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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아트 페스티벌]“팝에 대한 심리적 콤플렉스 극복해야”

윤진섭

과연 한국의 독자적인 ‘팝 아트(Korean Pop)’는 가능한가? 이번 세미나의 발제는 이런 질문을 화두로 이루어질 것이다. 1967년 국립중앙공보관에서 열린 ‘청년작가연립전’의 일부 멤버들, 즉 ‘무’ 동인과 ‘신전’ 동인의 작가들이 1960년대 중반 보여준 팝의 세계가 시대가 지나면서 우리의 현대미술사 속에서 어떻게 변천해왔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면서 그 정착의 가능성을 타진해 볼 것이다.

‘팝 아트(Pop Art)’란 용어는 1954년 영국의 미술평론가 로렌스 알로웨이(Lawrence Alloway)가 대중문화적 성격이 뚜렷한 미술작품을 가리켜 사용한 이래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이다. 그는 1962년 순수미술의 맥락에서 대중적 이미지를 사용하는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점차 범위를 넓혀 이 용어를 적용시켜나갔는데, 첫 작품은 영국작가 리처드 해밀턴의 ‘대체 오늘의 가정을 그처럼 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이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 팝 아트는 영국보다는 오히려 미국에서 번성하여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클래스 올덴버그, 재스퍼 존스, 톰 베셀만과 같은 작가들을 배출했다.

미술의 경우, 한국의 팝 아트는 외양적으로는 6·25 이후 한국 사회에 번진 미국의 문화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이는 기지촌을 소재로 한 전후 문학의 등장과 미군부대의 장교 클럽을 중심으로 한 팝 음악의 정착과 궤를 같이 하며 한국의 경제, 사회, 정치적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성장해 왔다. 코카콜라 병을 병치하여 그린 고영훈의 ‘코카콜라’(1974년 작)가 보여주듯이, 1970년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은 경제적 번영을 가져왔고, 백화점과 연쇄점의 번창은 ‘소비가 미덕’인 사회에서 ‘팝’의 정착을 예고한 사회적 배경을 이루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한국 사회는 컬러 텔레비전의 방영으로 감수성 자체가 변질되기에 이르고, 이는 팝의 사회적 토대를 확고히 하는 변수가 되었다. 월남전 참전과 중동특수로 인한 경제적 풍요는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외식 문화의 형성과 함께 마이카 시대를 열었는데, 이는 대중소비사회를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은 것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신세대 미술은 한국 팝의 본격적 정착을 가져왔다. 포스트 모던 문화현상을 반영하는 이러한 움직임은 일련의 계보를 이루면서 2000년대 들어서 후기산업사회 속의 소비 행태를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팝 아트는 민화를 현대화하는 작가들과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등 대중적 스타들의 도상을 패러디하는 작가들 등 몇 개의 범주로 나눠 고찰해 볼 수 있다. 현재 다문화적 현상을 보이는 한국은 팝에 관한 한 심리적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세계미술의 흐름에 동참,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하는 중요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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