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
흔히 추하고 역겨운 것으로 치부되는 똥을 화려한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이미지의 전복이 필요하다. 정진아는 합성수지로 똬리를 튼 똥 모양의 형태를 만들고 거기에 화려한 천과 반짝이는 스팽글을 붙여 아름다운 조각품을 제작했다. 미와 추라고 하는 미적 범주의 전복을 나름대로 시도한 것이다. 이때 추는 미의 하위 범주가 아니라 대등한, 즉 등가적인 미적가치가 되는데, 정진아의 <분예기> 시리즈는 그 중의 한 양태이다. 기존의 가치나 관습에 대한 전복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Ⅱ.
<분예기> 시리즈 이후 정진아에게는 약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모색을 위한 준비기였다고 하는 편이 타탕할 것이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일상을 차분히 돌아보며 사물과 언어에 대한 문제에 돌입하게 된다. 태피스트리, 압정, 조화(造花), 스테인리스, 석고, 자석과 쇠구슬, 의류 부자재 등등은 <분예기> 이후에 그가 사용하는 재료들이다. 어느 것이나 일상적 범주를 넘어서 있지 않다. 그가 작품에 도입하고 있는 언어가 일상어라는 점과 그가 다루는 재료가 일상적 사물이라는 사실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
나는 정진아가 2008년에 가나포럼스페이스에서 연 개인전에 출품한 일련의 작품들에 흥미를 느끼는데, ‘조울, 어느 活字狂의,’라는 테마로 전개된 이 작품들은 언어와 사물의 형태, 그리고 인간의 지각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즉,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문장으로 읽혀지지만, 일정한 거리에서 보면 사물의 이미지 윤곽선으로 보이는 활자의 이중성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가령,
“그물코뺀대기사림질만도못하다급살옘병이나맞을까마귀밥이되다,귀신얼음먹는소리한다귓구멍에공구리쳤냐김밥옆구리터지는소리한다”“귀신방귀에쌈싸먹는소리국쏟고투가리깨치고밑구녕까지데이다” 등등.....
나아가 “공자가공짜로맹자맹장수술이나한다고과부좆주무르듯구라까다고쟁이.....”하는 문장은 직방 <분예기>로 통하는 길을 트고 있어 주목된다. 정진아가 쓴 이 일련의 문장들은 속어를 통해 엄숙한 것에 대한 전복(공자로 대변되는 엄숙한 유교문화와 좆과 고쟁이로 대변되는 하위문화)을 여지없이 보여주며(미와 추의 위계 전복), 동시에 그러한 대비를 통해 해학과 익살의 정신을 끄집어낸다. 그 기반은 하위문화의 대변자인 무당의 굿거리 공수와 같은 문장구조이다. 이 즈음에서 그가 문장으로 그려낸 연꽃이 시방(十方) 세계 모든 것을 품에 안는 불교의 상징이란 것도 염두에 두도록 하자. 이것들은 모두 ‘금기의 위반’이란 정진아의 생각에 토대를 두고 있다.
Ⅲ.
근작을 통해 정진아는 ‘말장난(language game)’을 더욱 심화, 확대해 나간다. 그는 그것을 가리켜 ‘말놀이(word play)’라고 부른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다음과 같다.
이러한 단어들을 조형화하는데 정진아가 사용하는 재료들은 아크릴, 사탕, 동전, 인조보석, 펠트, 스테인리스 스틸, 촛농, 스테인드글라스 등이다. 이들 대부분이 조각에서 사용하는 재료들이자 일상적 사물들이다. 여기서 재료와 인용된 단어들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 가령 시궁창을 뜻하는 ‘ditch’는 성스러운 것을 의미하며 기독교의 상징으로 통하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제작하는 식이다. 이러한 반어(irony)와 대비의 방법론은 전편을 통해 쉽게 찾아진다.
정진아가 작품에 차용하고 있는 이 일련의 단어들은 의미론적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이 작품들의 해석은 단어에 따르는 관습적인 측면보다는 그 심층에 드리워진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나 습관, 생각에 비춰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이 작가와 관객 사이의 소통을 전제로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용인한다면, 작가가 왜 유독 이런 단어를 선택하였는가 하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그가 기독교의 모태 신앙이라는 사실과 양친의 엄격한 훈육과 기율 아래서 성장하였다는 사실은 이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그가 기도나 애원, 탄원 혹은 기독교 성가를 의미하는 ‘미제레레(Miserere)’를 취하고 있다거나, 속(俗)을 의미하는 단어들, 가령 ‘guilty’나 ‘ditch를 차용하고 있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나는 이를 총칭하여 ‘성(sacred)과 속(profane)의 진자 운동 속의 심리적 갈등관계’로 부르겠다. 이처럼 의미론적으로 볼 때 단어의 표층을 이루는 사전적, 관습적 의미와 언어 사용자의 심층을 이루는 심리적, 개별적 의미 사이에서 파생되는 차이를 살펴보는 것은 정진아의 작품 해석에서 매우 중요하다. ‘금기의 위반’은 ‘관습의 전복’과 함께 이번 출품작들의 기저를 이루는 전략들이다.
정진아는 이들 일련의 조각작품을 토대로 접촉을 시도한다. 그는 이번에 출품한 <안녕?>을 보드랍고 푹신하고 따뜻한 펠트로 제작했다. 알록달록한 예쁜 색깔로 칠하고 부드러운 글씨체로 제작한 이 작품은 어쩌면 사회적 ‘쓰다듬기(stroke)’가 필요한 현대사회에 주는 작가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사이버와 인공성형으로 대변되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날로 기승을 부리는 현대사회에서 작품으로 접촉을 시도한다는 것은 분명 정진아의 것과 같은 아날로그 예술작품이 지닌 기능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