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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

윤진섭

이명박 대통령이 8.15 기념 경축사에서 밝힌 ‘공정한 사회’ 발언을 무색하게 하는 사태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몇몇 장관 후보자들의 사퇴 파동은 우리의 공직사회가 얼마나 도덕 불감증에 걸려있는가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거기에 덧붙여 유모 외교부 장관의 딸이 특채에 합격했다는 SBS의 최근 보도는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도덕망국증’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소위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사회에서 버젓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것도 현직 장관의 딸이 바로 그 부서에서 합격을? 설령 그만한 실력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해도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는 당연히 응모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 속담에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거늘, 왜 의심을 사는 행동을 보여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가? 이 정도가 되면 공직자들의 전반적인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는 비단 정치권에만 해당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문화예술계는 과연 어떤가? 대중에게 가장 순수하다고 인식돼 있는 예술계는 깨끗하고 공정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각종 공모전을 비롯하여 공채, 콩쿠르, 수상작 선정이 과연 말 그대로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이런 의문은 겪어본 사람들에겐 고개를 흔들 정도로 부정적으로 들릴 것이다.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말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적 행태를 자조적으로 그려낸 자화상일 뿐이다.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미술계에 국한시켜 말해보자. 말썽 많은 미술대전 비리를 비롯하여 전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공공조형물, 다양한 행사의 커미셔너나 예술감독 선정이 과연 공정한 심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가? 복잡한 규정이나 절차는 다만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뿐 정교한 각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 아닌가? 그래서 그런 신고(辛苦)를 겪은 실력자들이 사회를 등지고 은둔한다면 그것은 국가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이 통용되는 곳이 바로 대중이 순수하다고 알고 있는 예술계의 실상인 것이다.

대통령이 밝힌 ‘공정한 사회’는 노력하는 사람이 과실을 따먹는 사회를 일컬음이다. 어떤 목표를 앞에 놓고 밤잠을 안 자고 열심히 노력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사회를 말한다. 공직자들은 그런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공정한 절차를 마련하고 객관적 기준에 의해 합당한 인물이 선정되도록 공적 집행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 일이 중립적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만일 그런 중대한 일을 집행하는 주체들이 부정의 주체가 돼 움직인다면 이는 뭔가 잘못돼도 대단히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공조형물을 비롯하여 각종 공모전의 수상작 선정은 무엇보다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할 분야이다. 그것이 공정하게 집행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실행하는 주체의 인식이 바로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공공적 이익을 도모하는 중차대한 일이라는 인식, 자신은 그 일을 공적으로 수행하는 위임받은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인식, 그리고 그 일이 ‘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에 하나의 징검다리를 놓은 중요한 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때 부정의 어두운 그림자는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제 이 심상치 않는 조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진은 발생하기 전에 경고의 음을 발한다. 그것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은 인간이 창안해 낸 지진계가 아니라 연못의 메기들이다. 메기들이 지진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준동하는 것이다. 어찌 똑똑하다는 인간들이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 메기만도 못 한 것인가?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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