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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경영의 현황과 과제 - 박물관/미술관 경영을 중심으로

하계훈


서론

예술과 경영은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듯한 개념들이다. 예술이 주로 정해진 법칙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와 물질적으로 계량화되지 않는 창조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그 성공과 실패를 빠른 시간 안에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속성이 있는 반면에, 경영에 있어서는 어떠한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계획한 일을 집행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극대화된 이익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결과가 쉽게 계량화되어 그 성공과 실패를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결국 예술에 경영이 접목되는 것은 예술의 성격에 이제까지 주목을 받아오지 못한 물질적, 계량적으로 중요한 성격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 점에 관심을 돌린다든지, 또는 문화사업의 비영리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사업의 결과를 짧은 시간 안에 도출해내려는 행정적 조급함이 담겨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외국의 경우 예술 분야에 경영적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의 유럽과 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부의 문화 예술 사업을 단순히 일방적으로 지원해주기만 하는 문화복지 사업 정도로 인식하고 그저 ‘받아서 쓰면 된다’는 식의 문화 예술 기관의 운영이 그 한계에 도달하자 정부에서는 재정 지원의 짐을 덜어보려는 의도에서 비영리 기관들에게 영리 기관의 운영방식을 배워서 보다 효과적인 지출과 수익 모델을 만들어낼 것을 이전에 비해 더욱 적극적으로 요구하게 된 것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비공공 영역에서도 이 시기에 예전과 같은 재정지원을 바탕으로 하는 운영이 어려워지고 있었는데 그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정부의 관심 부족에 따른 개인 후원자의 의욕 감소와 상업주의의 확대에 의한 비용 부담의 급격한 증가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힐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최근에 와서 예술경영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문화예술 기관에 기업의 경영 방식을 도입해보려는 시도는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주로 재정적인 이유에서 출발했다. 박물관/미술관 분야에서도 이러한 추세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여서 박물관/미술관들은 경영방식의 개선이나 조직의 구조 조정, 기금 모금과 마케팅 등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한편 예술 경영 분야에 대한 관심은 요즈음 각 대학원을 중심으로 이 분야의 학위과정과 전문가 과정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어서 앞으로 당분간 이러한 관심은 쉽게 식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게 해준다.

이러한 추세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찾아 볼 수 있으나 생활 환경의 향상에 수반되는 문화 예술에 대한 자연스러운 관심의 증대 현상과, 이러한 관심이 과장되게 인식되어 일부 사람들에게 일종의 문화적 환상을 주고 있는 현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동향의 배후에 담겨있는 역사적, 경제사회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이러한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앞으로의 문화 예술의 방향을 바르게 내다볼 수 있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공공 박물관/미술관을 중심으로 이 분야의 예술 경영적 측면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박물관/미술관의 전개에 담긴 역사적, 사회적 의미

우선 우리 나라에서 박물관/미술관이 과거에 어떻게 생겨났으며 지금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서양에서 기원전 3세기까지 박물관/미술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던 것처럼 우리도 고대에 박물관/미술관의 원형이 되는 기관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문헌 연구를 시도하여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박물관/미술관의 원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근대적 의미에서 최초로 시작된 공공 박물관/미술관은 일본이 우리 나라를 식민통치하던 시기인 1909년에 개관한 이왕가박물관(李王家博物館)을 꼽을 수 있다.
이왕가박물관의 개관이 표면적으로 천명하는 의의에는 서양의 계몽군주들이 박물관/미술관 개관에 담긴 의미와 비슷한 점이 있다. 즉 민중에게 폐쇄되었던 희귀한 소장품들을 개방하여 민중 계몽과 미의식 함양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뜻인데 이 부분은 표면상 양쪽이 서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의 군주들이 스스로 소장품들을 개방하였고 이에 따르는 왕실의 국내외적인 권위 향상을 꾀하였던 반면에 우리 나라의 경우는 일본 식민 정부의 강압에 의해 왕실의 권위를 무너뜨리려는 의도에서 타율적으로 개방된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서양의 계몽군주들이 박물관/미술관을 개관하게 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 승리의 후속 조치로 개관된 중앙박물관(지금의 루브르 박물관)의 완전 개방이라는 본보기를 들 수 있다. 루브르의 사례를 통해 서양의 계몽 군주들은 박물관/미술관이 만들어내는 정치적 힘과 국민 결속의 에너지를 놀라움과 함께 자신들의 새로운 통치 도구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우리 나라와 서양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이러한 출발선상의 차이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양쪽에서 그 차이를 더욱 확대시키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서양의 시민 혁명 정부나 계몽 군주들은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고 개방한 박물관/미술관의 운영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건물이나 소장품의 양적, 질적 향상에 기여한 반면에 타율적으로 개방된 우리의 이왕가박물관에서 시작되는 박물관/미술관 문화에서는 이러한 활력을 기대할 수 없었음이 당연한 지도 모른다.

미셸 푸코는 박물관/미술관을 ‘19세기 서유럽의 특징적인 현상’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해서 그 시대의 유럽인들은 박물관/미술관을 갖기 위해서 커다란 사회적 변화를 겪어왔던 것이다. 군주나 그 주변의 소수 귀족과 승려 계급이 예술 후원과 소비의 거의 유일한 주체가 되었던 구시대의 사회 체제를 민중 혁명으로 붕괴시키고 예술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예술생산에 있어서의 후원방식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한 것이다. 이제 대중이 예술의 소비자이며 예술 생산의 후원자가 되었고 이전의 군주나 교회가 담당하던 후원자의 역할 가운데 중요한 부분은 시민정부의 박물관/미술관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박물관/미술관은 자유와 평등의 원칙 아래 대중에게 자유롭게 개방되었으며 정치적, 교육적으로 지배계층이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효과를 낳는 새로운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박물관/미술관이 19세기 유럽의 특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현상은 산업혁명과 그에 따른 식민지 개척 경쟁에서 찾을 수 있다. 기술의 향상에 따른 잉여생산물을 소비하고 다시 원료를 조달하기 위해 보다 넓은 시장과 원료 조달지가 필요했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해외 식민지 개척에 앞다투어 뛰어들었으며 식민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장악하는 방법의 하나로 그 지역과 주민들을 속속들이 알고자 해당 지역의 각종 동식물 자료나 지질, 민속 자료 등을 수집, 연구하였다. 물론 이들이 수집한 자료들은 약탈이나 적은 비용으로 손에 넣을 수 있었으므로 나중에 박물관/미술관을 세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절차상으로나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이 적었다. 현재 유럽에 있는 많은 수의 자연사 박물관이나 민속 박물관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자료를 수집했던 개인들의 소장품으로부터 출발한 경우가 많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박물관/미술관의 정치적 힘을 깨달은 정부의 기득권 세력들은 점차 많은 박물관/미술관을 설립, 운영하게 되었고 이러한 본보기는 뒤늦게 산업화에 참여한 후진국의 정부에도 전파되었다. 19세기 후반에 미국과 유럽의 대표적인 도시에서 벌어진 국제 박람회들도 이러한 정치적 선전 도구로서의 기능을 했으며 전시 종료 후에 박물관/미술관이 탄생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 무렵 새롭게 등장한 산업 귀족과 금융 귀족들 역시 이러한 박물관/미술관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배양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세습, 미화하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박물관/미술관 운영의 경영적 접근

앞에서 간단하게 살펴본 역사적, 사회적 배경 아래서 박물관/미술관이 운영되어 오던 초기에는 투자자금의 회수 가능성이나 투입된 자금의 효율성 등이 오늘날처럼 중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박물관/미술관의 운영 주체가 목표하는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영의 원리나 시장경제의 원리 따위는 생각지 않고 자금과 인력을 투입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다행히도 이 때에는 아직 소장품의 가격이나 운영 전반에 관한 비용도 지금보다 현저하게 저렴하였다. 그러나 박물관/미술관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소장품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관계가 소장품의 가격 상승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으며 이 무렵부터 유럽에서는 화상과 골동품상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근대 박물관/미술관은 그 탄생의 초기에는 정치. 사회적 변화에 따른 평등권 실현 또는 국가의 문화복지적 시혜나 기득권 층의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출발하였지만 더 이상 이러한 사회적 명분에만 의존하여 박물관/미술관을 운영할 수 없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박물관/미술관의 영향력은 축소되는 반면에 그 운영은 재정적 어려움이 뒤따르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까 이제 정부는 문화예술 분야의 재정 적자라는 골칫거리를 누군가에게 떠넘겨버리려는 유혹에 빠지고 있으며 공공 박물관/미술관에 대하여 공익성과 재정의 균형이라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요구사항을 동시에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재정의 악화가 예술 분야에서의 경영적 접근을 강요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경영적 효율에만 집착하다가 자칫하면 박물관/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고유업무 영역인 수집, 보존, 연구 등의 분야가 마케팅이나 기부금 모금 등의 활동에 가려져 비영리 기관으로서의 특성을 잃은 채 일종의 비즈니스로 전락할 위험성을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경영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기업이나 그 밖의 상업적 기관의 운영방식이 박물관/미술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박물관/미술관은 그 조직이나 업무의 특성상 기업의 경영방식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며, 경영 효율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박물관/미술관의 본질적인 존재가치에 대한 왜곡으로 흐를 위험이 있으며 스스로가 다른 문화기관과의 관계에서 정체성을 잃고 말수가 있다.


우리나라의 박물관/미술관의 상황

우리 나라에서도 박물관/미술관 문화의 초기에는 표면적으로 유럽이나 미국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 부분이 있다. 그러나 뿌리가 없이 몸통만 심은 나무가 제대로 뿌리를 뻗어내고 잘 자리를 잡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우리에게는 프랑스 혁명과 같은 대중적 힘이 중심이 되어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움직임이 성공한 적이 없었으며 서양의 계몽주의 지도자들과 같은 정신적 사회 지도세력이 없었다. 그리고 식민지를 개척하기보다는 오히려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으면서 일본의 필요에 의해 문화재가 발굴, 정리되고 국토와 자원이 조사되는 과정에서 박물관/미술관이 설립되었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오래 동안 식민지배를 받아온 까닭에 근, 현대사는 왜곡되고, 단일 민족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욱 부각되어 유럽이나 미국 등의 다민족 문화가 갖는 다양성과 활력을 얻어내지 못하였다. 오히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일 민족문화와 다민족 국가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형성된 외래문화에 대응하는데 있어서 미숙함을 드러낸다든가 단일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적 할거주의에 빠지는 안타까운 양상을 보였다.
해방 후 6.25 전쟁을 거친 대한민국 정부는 전쟁이 남긴 혼란과 폐허에 발목이 잡혀서 문화예술 분야에서 정책다운 정책을 펼쳐보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박물관/미술관이 탄생하는 이념적, 사회적 배경이 제대로 형성된 적도 없고 사회 지도층의 대중에 대한 의무감이나 계몽주의적 지도력도 별로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5.16 군사 쿠테타를 거친 정부는 경제 개발 일변도의 정책으로 국민의 인권과 언론의 자유 등을 위협하였고, 이 문제가 국제사회에 부각되자 뒤늦게 문화국가적 이미지로 위장하기 위하여 이제까지 방치되다시피 해온 문화재와 국공립 박물관/미술관을 정치적 목적으로 동원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0년대부터 몇 차례 이루어진 국보급 문화재의 해외 순회전이 그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인데 이것은 나름대로의 긍정적 평가도 있기는 하지만 문화예술 행정의 기본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정치적 목적에서 급조된 전시행정이 비난을 받아오고 있다.
1980년대의 문화예술 부문을 돌아보아도 우리의 박물관/미술관은 여전히 정치 논리에 볼모로 붙들려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86년 아시안 게임에 맞춘 국립 현대미술관의 과천으로의 확장 이전, 1988년 올림픽에 맞춘 예술의 전당 개관 등은 전문성이 결여되고 경직된 사고를 가진 공무원들과 소위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기회주의적인 인사들에 의해 장기적인 운영 비전을 결여한 채 개막식과 같은 일회성 행사에 치중하고 그 후에 이어지는 운영에는 무대책으로 일관하는 무책임과 천박함을 드러냈다. 결국 이들이 저지른 일들이 오늘날 해당 기관들이 안고 있는 침체와 부실을 초래한 셈이고, 상황이 이러한데도 여전히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이제 와서는 문화예술 기관 운영의 경영학적 접근이라는 구실 아래 자신들의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발전을 위한 제언-기본을 다지자

그렇다면 이제까지 살펴본 상황 속에서 우리가 우리의 박물관/미술관 발전을 위하여 해야 되는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필자는 박물관/미술관이 19세기 서유럽의 특징적인 현상이라 하더라도 21세기를 시작하는 오늘 좀 늦긴 했지만 우리도 그 기초를 다지면서 한 발씩 나아가기로 새롭게 마음을 고쳐먹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문 인력의 양성이다. 박물관/미술관의 실상을 정확히 인식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올바르게 내다볼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없이는 아무리 노력을 하여도 우리 박물관/미술관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러한 전문 인력들은 자기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는 것뿐만 아니라 외국의 박물관/미술관의 상대방들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소통하는 데에도 능숙하도록 자질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문 인력 육성 사업은 개인이나 몇몇 기관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의 장기적인 정책에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은 현재 우리의 박물관/미술관이 처한 상황이 서양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는 일이다. 박물관/미술관의 역사가 한 세기가 채 안되고 실제적으로는 불과 20여 년밖에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게다가 그 숫자나 규모로 볼 때 유럽의 과거 어느 시기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의 박물관/미술관은 지금 경영학적 접근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정부의 보호와 지원 아래 제 궤도에 오르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유럽의 과거 정부나 사회 지도층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로부터의 지원이 따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화예술 분야의 활동은 그 시초부터 향수자와 후원자의 두터운 관심을 배경으로만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세계의 수많은 박물관/미술관을 길게는 수백 년에서 짧게는 수십 년 동안 운영해온 결과는 우리가 좀 더 관람객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결론이다. 향수자이자 후원자로서의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가, 혹은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문화 현장의 고민이 좀 더 깊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정부는 이 과정에서 섣부른 평가기준을 앞세워 고압적인 자세로 지시하거나 일방적으로 명령하지 말고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제는 필요하다면 정책 담당자가 과감하게 기득권을 포기하고서라도 전문가에게 주도권을 넘기겠다는 획기적인 자세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획기적인 발상이 없이 우리 나라의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서 갑론을박하는 것은 그저 소모적일 뿐이고 현실적으로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중얼거림에 불과할 것이다.

- 출처 / <민족예술> 20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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