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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수 / 때수건으로 말걸기

윤진섭

이도수의 디지털식 아날로그 대화법


떠오르는 미디어 작가(emerging media artist) 중의 한 사람인 이도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주목한다. ‘인연’은 최근 몇 년 간 그가 푹 빠져 있는 화두다. 그는 인연을 중시한다. 그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우선 그의 발언부터 경청해 보자.

“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돈, 명예, 사랑, 이 모두가 우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지만 그것들은 결국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진 눈에 보이는 결과물일 뿐 이 세상에 나 혼자 있다면 모두 소용없는 것들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들은 종종 눈에 보이는 결과물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작가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는 인간성의 회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는 지고의 가치 회복, 평화로운 공존에의 모색 등등이 아닐까? 이러한 화두의 실현을 위해 그는 인연을 소재로 한 <공존-2004>란 작품을 [제5회 광주비엔날레]에서 발표한 바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인 그는 이 전시회에서 크로마키(chroma key) 영상합성 기술을 이용하여 관객참여적인 성격의 인터랙티브(interactive) 작품을 선보였다. 상호작용을 일컫는 이 방법은 관객의 참여가 없이는 작품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법. 그래서 그는 관객, 그 중에서도 특히 어린이들이 좋아할 듯싶은 에니메이션 프로그램을 배경에 깔았다. 작가가 직접 제작한 10분 분량의 이 애니메이션은 인생항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등장인물이 보트를 타고 파도를 헤치며 바다를 항해한다는 스토리다. 배경 화면에는 탁 트인 바다 위에서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장면이 이따금씩 나타난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전시장 한 가운데에는 3미터 길이에 2.5미터 높이의 푸른색 스크린이 3면에 걸쳐 있고 마지막 한 면에는 이보다는 약간 작은 크기의 유리 스크린이 천정에 매달려 있다. 이처럼 설정된 사각 공간의 한 가운데는 영상을 투사하는 프로젝터가 놓여 있다. 이 유리 스크린이 바로 등장인물이 바다를 항해하는 에니메이션과 현장에 있는 관객들의 모습이 교차되어 만나는 만남의 장소(interactive space)인 것이다. 에니메이션이 상영되는 동안 전시장에는 3분 31초짜리의 배경 음악이 흐른다. 이 작품은 작가가 피날레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직접 작곡한 것이다. 첼로 특유의 장중한 선율이 특징인 음악이다. 이 배경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3면을 둘러싼 푸른 색 스크린 앞에 모여 있는 관객들은 에니메이션 영상이 투사되고 있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자유롭게 동작을 취한다. 마치 로봇처럼 희화화된 등장인물이 책을 탁자에 놓고 가면 현장에 있는 관객들은 그 책을 넘겨받는다. 물론 현장의 관객은 허공에서 동작을 취하는 것이지만 실제 스크린에서는 책을 받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관객들은 마치 보트 안에서 실제 바다를 항해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크로마키를 이용한 컴퓨터 합성기술이 이처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 작품을 매개로 한 장소(화면)에서 만나게 한 것이다. 
일명 ‘블루 스크린’이라고 알려진 이 크로마키 기법은 텔레비전 방송국이나 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 영상을 합성하기 위해 뒤에 파란색 천을 대고 촬영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기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 사이의 상호소통에 매우 적합한 것이다. 이도수가 이 기법을 주로 애용하는 까닭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인연을 표현하는데 이만한 표현기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요즈음 크로마키를 이용한 합성기술을 연구하여 보다 다채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도수는 원래 건축학도였다.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진학했던 그는 컴퓨터를 더 배우고 싶다는 단순한 열망 때문에 건축가가 될 꿈을 접고 91년도에 미국 유학의 길에 오른다. 로저 윌리암스 대학(Roger Williams University)에서 컴퓨터 인포메이션(정보통신학과)을 전공하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3학년 때였다. 이 때만해도 그는 자신에게 예술가적 소질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사회단체가 로고를 공모한 콘테스트에 응모, 당선이 되면서 예술가의 꿈을 품게 된 것이다. 그는 때 마침 한 절친한 친구가 건네준 3D 에니메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한 시절을 보냈다. 이 실험이 결국 그를 MIU에 진학, 컴퓨터 에니메이션을 전공하게 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작년에 드림갤러리에서 가진 제1회 개인전에서 이도수는 “Navigation'이란 주제의 작품을 발표한 바 있다. “여러분은 목적지를 정해 놓으셨습니까?”라는 부제를 붙인 이 전시회에서 그는 다양한 인터랙티브 작품을 선보였다. 이 작품을 구상한 동기는 귀국한 뒤 한 대학에 출강하면서 학생들과 나눈 대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인생에 대한 목적이 없이 막연히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이 전시회를 위해 발간한 리플렛에는 재미있는 문구가 열거돼 있다. 1. 목적지 지정, 2. 목적지 변경, 3. 경로 이탈 시 경로 재 탐색, 4. 고속모드 설정, 5. 우회도로 설정, 6. 애프터 서비스(A/S) 등등의 문구는 마치 인생에 대한 비유가 아닌가? 그는 아주 편안하게, 그리고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에는 원대한 꿈을 지니게 되나(목적지 지정), 살다보면 목적지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목적지 변경), 방황 끝에 길을 잃은 지점에서 목적지를 재탐색(경로 이탈 시 경로 재탐색), 과속 운전은 때로 사고를 부르며(고속모드 설정), 그러니 “길이 막히면 차라리 좀 멀더라도 돌아가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우회도로 설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이도수가 말하고 싶었던 것 역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즉 인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평소에 작가란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자”라는 평범한 견해를 지니고 있는데, 그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 그의 겸손한 언행을 통해 심성의 바탕에 깔려있는 따뜻한 인간미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그의 사고가 구체적으로 표출된 작품이 바로 <때수건>이다. 가족간의 유대를 중시하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 낸 때수건은 정감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한 상징이 아닌가? 대중목욕탕에서 우리는 이 수건을 이용하여 서로의 등에 쌓인 묵은 때를 밀어준다. 아들은 아버지의 등을,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등을 밀어주면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상대방에 대한 해묵은 감정은 어느덧 봄눈 녹듯이 사라진다. 이야말로 인터랙티브의 훌륭한 매개체가 아닌가? 이도수는 때수건이라는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적 산물을 이용하여 ‘인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쉽게 풀어내고 있다. 때수건을 소재로 작품을 발표한 작가로는 최정화가 있지만, 최정화의 설치작품이 때수건 특유의 조야한 색상에 초점을 맞춘 한국적 키치 시리즈의 연속선상에 있는 반면, 이도수의 작업은 그것이 상징하는 한국인 특유의 심성적 기층문화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도수는 우리의 내면에 면면히 흐르는 이 정감의 회복을 위해 인터랙티브 영상 설치작업의 소재로 이 때수건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스크린에 투사된 목욕 장면에서 허공을 향해 때를 미는 영상 이미지가 전시장에 있는 관객의 모습과 합성, 마치 관객이 자신의 등을 맡긴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이 작품은 ‘때밀이’라는 동작을 통해 인간의 소통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갤러리 룩스에서 선보인 이 작품은 많은 관객들의 관심을 끈 문제작이었다. 

이도수의 작품은 그 어느 것이든 인생, 길, 인연, 일상 등등의 테마와 관련이 있다. 가령, 2006년 9월에 드림갤러리에서 발표한 <나의 목적지>란 수묵 드로잉 작품은 수묵 담채의 효과를 3차원 영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전시장에서 크게 확대하여 투사된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인생에 대한 비유적 표현을 보여주었다. 번짐의 효과가 확연한 수묵의 붓 자취를 통해 인생에서의 길, 다시 말해 인생항로를 빗댄 것이다. 목적지를 행해 나아가던 붓 자취는 반듯하게 뻗어 나아가는가 하면 갑자기 꺾이기도 하는 둥 마치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 삶의 항로를 연상시킨다. 또 다른 드로잉 작품인 <우리들의 목적지>는 마치 얽히고설킨 인간들의 관계처럼 시침을 연상시키는 수많은 상징들이 얽혀 돌아가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이 작품에는 직접 작곡한 컴퓨터 배경 음악이 사용되었다. 시각과 청각의 결합을 꾀한 작품이다. 


이 전시회에서 발표된 <소음>은 일상에서 들리는 잡음을 채집한 것이다. 승용차 안에 무비 카메라를 장착한 채 3일 동안 직접 운전하며 창밖의 풍경을 촬영하고 소음을 녹음기로 채집, 편집한 작품이다. 세차장의 거센 물소리, 삐걱거리는 승용차의 브러시 소리, 부릉대는 오토바이 소리, 빵빵거리는 클랙슨 소리 등이 시끄러운 가운데 스크린에는 터널, 거리, 시골마을, 산길, 도심, 교차로의 풍경 등등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이 소음들은 일상 속에서 채집된 구체적 소음(objective noise)들이다. 그의 작품은 마치 운행 중에 예기치 못한 장애물이 튀어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이번에 갖게 될 뉴폼게이트 갤러리 개인전에서 이도수는 관객의 참여를 이용한 <금고속의 명함>이란 타이틀의 퍼포먼스 영상작업을 선보일 예정으로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관객들은 입구에 있는 탁자 위에 수북이 쌓인 10여 종류의 직함이 서로 다른 명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 직함들은 100여 년 뒤에나 있을 법한 것으로 예를 들면 ‘전국부채질연합회장’, ‘한국추락예보원’, ‘자동차운전인간문화재’, ‘지존사(박사 다음의 학위)’ 등등이다. ‘전국 부채질 연합회 회장’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전체 대기기온 상승 때문에 부채질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을 일컫는 것이며, ‘한국추락예보원’은 하도 많은 비행물체 때문에 수시로 추락사고가 나서 그것을 미리 예보하는 예보원을 말하고, ‘자동차 운전 인간문화재’는 자동으로 운전되는 자동차 때문에 사람들이 운전법을 모두 잊어버리므로 운전 할 줄 아는 사람이 인간문화재가 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지존사’는 흔한 박사 다음으로 높은 학위다. 

관객들은 마음에 드는 명함을 골라 자신의 이름을 적은 뒤, 전시장 가운데에 있는 사각의 금고(이 금고의 사면 벽에는 작가 이도수의 명함이 빼곡히 붙어있다) 속에 넣는다. 이 금고 한쪽 옆에는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곳을 통해 금고 속에 내장된 프로젝터의 영상이 벽에 투사된다. 벽에는 작가가 거리에서 행인들로부터 명함을 받는, 이전에 촬영해 편집한 장면과 전시장에서 금고 안에 명함을 넣는 실시간 장면이 3-5초 간격으로 반복, 투사된다. 명함을 요구받았을 때 보여준 행인들의 다양한 반응이 재미있다. 당황한 표정에서 의아해 하며 설명을 듣는 표정, 놀라는 동작, 재미있어 하는 표정 등이 돋보이는 퍼포먼스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제가 생각하는 명함에 대한 생각은 이러합니다. 명함은 우리가 처음 사람을 만났을 때 인사하며 주고받는 작은 종잇조각입니다. 그 가로 9Cm 세로 5Cm의 작은 종잇조각에 불과한 것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인연의 통로가 되는 것이지요. 그 중요한 인연의 통로를 여러분은 어떻게 관리하십니까? 저 같은 경우만 해도 주로 휴대폰에 그냥 이름과 전화번호만 저장해 두고 명함은 어디다 뒀는지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명함에 대한 가치를 재해석 하면서 명함철에 잘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 명함을 준 사람 한명 한명과의 인연이 그 어떤 재물보다도 소중한 것이라고 여겨 금고 속에 넣어봤습니다. 물론 그냥 이메일로 발송하면 되는 것을 굳이 편지로 안보내도 되듯이 누가 훔쳐가지도 않는 명함을 굳이 금고에 넣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이메일로 보내면 될 것을 편지로 직접 받으면 감동을 느끼듯이 휴대폰에 저장하면 될 것을 금고 속에 저장하면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 합니다.”

언뜻 보면 뉴미디어 작업을 하는 작가답지 않게 아날로그적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오인될 수도 있는 발상이지만, 편리함보다는 인연의 향취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기술문명의 폐해를 지적한 작품이다. 

<개미집>은 어떤 식으로든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풍자가 깃든 작품이다. 전시장 한 곳에 박스가 놓여있고 박스에는 제법 큰 둥근 비닐풍선이 부착돼 있다. 둥글게 부풀어 오른 풍선을 향해 박스 속에 내장된 프로젝터에서 영상이 투사된다. 개미들이 열심히 터널을 뚫는 중이다. 미로와 같은 개미굴을 뚫는 장면이 투사되는 가운데 비닐풍선 위에는 관객들이 붙여놓은 명함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인간으로 상징되는 명함을 개미들이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도수는 인간성보다는 금력이, 평화로운 공존과 인간적 유대보다는 편리함이, 인간보다는 기계에 대한 숭배가 우선시되는 현대사회에 대해 온건한 사유로 끊임없이 말을 건다. 그의 사고는 아날로그적이나 이의 표출방식은 디지털적이다. 그는 따뜻한 온탕(아날로그)과 차가운 냉탕(디지털) 사이를 오가는 한 사람의 때밀이다. 그의 손에는 때수건이 들려있다. 그는 이 두 문명(아날로그/디지털)의 교차로에 서서 말걸기를 시도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잘 알려진 표현을 빌면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말걸기인 것이다. 

윤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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