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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 자연에의 귀의

윤진섭

한지는 그것이 지닌 특수한 성질로 인하여 일찍이 많은 작가들로부터 각광을 받아왔다. 우리의 현대미술사에서 보자면 1970년대부터 한지에 대한 탐구가 몇몇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원로 작가인 권영우는 화선지를 찢거나 뚫는 행위를 통해 일련의 조형적 실험을 전개한 이 분야의 선구자다. 또한 비록 작품 활동을 그친 지 오래되긴 했지만, 송정기 역시 엷은 한지를 이용하여 설치 작업을 시도했던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가는 철사로 책상이나 의자의 골격을 만든 다음, 그 위에 한지를 입혀 시간의 흐름을 표현했다.

우리의 미술계에서 한지의 사용이 보다 폭넓게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다. 많은 작가들이 한지가 지닌 풍부한 물성에 매료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지는 질기면서도 부드럽고, 또한 물에 풀면 성형이 자유로운 특성 때문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지닌 작가들이 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한지작가’라는 말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들이 모여 ‘한지작가협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박철은 한지작가 중에서도 중심적인 인물이다. 그는 비록 연배는 최창홍, 함섭, 한영섭 등등 원로 한지 작가에 비해 아래 세대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만의 독특한 조형 방식으로 인하여 일찍이 대표적인 한지작가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아 왔다. 일종의 한지 부조회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한지를 이용한 부조회화가 시작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당시 그는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될 위기에 처한 시골 마을을 자주 찾아가곤 했는데, 주민들이 버리고 간 맷방석이나 멍석, 문짝, 기와 따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이런 물건들을 작업실에 가지고 와 작품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박철의 부조 작업은 이때부터 비롯된 것이니, 어언 20여 년의 성상을 헤아린다.

90년대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는 기간에 박철은 바이얼린과 맷방석, 와당의 이미지를 하나의 화면에 조화시키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서양악기의 하나인 바이얼린이 지닌 날렵한 형태미와 맷방석의 투박하나 정감이 있는 자태를 결합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잉태된 이질적인 조형미의 대비를 통하여 또 다른 미적 가능성을 열어가고자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전업작가로서 박철이 한지에 기울인 정성과 참구 의욕은 지난 20여 년간 에 걸쳐 제작한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부조 기법을 통한 다양한 소재와 재료의 변용은 그의 작품을 매우 개성적인 것으로 만든 주 요인이다.
최근에 열린 두 차례의 개인전(포스코미술관, 닥터박 갤러리)을 통해 박철은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바 있다. 이제까지 사용해 온 아크릴 칼라를 버리고 전통 염색에서 사용하는 천연의 염료를 사용한 것이다. 그는 “한지가 늑슬고 있다”는 전제하에 오배자, 빈낭, 정향, 도토리, 밤, 쑥, 소목, 홍화, 황백과 같은 천연의 염색재료를 조색에 사용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친환경적 태도는 이른바 웰빙시대에 걸맞는 것이어서 더욱 시선을 끌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더불어 그의 작품이 주목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상태를 동경하는 데 있다. 기계문명이 진행될수록 인간의 마음은 자연을 동경하게 되는데, “생성과 소멸”에 바탕을 둔 박철의 한지작품은 우리의 마음을 자연으로 향하게 하는 촉매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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