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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의 문화탐험] <17> 박원주-사형 혹은 죽음 앞의 몸

윤진섭

■끝없는 고독·공포..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1930년대 중반 미국 전역을 휩쓴 대공황기의 어느 날, 미국 남부의 루이지애나에 있는 삭막한 콜드 마운틴 교도소에 7척 거구의 흑인 사형수 존 커피(마이클 클라크 던컨 분)가 입소한다. 죄목은 두 명의 백인 쌍둥이 자매를 강간하고 살인을 한 혐의다. 그러나 어둠을 싫어하고 어린이처럼 순수한 눈동자를 지닌 이 죄수는 타고난 초능력으로 병을 고치고 죽은 쥐를 살리는 이적을 행한다. 그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독방의 간수장 폴 에지컴(톰 행크스 분). 그는 그처럼 착한 사람이 살인이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리 없다고 확신을 한다. 그러나 무죄를 밝히기 위한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존은 끝내 전기의자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스티븐 킹의 ‘그린 마일(Green Mile)’이란 베스트셀러 소설을 각색하여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동명의 이 영화는 선과 악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심성을 존 커피(선)와 와일드 빌(악)이라는 상징적인 두 캐릭터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그린 마일’이란 사형이 확정된 죄수들이 전기의자가 놓여있는 사형장으로 가는 녹색의 리놀륨이 깔린 복도를 상징한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이래 인간은 무수한 살인을 저질러왔다. 그리고 그와 같은 끔찍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인류는 다양한 형벌을 고안해 냈다. 근대 이전 유럽의 사형 방법에는 교수형을 비롯해 참수형, 십자가형, 화형, 생매장형, 압살형 등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최고형인 능지처사를 비롯하여 참형, 교수형, 사약형 등이 있었다.



전기의자를 이용한 사형은 ‘electrocution’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에디슨이다. 직류식 전기를 이용한 전구를 발명하여 인류에게 빛을 선사한 그는 교류식을 이용하여 가정에 전기를 공급하려 했던 경쟁사 웨스팅하우스에 위협을 느꼈다. 에디슨전기회사는 궁여지책으로 이 방식이 사람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전기의자를 고안해 냈다. 이렇게 해서 전기의자 사형법이 탄생되기에 이른 것이다.

미술에서 전기의자를 소재를 삼은 사람은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이다. 한국에서는 종이로 만든 박원주의 설치작품이 유일하다. 그의 ‘고독공포를 완화하는 의자’(2004년 작)는 미국 뉴욕주 오스닝에 있는 싱싱주립교도소에서 1928년부터 1963년까지 사형 집행에 사용되었던 전기의자의 실제 도면을 근거로 정확하게 재현한 것이다. 그녀는 나무나 가죽, 쇠가 아니라 A4 사무용지로 제작을 했다. 그녀는 이 작품의 제작을 위해 뉴욕에 있는 오스닝 역사사회박물관을 방문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는데, 도면을 내준 담당자가 한국의 사형제도는 뭐냐고 물었다. 그녀가 “교수형인데 요즘엔 집행이 거의 되지 않고 있다”고 대답하자 “아직도 그런 야만적인 방법을 쓰느냐”며 무섭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고 한다.

그러나 교수형이 짧은 시간에 사형수의 숨을 끊는 것에 비해 초기의 전기의자는 문제가 많았다. ‘그린 마일’에서 보는 것처럼 강한 충격과 함께 사형수의 몸이 ‘빠지직’ 하고 구워지기만 할 뿐, 단숨에 절명에 이르게 하지는 못 했던 것이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2004년에 발표된 박원주의 ‘고독공포를 완화하는 의자’는 사형이란 인위적 제도에 의해 죽어야만 하는 인간의 영혼에 대한 위령제다. 사방이 시멘트로 된 사루비아다방의 음산한 지하 전시장 분위기는 이 설치작업에 안성맞춤이었다. 내가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을 때, 나의 눈에 어두운 실내의 한 구석에 놓인 한 쌍의 전기의자가 들어왔다. 종이로 만든 그것은 강렬한 조명을 받고 어둠 속에서 희게 빛나고 있었다.

전기의자를 종이로 만든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 원래 전기의자 사형에는 동반이 없지 않은가. 작가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동반을 통해 상상으로 나마 이루어보는 즐거움을 주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녀의 작품을 ‘인간의 영혼에 대한 위령제’로 해석한 나의 의도와 맞닿는 부분이다.

비록 사형은 아니지만, 영혼 결혼은 망자가 이승에서 못 이룬 한을 풀어주는 위령제의다.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물에 빠져 죽은 총각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행해지는 영혼 결혼이 대표적이다. 경기도 지방에서는 망자의 영혼을 극락세계로 보내기 위한 진오기굿이 행해지는데, 이때 무당은 바리공주를 노래한다. 불쌍한 영혼과 영혼이 만나 저승에 잘 이를 수 있도록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다. 이 놀라운 상상력! 그래서 무속과 예술은 뿌리가 같다고 하지 않는가.

영화 속에서 존은 끝내 혐의를 벗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전기를 보다 잘 통하게 하기 위해 정수리를 둥글게 깎고 간수들은 존의 머리에 헬멧을 씌운다. 전기 스위치를 올리자 ‘빠지직’ 하며 타들어가는 존의 살. 진짜 살인자인 와일드 빌은 살아있고 자매를 구하려 했던 존은 죽어야만 하는 이 부조리한 상황. 거기에 어찌 한이 없을 것인가.



박원주는 이 설치작업을 통해 사형 혹은 죽음이란 무거운 주제를 희화화(戱畵化)한다. 나무와 가죽, 쇠로 이루어진 전기의자를 규격화된 A4 사무용 종이로 재현함으로써 실제의 용도를 파기한다. 거기에는 상상의 공간이 있다. 위령은 곧 상상이 아닌가. 영혼 결혼에서 보듯이, 망자가 한을 풀고 극락왕생하리라고 상상함으로써 마음이 편해지자는 것 아닌가.

박원주는 2006년 미국 뉴욕에 있는 조각센터가 기획한 ‘데니얼은 강이다(Denial is a River)’라는 전시회에서 ‘종이사형(Papercution)’이란 퍼포먼스를 행했다. 참가를 희망한 어린이 두 명을 종이로 만든 전기의자에 앉혀 ‘종이사형’을 시킨 것이다. 서로 나란히 앉자 ‘죽도록 사랑’을 해보라는 듯이.

박원주의 종이로 만든 전기의자는 인류가 만든 사형이란 불합리한 제도와 때로는 악이 선을 이기는 부조리한 상황에 던지는 예리한 풍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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