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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색채의 탐험전

하계훈

REVIEW 예술의전당 특별 기획전 <빛과 색채의 탐험>

시각예술의 기본 요소인 빛과 색채의 탐구


「빛과 색채의 탐험」전은 미술표현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빛과 색채라는 두 가지 요소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구체적인 작품들을 통해 이 두 가지 요소들이 작가들의 손에 의해 어떻게 다양한 표현을 갖게 되는가를 실증해보려는 의도의 기획 전시였다.
빛은 기본적으로 물체의 존재와 그 입체감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고, 좀 더 세부적으로는 그 물체의 중량감이나 질감, 새롭고 낡은 정도의 차이 등도 감각적으로 인식하거나 경험에 의존하여 짐작할 수 있게 도와준다. 물리학적으로 빛은 에너지로 치환하여 설명될 수도 있으며, 종교나 윤리학에서의 빛은 선과 악의 대비에 있어서 자주 선善의 상징으로 혹은 생명의 상징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이 전시의 기획자는 빛의 특성을 통일감이나 상징성 등의 여섯 가지로 구분하고, 미술사에 있어서 빛이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하는 사례를 몇 가지 들고 있다. 사실 빛은 고대미술로부터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예를 들어 폼페이의 폐허가 된 건물의 벽에 착시적으로 그려진 창문의 표현은 건축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의 건축구조상 두꺼운 벽과 작은 창문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실내는 어두울 수밖에 없던 환경에 처한 집주인의 밝음(빛)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 중남부 솔즈베리 근처에 수수께끼처럼 웅장하게 서있는 커다란 돌덩어리들로 이루어진 스톤헨지Stonehenge는 그 정체를 정확하게 밝히지는 못했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일년 중 하지에 태양이 떠오르는 현상과 연관된 종교적 활동과 모종의 관련이 있다는데 뜻을 모으고 있다. 스톤헨지 시절의 영국인들은 태양의 빛을 생명이나 수확 등과 연관시켰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집트의 농경사회에서도 태양은 중요한 생산성의 원천이었으며 태양이 뜨고 지는 현상은 생과 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렇게 중요한 조형적 요소이자 풍부한 상징성과 표현성을 지닌 빛에 대해 시대에 관계없이 관심을 갖는 작가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은 하나도 이상스러울 것이 없다. 특히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대가들은 빛을 이용한 원근효과나 극적인 상황연출을 잘 구사해냈으며,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고 전기를 이용한 인공조명이 발명되면서 화가들은 빛의 작용에 의한 일몰 후의 생활환경의 묘사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오늘날의 사진이나 영화도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망막에 맺히는 이미지의 잔상현상과 빛의 작용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 가운데 빛을 주된 소재로 채택하여 작업한 작가는 10명으로 그 가운데에는 평면회화뿐 아니라 사진, 부조, 설치 등의 작품을 선보인 작가들도 포함되어 있다. 작품들은 광원이나 빛의 작용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작품과 빛의 작용에 의해 형성되는 그림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작품으로 나뉘어 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이경홍은 불꽃놀이의 폭죽이 터지면서 검은 하늘에 빛나는 불꽃들이 쏟아져 내리는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하였으며 송성진은 형광안료를 이용하여 주거지역의 실내조명을 표현함으로써 동일한 풍경이 빛의 작용에 의해 얼마나 상이한 인상을 줄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작가의 작품은 모두 빛을 표현하기 위하여 어둠을 필수적인 배경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경홍과 송성진이 어둠을 배경으로 빛을 표현하는 반면에 도성욱은 빛을 배경으로 드러나는 물체의 실루엣이 대기의 작용에 의해 다양한 표정을 띠는 현상을 표현한다. 안개가 자욱한 물가나 바닷가로 짐작되는 허공을 배경으로 전면에 늘어선 나무들은 거의 무채색의 실루엣으로만 그 존재를 드러낸다.
빛은 인체에 작용함으로써 중요한 표현요소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인물의 표정은 빛에 의해 보다 풍부한 표현성을 갖는다. 강형구와 박광성의 화면에 크게 클로즈업된 인물들도 빛과 어둠의 콘트라스트에 의해 심리적 깊이를 더하게 된다. 강형구가 세부묘사에 치중하는 반면에 박광성은 초점을 흐리게 묘사하는 점이 대조를 이루지만 두 작품 모두 인물의 내면의 심리상태를 잘 드러내주며 빛과 어둠의 극적인 콘트라스트가 이루어짐으로써 그 효과를 더해준다.

광원의 위치와 그림자의 역할이 중요한 작품으로는 김영진과 박현주의 작품을 들 수 있다. 반복되는 사람의 얼굴을 부조로 표현한 김영진의 작품은 광원의 위치에 따라 얼굴 윤곽의 그림자 부분이 달라지면서 세부적인 인상의 변주를 연출한다. 이에 반하여 박현주의 작품에서는 벽면에 부착된 아크릴 입방체에 기하학적인 도형을 부분적으로 부착하여 빛의 부분적 통과와 반사 그리고 그림자의 형성과 이 세 가지 현상이 원래의 조형과 혼합됨으로써 연출되는 조형효과를 통해 빛과 그림자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색채는 시각적 표현에 있어서 빛 보다도 더욱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빛의 부재 속에서 색채는 무의미하다. 따라서 빛과 색채는 별개의 요소인 듯하면서 사실은 상호 연관된 요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색채의 영역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에서도 앞서 살펴본 빛의 작용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기획자가 전시작품의 영역을 빛과 색채로 구분하고 다시 색채의 영역을 그 기본체계와 상호작용, 표상된 색채, 그리고 상징화된 색채로 구분하였지만 그 구분은 분명하지 않으며 한 작품 안에서 여러 가지 속성이 동시에 드러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색채의 영역에 출품된 작품들은 빛의 영역에 출품된 작품들에 비하여 기획의도가 불분명하게 나타나는 작품들을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색채의 영역에서 기획자는 색채의 기본적인 체계에서부터 색채간의 상호작용과 상징성 등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여준다. 따라서 전시의 특정한 주제가 별도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서 모든 주제와 장르의 작품이 시각예술의 기본적인 요소인 빛과 색채의 탐구라는 목표 아래 한 자리에 집결된 것이다. 굳이 의미를 두자면 색채를 두드러지게 강조한 작품이 대다수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색채의 영역에 출품된 작품은 빛의 영역보다 거의 4배에 가까운 수를 차지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색채는 시각적 표현에서 그만큼 기본적 요소이며 폭넓게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전시도 외형상으로는 빛 보다 색채에 비중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품작들 가운데에는 젊은 작가에서부터 원로 작가와 작고작가의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작가들의 작품들을 망라하고 있다. 작품의 장르에서도 평면이나 입체, 설치, 사진뿐 아니라 의상이나 섬유 디자인 분야까지 폭넓게 수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작품들을 통하여 전시내용의 다양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출품된 작품간의 다양성에 의하여 작품들의 완성도나 심도에 있어서도 그 편차가 크게 드러나고 있으며 출품된 작품들을 의도적으로 카테고리화 함으로써 작품해석의 다양성이 억제되는 아쉬움도 지적된다.

대부분의 출품작은 기획자의 기획의도를 잘 반영해주고 있지만 일부 작품은 우리가 그 작품을 만든 작가들의 색채에 대한 관심을 우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부적절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천광엽의 작품을 채도대비로 해석한다거나 정종미의 작품을 따뜻한 계열의 유사색상의 조화관계로 해석하는 것은 그들의 작품에 대한 보다 다양한 해석을 가로막는 것이다. 그리고 출품된 작품들 가운데 일부는 색채에 대한 관심보다는 형태묘사나 재료의 질감 등에 더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고영훈의 경우 그의 작품은 한정된 색채의 주관적인 사용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정밀한 형태묘사에 중점을 둔 작품으로서 하이퍼 리얼리즘적인 재현성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김강용이나 김창렬의 경우에도 과연 이 작가들이 색채의 표상성을 자신들의 작품의 핵심적인 요소로 이해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이들의 작품에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색채의 문제보다는 빛의 작용에 의한 대상의 사실주의적인 재현의 문제일 것이다.

색채의 상징성 부분에서 색채를 이용한 심리적 상태표현으로서 서용선의 작품과 정신적, 종교적 의미를 탐구한 작품으로서 박항률의 작품을 인용한다거나 어두운 색을 악의 상징으로 표현한 이명복의 작품을 예시한 것 등은 적절하였다. 하지만 김혜경의 태극기를 이용한 작품이나 이규환의 색동연작 등은 연상적 색채라기보다는 보다 직설적인 소재의 제시와 나열로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는 빛과 색채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감각적으로 경험하기보다는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구체적인 작품들을 통해 이 두 가지 요소들이 작가들의 손에 의해 어떻게 다양한 표현을 갖게 되는가를 실증해 보려는 기획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전시장에서 드러나는 현상은 다소 혼란스럽다. 특히 색채 부분에서 그렇게 보인다. 예술의전당의 대표는 도록 앞부분의 인사말에서 이번 전시의 기획의도가 ‘미술의 조형요소나 장르의 형식원리, 그리고 작품감상에 도움을 주는 심리적 주제들을 심층적으로 분석, 종합하여 관람객들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제작한 교육적 프로그램’으로서 준비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색채에 대해 갖게 되는 임의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그것이 갖고 있는 합리성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했지만 실제 전시에서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제시되는 ‘합리성’은 그 설득력이 높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출품작들을 지나치게 폭넓게 확보하면서도 기획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색채에 대한 논리를 충분하게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일관되고 합리적인 작품 선정 기준을 갖지 못한 까닭인 것 같다. 만약에 원점으로 돌아가 이 전시를 다시 열 수 있다면 출품작의 숫자를 줄이고 기획자가 생각하는 주제에 좀 더 부합하는 작품으로 농축시키며, 빛의 해석에서처럼 색채의 해석에 있어서도 표상성이나 상징성 등의 속성이 한 작품에서 상호작용하고 복합적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작품을 제시한다거나 더 나아가 빛과 색채도 동일한 작품을 통한 표현에서 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해석을 바탕으로 좀 더 자연스럽게 관람객들과 소통했으면 한다.

- 예술의 전당 2004.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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