 구조에 내장된 디지털의 세계를 항해하는 전자 유목민들이다. 그 끝닿을 데 없는 가상의 세계, 가상이자 그것이 곧 현실이기도 한 세계를 유랑하는 유목민들인 것이다. 우리의 미술계로 말하면 90년대 초반의 신세대들이 어느새 아날로그 세대로 치부되는 시대에 우리는 와 있다.

- 아트프라이스 2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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