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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의 문화탐험] <16> 다쓰미 오리모토-몸으로 보여준 인간애

윤진섭

다쓰미 오리모토. 우리 나이로 올해 예순 세 살의 일본 행위예술가다. 그런데도 그는 언제 봐도 어린애 같다. 장난기가 넘치는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고, 늘 무엇을 이용해 퍼포먼스를 벌일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소재를 찾는다. 예순이 넘도록 결혼도 하지 않은 그는 세계 각처를 떠돌아다니며 퍼포먼스를 벌인다. 유럽, 남북 아메리카, 아시아 등 발길이 닿는 대로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을 사귀고 작품을 발표한다. 그에게 있어서 삶은 곧 예술이다.

필자가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우연히 펼쳐든 독일의 미술잡지 ‘쿤스트 포럼(Kunst Forum)’에서였다. 거기에 큼지막한 광고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한 ‘빵 인간(Bread Man)’이었다. 얼굴 전체를 바게트 빵으로 감싼 두 명의 남자 요리사가 마주 보고 서서 인사를 하는 장면이었다. 1995년, 필자는 저서 ‘행위예술감상법’에 그 사진을 실었는데, 바로 그 해 필자가 기획전 관계로 일본에 갔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재팬 파운데이션 전시장으로 그가 필자의 책을 들고 찾아왔다. “하이, 미스터 윤!” 그가 활짝 웃으며 필자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필자가 그를 두 번째로 만난 것은 2000년도 ‘서울국제행위예술제(SIPAF2000)에서였다. 당시 이 행사의 총감독을 맡았던 필자가 그를 초청했던 것이다. 그는 인사동 한 복판에서 예의 바게트 빵을 가지고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관객 네 명을 즉석에서 섭외하여 자신의 ’빵 인간‘ 포스터를 들게 한 뒤, 본인은 얼굴에 바게트 빵을 노끈으로 묶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즉흥 퍼포먼스를 벌였던 것이다. 이 장면이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보도가 되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그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 ‘나는 인형에게 말을 걸다-와,와,와’

다쓰미 오리모토는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하여 상파울루비엔날레 등 어지간한 국제전은 두루 거친 세계적인 작가다. 70년대 초반에는 플럭서스 그룹에도 가담한 적이 있으며, 한 때는 백남준 선생의 스튜디오에서 조수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가연하는 티를 전혀 내지 않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다. ‘예술을 통한 인간애의 전도사’, 필자는 그를 이렇게 부르고 싶다.

그에게 있어서 빵은 몸을 상징하는 매개체다. 어디에 가든 그는 현지에서 바게트 빵을 구해 퍼포먼스를 행한다. 빵은 인간의 필수적인 생존 요건인 의식주 가운데 ‘식(食)’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에겐 없어서는 안 될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매개체다. 한 손에 딸랑이를 쥔 그는 늘 ‘브레드 맨!’하고 외치며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그럴 때 그의 모습은 마치 옛날 새벽에 골목길을 누비며 두부를 팔던 허름한 옷차림의 두부장수를 연상시킨다. “두부사려!” 딸랑 딸랑…. 이 얼마나 서민적인 광경인가!



▲ ‘항구에서 행진하는 브레드맨’

예술이 일상과 무한히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쉬운 언어로 증명한 사람이 바로 다쓰미 오리모토다. 그의 퍼포먼스는 얼마나 쉬운가. 빵을 뜯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위트가 섞인 쉬운 영어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악수를 하는 행위. 세상에 악수만큼 더 쉬운 세계 공통의 신체 언어가 어디 있으랴. 처음 만나는 사이일지라도 누가 손을 내밀면 거절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한다. 얼굴에 빵을 묶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민다. 그러면서 가볍게 말을 건다. 경우에 따라서 그것은 “헬로!”거나 혹은 “안녕하세요.”, 또는 “구텐 탁”이거나 “봉주르”가 된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면서 그는 사람들과 친밀한 접촉의 행위를 나눈다. 맨 처음의 인사는 악수로 이어지고 악수는 다시 몸을 껴안는 행위로 발전한다. 그는 그런 행위를 자기 혼자서만 하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관객들의 얼굴에 빵을 묶고 비슷한 행위를 하도록 유도한다. 그 수는 많을 경우 수십 명에 달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이제 다쓰미 오리모토의 사도들은 군중 속으로 파고들며 다양한 접촉을 시도한다. 접촉은 데스몬드 모리스의 말을 빌리면 일종의 신체적 ‘쓰다듬기(stroke)’다. 뺨을 비비는 행위, 손을 맞잡는 행위, 말을 거는 행위, 껴안는 행위,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 키스를 하는 행위 등이 모두 접촉의 양태인 것이다. 이런 행위가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랴. 상장을 수여하고도 악수를 청하지 않는다면, 도움을 받고도 고맙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면, 예쁜 어린이를 보고도 뺨을 쓰다듬지 않는다면, 오랜 만에 자녀를 만나고도 껴안아 주지 않는다면, 그런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랴. 그런 점에서 볼 때, 다쓰미 오리모토는 훌륭한 인간애의 전도사요, 사회 교육자다.

오리모토의 퍼포먼스 가운데 또 하나 볼만한 것은 권투다. 권투야 말로 링이라는 제한된 구역에서 벌이는 접촉의 양태 가운데 하나다. 그는 빨강, 노랑, 하양 색의 로프 속으로 글러브를 낀 관객들을 불러들여 개그와도 같은 권투 시합을 벌인다. 외마디 소리와 함께 가볍게 툭툭치는 동작을 보고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린다. 이 즉흥적인 버라이어티 쇼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오리모토의 진가를 잘 보여준다. 그의 권투 퍼포먼스는 소통매체로서의 언어가 지닌 한계를 몸짓으로 보완하는 행위다. 언어는 몸짓이 딸리지 않는다면 화석이 된다. 그래서 R. P. 블랙머는 “몸짓은 언어에 고유하며, 몸짓을 잘라내는 것은 뿌리를 자르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권투는 훈련을 통해 단련된 두 신체가 벌이는 몸의 대화다. 거기에는 말이 부재한다. 오로지 몸의 부딪침이 있을 뿐이다. 장내의 아나운서는 말로 이 스릴이 넘치는 퍼포먼스를 전달하려고 하지만, 조이스 캐롤 오츠가 적절히 비유했듯이 권투는 말보다는 춤이나 음악에 더 가깝다. 오죽하면 세계 헤비급 챔피언을 지낸 무하마드 알리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고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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