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김계현 개인전, 색색의 블록 이용한 '조립미술'

윤진섭

김계현은 독일에 거주하는 작가다.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세계 여성 100대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로즈마리 트로켈을 사사한 그는 아주 저돌적이며 야심만만한 40대 초반의 젊은이다. 내가 예술총감독으로 일했던 2000서울국제행위예술제 : SIPAF2000에서 그를 만났다. 당시 그는 선화랑에서 맥도날드 건물에 이르는 약 200m 대로에 8000벌의 중고품 옷가지를 늘어 놓고 새벽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장장 12시간에 걸쳐 옷을 갈아입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팬티만 걸친 알몸으로 8000벌의 옷을 마치 불교에서 8000배를 올리듯 일일이 갈아입었으니, 나중에는 온몸이 벌겋게 부어 올랐다. 후일담이지만 그는 이 퍼포먼스 때문에 원인 모를 피부병에 걸려 한 3년간 죽을 고생을 했다고 한다.

신체의 극한을 시험하는 이러한 부류의 퍼포먼스로는 고 요셉 보이스의 24시간(1965년 작)이 유명하다. 당시 요셉 보이스는 24시간 동안 흰 상자 위에 서 있거나 꿇어앉아 있는 동작을 취함으로써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자 했는데, 한번은 행위중에 분노한 관객에게 얻어맞아 코피를 흘리며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었다.

서울국제행위예술제에서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김계현이 이번에는 조립미술이란 아이디어를 가지고 다시 조국을 찾았다. 노암갤러리에서 열린 김계현 개인전 : 조립미술의 시작-못 먹는 것은 눈에 보인다전이 그것이다. 이 작품전의 기본 재료는 김계현표 블록이다. 이를 위해 그는 약 2년간에 걸쳐 자기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블록을 개발했다. 형형색색의 색깔을 지닌 이 블록은 다양한 크기로 돼 있어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하며, 여러 형태의 사물을 모방할 수 있다. 사람을 비롯하여 배, 자동차, 자전거, 의자, 바나나, 사과, 캔버스 등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들은 장차 이 블록을 활용해 제작이 가능한 범위의 폭과 깊이를 보여준다.뿐만 아니라 2층 전시장에서는 블록을 이용하여 어린이들이 직접 작품을 만들어보는 코너가 열리고 있었는데, 이 또한 미술교육 측면에서 볼 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유년 시절에 김계현은 자전거포를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자신은 '장사는 3년을 망할 각오로 해야 한다'는 시장통 어른들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고 한다. 그가 블록을 개발할 때 이 말은 큰 위안이 되었다. 그것은 곧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자는 각오를 낳았다. 알다시피 블록을 개발하는 데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금형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는 어려운 외국 생활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해냈다. 블록이 무엇인가.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한 매체가 아닌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작품 규모도 걱정이 없다. 수공이 아닌 공장 시스템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또 현장 조립이 가능하고 즉석에서 페인팅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작품 형태나 크기에서 유연성을 지닌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작품 중 프린트 출력에 의한 추상작품은 직접적인 페인팅이 아니란 점에서 아쉬웠다.

작가는 행상을 하는 어머니 대신 밥을 지어주시던 할머니가 시력이 안 좋은 탓에 밥에서 머리카락이나 돌이 발견될 때마다 하시던 말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못 먹는 것은 눈에 보인다'던…. 그 쓸모없어 보이던 것들이 이젠 쓸모 있는 것으로 둔갑할 때가 드디어 왔다.

출처- 매일 경제 2006.8.21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