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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시대의 유목민과 <솔라 이클립스>의 창립

윤진섭

예술에서 매체란 궁극적으로 소통을 위한 도구적 성격이 강하다. 예술 자체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위한 것일진대, 매체는 그러한 인간들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예술적 영감과 창의를 세상에 드러내는 수단이요, 매개하는 교량과도 같다. 원시 동굴 벽화에 기원을 둔 회화를 비롯하여 흙을 손으로 빚어 어떤 형상을 만든 데서 비롯한 조각은 이의 대표적인 경우다. 또한 인간의 신체는 무용이나 연극 등 공연예술(performing arts)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예술적 영감을 표현하는 주된 매체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예술의 이러한 매체들이 아날로그적인 것이라면, 디지털 시대를 대변하는 미디어 아트는 그 역사가 매우 짧으면서도 강력한 표현매체로 예술가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컴퓨터를 비롯하여 비디오, 오디오, 레이저, LED의 등장과 궤를 같이하는 미디어 아트는 특유의 시청각적 강렬성과 몰입, 융합, 상호작용(interactivity) 등의 특성으로 인하여 예술 표현상의 신 패러다임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아날로그 매체인 회화와 조각이 형식보다는 내용면에서 변화를 추구하면서 소외 효과를 낳는 반면, 미디어 아트는 그 자체가 대중에게 낯선 존재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 아트는 아직도 실험적 영역에 머무르고 있으며, 퍼포먼스와 함께 전위의 최전방에 위치한다. 오늘날 비엔날레를 비롯한 다양한 국제전에서 미디어 아트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광경은 미디어 아트가 지닌 이러한 실험성과 전위성에 기인한다.

광주는 1995년 광주비엔날레의 창설을 계기로 미술의 현대화라는 시대적 과제에 직면해 왔다. 광주를 가리켜 예향이라고 부를 만큼 전통예술의 깊은 역사를 지닌 이 도시의 시민들은 전통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5.18 민주화 운동으로 촉발된 독재에 대한 항거는 인권의 도시로서의 광주라는 또 하나의 정체성을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전통과 인권이라는 광주의 두 수레바퀴는 광주의 정체성을 이끄는 견인차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볼 때 광주비엔날레는 예술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비엔날레를 둘러싸고 벌어진 숱한 갈등과 저항, 반목, 화합의 드라마는 광주가 다름 아닌 예술의 용광로임을 보여준 사례다. 표면적으로는 조용한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는 펄펄 끓고 있는 광주의 예술 정신은 언제든지 터질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휴화산과도 같다. 어떤 계기가 주어지기만 하면 혁명적으로 불타오를 수 있는 광주 정신의 치열성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수놓은 역사적 사건들만큼이나 전복적 가능성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 광주에서 미디어 그룹 <솔라 이클립스(Solar Eclipse)>의 창립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15년의 역사를 지닌 광주비엔날레와 최근에 선보인 [디지페스타]와 같은 미디어 전시회에 힘입고 있다. 광주에서 미디어 아트를 표방한 본격적인 그룹의 태동은 매우 희귀한 사례인데, 그것은 광주비엔날레의 오랜 역사를 상기할 때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그룹의 출범은 여러 면에서 ‘사건적’ 의미를 지닌 다고 할 수 있다.
<솔라 이클립스>의 창립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다양성이다. 예향이라는 광주의 별칭이 의미하는 것처럼 역사적으로 광주는 전통예술이 강세를 보이는 도시다. 서예와 문인화를 비롯하여 구상회화와 조각을 전공한 미술인들이 그 어느 도시보다 많은 곳이 광주다. 그런 광주의 정체성에 강한 충격으로 작용한 것이 바로 광주비엔날레의 창설인데, 그 이후 광주 미술계의 변모는 전통에 ‘현대’가 스며드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하여 디지페스타, 그리고 수십 년의 역사를 지닌 <에뽀크> 그룹 등등이 보여준 전시회들은 광주 시민들에게 새로운 미적 경험의 계기를 제공해 준 좋은 기회였다. 따라서 이제 전통예술은 현대미술에게도 어느 정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솔라 이클립스>의 창립은 ‘미디어 아트’라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예술 장르를 광주시민들에게 본격적으로 소개한다는 점에서 다양성의 통로를 열게 될 것이다.

<솔라 이클립스>의 창립이 지닌 두 번째 의미는 국제화의 표방이다. 이는 이 그룹의 멤버들의 면모에서 보듯이, 비단 한국 작가들뿐만 아니라 광주에 생활 기반을 두고 있는 외국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특정한 대학이 아니라 다양한 대학의 출신 작가들로 구성되고 있는 점도 <솔라 이클립스>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이처럼 <솔라 이클립스>가 지닌 개방성과 국제성은 전통예술과 학연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광주 미술계를 자극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광주비엔날레의 창설에서 보듯이 광주는 전통과 현대를 적절히 조화시키면서 동시에 국제화라는 시대적 소명에 충실해 왔다. 그러나 그처럼 원대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지연과 혈연, 학연 등 구태의연한 폐습이 합리적 판단을 가로막아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합리적 판단의 결여는 광주미술의 국제화에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지역이라는 ‘블록’에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국제화와 지역화는 양립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는 때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주지하듯이 지역성(locality)은 고유의 미적 가치를 지니면서 국제화내지는 세계화를 이룰 때 상승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것은 개방적인 태도를 취할 때 얻어진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광주가 지닌 배타성은 국제화를 가로막는 부정적 요인으로써 광주의 국제화를 저해하는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아트는 퍼포먼스와 함께 가장 진폭이 큰 예술의 장르다. 그것의 핵심은 ‘융합(convergence)’에 있다. 미디어와 미디어들 사이에 다양한 융합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면서 예술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점은 미디어 아트가 지닌 장점이다. 거기에서 새로운 미적 경험의 계기가 이루어진다. 그것은 과학기술의 진보와 궤를 같이한다. 아이 폰과 스마트 폰의 등장은 Facebook이나 Twitter 등등의 사회적 관계망(social networking)의 등장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나는 최근에 발표한 한 논문에서 “이제 새로운 창조는 손끝에서 이루어진다.”라고 주장을 한 바 있는데, 이는 스마트 폰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처럼 예술과 일상의 합치는 ‘투 문 정션(Two Moon Junction)’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예술과 일상이 하나가 되는 경지를 보여준다. 이제 스마트 폰 사용자들은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작은 예술을 창조한다. 이미지를 다운받아 변형하거나(transform), 문자를 전송하는 행위는은 참여예술의 새로운 양상이다. 지하철에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하는 것은 이제 결코 낯선 광경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선사시대의 동굴로 먼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과도 같다.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던 선사시대의 인류에게 있어서 예술과 생활의 구분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치 않았다. 예술이 곧 생활이고 생활이 곧 예술이었던 것이다. 인터넷이 매개하는 사이버상의 수많은 카페들은 독립된 방(cell)으로 이루어진 벌집을 연상시킨다. 사회는이제 사이버상에서 미분화되고 있다. 물리적인 국가의 경계는 점차 희미해지고 ‘버티즌(virtual citizen의 준말, 필자의 조어)’들은 사이버 유목민으로서의 생활을 즐긴다.
미디어 아트에 대한 이해는 삶의 양식에 대한 이해에 다름 아니다. 미디어 아트는 디지털 패러다임이 낳은 시대적 결과물이다. 거기에는 디지털 시대의 삶의 양식이 녹아 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솔라 이클립스>의 창립은 새로운 삶의 양식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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