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미술교육과 화단의 사이에서

윤진섭

현재 우리의 화단은 오랜 만에 찾아 온 호황을 맞이하여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경매제도도 정착돼 가는 중에 있으며, 각종 아트 페어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뉴욕의 소더비나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들려오는 한국 미술에 대한 외국 애호가들의 좋은 반응은 국내 미술시장의 활성화를 유인하는 요인이 되고 있으며,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한 각종 국제전에서 한국 작가들의 선전은 우리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90년대 중반 이후에 형성되기 시작한 큐레이터 제도의 정착은 국공립미술관을 비롯하여 사립미술관, 그리고 수준 높은 상업갤러리의 기획전 러시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이 모든 현상은 미술을 둘러싼 우리의 문화적 역량이 그만큼 신장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90년대 이후에 양산되기 시작한 미술의 전문 인력 배출은 이제 한 해에 만 여 명을 웃돌 만큼 놀라운 규모를 보이고 있다. 비록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미술대학들이 학생 모집에 곤란을 겪고 있지만, 졸업생 배출 면에서 보면 아직 전체 규모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단계는 아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과연 오늘의 대학 사회가 교육의 질과 내용 면에서 본연의 기능을 하고 있느냐 하는데 있다. 이는 미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미술인의 양성이라는 목표를 놓고 볼 때, 현재의 미술대학 제도는 미증유의 위협을 받고 있다. 최근에 우리 사회를 뿌리째 뒤흔들어놓은 가짜 학위 사태는 본질적으로 학위 취득이 충분조건이 아닌 예술계도 학벌주의에의 맹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이는 대학의 사회적 역할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역량을 지니고 있으나, 사회는 좋은 학벌을 요구하는 이 이중성 앞에 예술가 개인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가짜 학위의 범람은 이런 갈등에서 싹튼다.

전북대학교가 개교 60주년을 맞이하여 예술행사의 일환으로 이번 전시회를 기획했다.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에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리게 될 이 전시회는 한국화, 서양화, 조각, 공예를 망라하여 전국의 미술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미술담당 교수들을 대거 초대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면면을 볼 것 같으면 각 분야에서 높은 지명도를 유지하고 있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대략 4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초대작가들의 연령 분포는 이들이 우리 화단에서 중견 및 중진 내지는 원로작가로 활동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참고로 초대작가의 명단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화:
고찬규, 김근중, 김보희, 김선두, 박순철, 박인현, 박윤서, 석철주, 송계일, 송수남, 송수련, 오낭자, 오용길, 왕형렬, 우상기, 윤애근, 윤여환, 이만수, 이상찬, 이숙자, 이재복, 이철량, 이철주, 장혜용, 전래식, 조환, 허진, 홍순주

서양화:
강준, 권여현, 김교만, 김섭, 김용철, 김춘수, 김태호, 박동윤, 박영하, 연영애, 윤동천, 이두식, 이상조, 이열, 이윤동, 이종한, 임상진, 임영재, 정재영, 정현숙, 조기주, 주태석, 지석철, 한만영

조 각:
계낙영, 김봉구, 김수현, 김영원, 박석원, 박종대, 백철수, 백현옥, 신현중, 윤석구, 이영길, 전준, 정현도, 황순례

공 예:
곽대웅, 김윤환, 박형철, 백일, 신영식, 윤근, 임승택, 최승천

이상의 명단을 놓고 볼 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이 전시회가 특정한 주제 하에 조직된 기획전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전직 혹은 현직 대학교수로서, 동시에 현재 화단에서 활동하는 작가로서 각 세대의 흐름과 경향을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말하자면 우리 화단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시금석을 이 전시회가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 화랑가에서 거론되고 있는 40, 50대 작가들의 침체 현상과도 전혀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초대작가의 중심이 이 연령 대에 해당하는 이 전시회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른바 40, 50대 작가들의 위상은 외국의 경매가 몰고 온, 그리고 그 여파가 우리의 화단에 즉각 반영되어 형성된 20대-30대의 신세대 작가군과 상업화랑이 선호하고 있는 60-70대의 원로 작가군 사이에 낀 샌드위치의 세대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를 보다 쉽게 풀이하자면 40-50대 작가들은 멀게는 70년대의 모더니즘으로부터 80년대의 소위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현실참여의 시기를 직접 겪은 세대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40-50대 침체론인가? 이윤의 추구가 목적인 화랑의 입장에서 보면 고객이 선호하는 20대-30대 작가들과 원로작가들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일부 화랑들의 특정한 시각일 수도 있지만, 이 세대가 화단에 새로운 미학적 이슈를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보면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이 세대가 분발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여겨진다. 이른바 허리에 해당하는 40-50대란 얼핏 보기에 안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미술계의 입장에서 보면 안정적이란 바로 그 이유 하나로 비껴지나갈 수 있는 명분과 이유를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위에 열거한 초대작가의 면면에서 엿 볼 수 있는 것처럼, 한 때 새로운 미학으로 무장한 미술운동을 펼친 주역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더욱 분명해 진다. 전업작가에서 대학사회로의 진출은 사회적 신분의 상승이나 경제적 안정이란 프레미엄에 반비례하여 예술적 과업에 대한 치열성이 뒤떨어진다는 속설은 그것이 하나의 낭설이기 이전에 미술계에 암묵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슷한 연령대의 전업작가들(대부분이 시간강사인)이 불안한 현실 상황에 시달리며 뚜렷한 미학적 실천이나 예술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과 교수 작가들이 보다 안정적인 상황에서 같은 일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것은 경우만 다를 뿐 동전의 양면에 해당한다. 이것이 바로 화랑가에서 이야기하는 침체론의 내용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충분치 못한 교육 현실에서 미술대학의 교수들은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그러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는 것이 현실이다. 발달된 통신매체와 인터넷의 광범위한 활용으로 고급 정보의 취득이 쉬워진 현실에서 대학 교육은 그 질을 의심받거나 외면될 위기에 쳐해 있다. 특히 빈번한 해외여행을 통한 미술품 감상의 기회 증대와 각종 국제전의 직접적인 참관은 미술에 대한 대중의 눈높이를 상향 조정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대학의 미술교육은 이제 현실적인 투자와 함께 보다 과감한 미술의 실천적 체험이 필요한 국면에 도달했다고 판단된다.

이번 전시에 초대를 받은 작가들은 각자 해당하는 미술의 분야에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있는 교육자들이다. 개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개인적인 고유의 양식을 이루고 있으며, 미술계에서 그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들이다. 비록 이 전시회가 개교기념전이란 이름으로 준비된 것이긴 하나 번듯한 격식을 갖춘 화집을 출판함과 동시에 범화단적인 규모의 전시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보다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축제의 한 마당이 우리의 미술교육의 현실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와 함께 전국의 미술 교수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 전북대학교 개교기념전 서문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