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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미술진흥정책 - 영국

하계훈



문화 예술 진흥의 기본 입장은 이른바 ‘팔 길이만큼 물러선다는 원칙(arms length principle)’에 입각하여 가능한 한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고 준정부기관을 통해 지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국에는 재단법인 성격의 각종 예술 지원 단체나 공·사립 재단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편이다.

문화복권을 통한 기금 조성

이러한 사업을 위해 필요한 예산은 정부에서 배정되는 자원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술평의회와 정부는 1994년부터 문화 복권을 발행하여 모자라는 재원을 충당하고 있는데, 현재 복권 기금으로부터 지원되는 규모가 정부의 지원금을 상회하고 있다.

문화 복권의 시행은 비록 오는 2002년까지라는 단서를 붙이고 출발하였지만, 이제까지 비교적 성공적으로 집행되고 있다. 복권을 통한 문화 기금 조성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대립되고 있기는 하나, 비교적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영국은 이미 18세기 중반에 대영박물관을 설립할 때에도 문화 복권 사업을 시행한 전력이 있다.

복권 기금은 예술 진흥을 위하여 1996년부터 예술평의회를 통해 두 가지 중요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 그 하나는 ‘The Arts for Everyone Main Programme’이다. 비교적 사업 규모가 큰 프로젝트들에 대해 예술평의회 기금 지원과는 별도로 개별 프로젝트당 5백 파운드부터 50만 파운드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며, 주로 국가적 차원의 사업이 수혜 대상이 된다.

또 하나의 프로그램은 ‘The Arts for Everyone Express Programme’이다. 프로젝트당 5백 파운드에서 5천 파운드까지 지원되는 비교적 규모가 작고, 지방이나 소단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젊은이들과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프로젝트나 처음 시행되는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중점 지원한다.

이 밖에도 복권 기금이 지원하는 다양한 사업 가운데 국립 과학기술 예술기금(NESTA, National Endowment for Science, Technology and Arts)은 미국의 국립인문기금(NEH)과 국립예술기금(NEA)을 합쳐 놓은 것과 비슷한 지원 기구이다. 이 기금을 통해서도 작가들이나 예술 기관들이 지원받을 수 있다. 1991년에 설립된 체육예술재단(Foundation for Sports and the Arts)을 통해서도 매년 2천만 파운드 정도가 상금 형식으로 지원된다.

문화 예술 단체에 대한 단순한 재정 지원 이외에 정부에서도 매년 5백만 파운드 정도를 보조하는 예술 후원기업 연합(ABSA, Association for Business Sponsorship of the Arts)이 있다. 1984년에 설립된 메세나 형태의 단체로서 이제까지 1억 2천만 파운드 이상의 자금을 문화 예술 기관에 지원해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 전문 인력들을 예술 기관에 파견시켜 효율적인 경영을 지원해 오고 있다.

영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전통 미술과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좀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런던을 중심으로 대도시에 집중된 미술품을 전국으로 순회시키는 사업도 펼치고 있다. 예술평의회가 각 지역의 예술위원회들과 협력하여 벌이고 있는 국립 소장품 순회 계획과 국립 순회 전시회가 그것이다. 국립 미술관 소장품들을 지방 미술 기관에 대여하는데 최대의 걸림돌이 되는 작품의 보험 문제를 정부 보증으로 해결하고 있다.

국립 소장품 순회 계획은 주로 국립 미술관에 소장된 미술품을 다루며, 국립 순회 전시회는 주로 예술평의회와 영국문화원에서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는 생존 영국 작가들의 작품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국립 순회 전시회는 예술평의회의 자금 지원을 받아 런던의 사우스 뱅크 센터(South Bank Center)에 있는 헤이워드 갤러리(Heyward Gallery)에서 담당한다.


공모전과 수상 제도

영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작가들이 대학을 통해 배출된다. 영국에서 왕립미술원 이외에 전통 깊은 미술 대학으로는 슬레이드(Slade School of Art), 첼시(Chelsea School of Art)·골드스미스 칼리지(Goldsmiths College of Arts)·왕립 미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등이 있다.

그런데 예술평의회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이러한 대학을 비롯하여 전국의 각종 미술 대학에서 배출되는 작가들 가운데 85% 이상은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대부분의 작가들이 교직이나 그 밖의 부업을 갖고 있고, 정부에서 저소득자들에게 지급하는 생계 보조금에 의존하여 어렵게 작품 활동을 해나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정부의 미술 지원 사업 가운데 작가들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사업은 국내외의 5백여 개 정부 사무실을 장식하기 위한 미술품 사들이기를 들 수 있다. 현재까지 국립 미술관·박물관에 소장되거나 그 곳에서 대여한 작품들을 제외하고도 정부는 약 1만2천여 점의 미술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미술품 구매를 통해 작가들을 지원하는 또 하나의 조직인 ‘미술을 통한 교육협회(Society for Education through Art)’는 매년 각급 학교의 공간 장식을 위한 미술품 구매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영국에도 몇 개의 공모전 형식의 미술 행사가 있기는 하지만, 상금의 규모나 입상자에게 돌아가는 혜택 등을 고려해 볼 때 우리나라와는 크게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영국에서 작가로서 성장해 나가는 길은 상업 화랑이나 대안 공간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이 과정에서 평론가와 큐레이터에게 발탁되는 순서를 밟아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리게 되는 경우가 가장 흔한 것이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공모전 가운데 젊은 작가로서 짧은 시간 안에 국내외의 명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매년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에서 주관하는 터너상(Turner Prize)을 수상하는 것이다.

1984년에 처음 시작된 터너상은 50세 이하의 영국 작가(영국에 거주하는 외국 작가도 포함)들 가운데 한 해 동안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해온 작가 대여섯 명을 선발하여 테이트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고, 전시회 끝 무렵에 심사위원단이 한 명의 최종 수상자를 발표하게 된다. 수상자는 2만 파운드의 상금을 받게 되며, 1991년부터 후원자로 참여하고 있는 채널 4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영국 최고의 사립 현대미술관인 사치 갤러리(Saatchi Gallery)에서 전시회를 갖게 되는데, 이 단계에 이르면 작가는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이 과정을 밟은 작가들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로는 하워드 호지킨(Howard Hodgkin, 1985년 수상)·길버트와 조지(Gilbert & George, 1986년 수상)·토니 크랙(Tony Cragg, 1988년 수상)·리처드 롱(Richard Long, 1989년 수상)·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1995년 수상) 등이 있다. 영국의 미술 시장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크리스티나 소더비와 같은 국제적인 경매 회사의 역할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미술보다는 골동품이나 18·19세기 미술품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터너상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현대미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켜보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으며, 현재까지 비교적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


문화외교의 첨병 영국문화원

영국의 현대미술을 국외로 소개하는 일은 영국문화원이 주된 일과 중 하나이다. 1934년에 설립된 영국문화원은 현재 1백9개 국 2백28개 도시에서 영어와 영국 문화의 전파를 통한 주재국과의 협력 관계를 수립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예술 분야에서는 매년 2천 건 정도의 공연과 전시 행사를 개최 또는 후원하고 있으며, 미술 분야에서는 주로 영국 현대미술의 혁신성과 다양성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일은 영국 내에 있는 영국문화원의 미술 담당 부서에서 맡고 있으며, 예술평의회·외무부 등과 협력하여 진행한다. 영국문화원의 중요한 미술 사업 가운데 하나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한 국제적인 전시회에 작가를 선발 파견, 여러 가지로 지원하는 일이다.

문화 예술의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영국으로 들어오는 외국 예술인과 예술 단체를 담당하는 기구는 영국문화원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Visiting Arts Office’라는 기구다. 1977년에 설립된 ‘Visiting Arts Office’는 영국문화원·예술평의회·외무부 등으로부터 기금을 지원받고 있으며, 관련 예술 기관과 예술가에게 자문·상담·정보 제공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다양한 문화 예술이 영국 전역으로 유입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밖에도 ‘Visiting Arts Office’는 행사 정보에 관한 출판 사업, 행사 진행 인력에 대한 교육 사업 등도 병행하고 있으며, ‘국가 프로젝트 시상 계획’을 통해 기금 지원 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이 계획은 기본적으로 현대 예술 분야의 각종 공연·전시 사업이 영국에서 시행될 때 기금 지원과 자문을 제공하는 사업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전통 예술이나 민속 예술도 수혜 대상에 포함된다.


InIVA의 프로그램들

외국에서 영국으로 유입되는 예술가와 예술 단체들을 도울 수 있는 기구로는 국제미술기구(InIVA, Institute of International Visual Arts)를 들 수 있다. InIVA는 전시·출판·연구·교육 및 훈련 등 4개 분야에서 현대미술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특수한 기구다.

InIVA는 독자적인 전시 장소나 교육 장소를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국내외의 다양한 미술 기관들이나 학교, 작가와 큐레이터들과 협력하여 일종의 기획 회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영국 현대미술이 국제적으로 알려지고 미술 기관과 미술인들이 국제적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InIVA는 매년 예술평의회로부터 50만 파운드 정도의 자금을 지원받아 운영되고 있으며, 프로젝트에 따라 미국의 앤디 워홀 재단같이 국제적인 기구들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InIVA의 특징적인 연구 사업 가운데 ‘Artist-in-Research Programme’은 작가가 공장·병원 등의 장소에서 일정 기간을 지내면서 그 기관을 심층적으로 이해, 환경에 맞는 작품을 창작해 내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서 선발된 작가에게는 일정한 보조금이 지급된다. 이 밖에도 InIVA의 연구 사업 가운데 하나인 ‘Artists Fellowship’은 작가가 일정 기간 학교에서 강의와 연구를 할 수 있게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영국의 미술 진흥 정책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예술평의회나 영국문화원과 같은 정부의 대리 기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곳에서 대량의 지원이 이루어지기보다는 여러 곳으로부터의 복수 지원 형식을 지향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작가들의 창작 여건을 개선시키고 국민들의 미술품 접촉 기회를 최대한으로 확대시킴으로써 생활 속에 문화를 접목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영국의 문화 예술이 국외로 뻗어나가는 원동력을 얻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외적인 측면에서는 영국 정부가 과거의 식민지 국가를 중심으로 문화 종주국 역할을 지속하려는 것이며, 문화가 국제 사회의 산업과 통상 부분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투자 가치가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미술 부문에 있어서 영국의 진흥 정책에서 우리가 배울 점들은 우선 무엇보다도 양질의 미술품이 생산되기 위해서는 작가들의 경제적 여건과 창작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작가 지원에 있어서 거물급 작가들을 후원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방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활동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따라서 그들을 꾸준히 지원해야 함은 물론이고, 각종 지원에 있어서 작가가 안일하게 지원금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새로운 후원자를 찾기 위한 환경을 조성한다.

작년 가을 서울에서 우연한 기회에 주한 영국문화원장과 영국의 미술계 인사들의 모임에 동석하게 된 필자는, 영국문화원이 한국을 방문한 자국인에게 상세한 현지의 문화 정보뿐 아니라 일반적인 정보를 분석·제공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사관 직원들이 현지를 방문한 한국인들에게 과연 얼마만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공염불처럼 외우는 문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공무원들의 인사 적체를 해소하는 방편으로서의 파견이 아니라 주재 국가의 해당 분야를 정확하게 파악, 이러한 정보를 자국인에게 충분히 제공해주어야 할 것이다. 국가 이익을 최대한으로 추구할 수 있는 적임자를 파견하는 효율적인 인사와 업무 수행의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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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월간미술 199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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