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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혼성의 3중주

하계훈

문화적 혼성의 3중주


여성 3인전 2004. 3.17- 4.23 국제갤러리



이제 미술에서 여성성을 지나치게 전면에 내세우는 일은 예전만큼 신선한 메시지를 담아 내지 못하는 것 같다. 이번에 국제갤러리에서 개최된 세 여성의 작품전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리 신선한 기획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세 작가의 작품들을 작가의 성별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 그 자체로 접근할 때 우리는 서양미술사에서 많은 담론을 생산해 냈던 여러 사조와 포스트모던시대의 특징들을 읽을 수 있고 여기에 덧붙여서 이 작가들이 여성이어서 드러나는 생득적인 특성과 그들의 성장과정에서 겪은 문화적 체험 등을 재미있게 발견할 수 있다.





이란의 쉬라즈 출신인 쉬라제 후쉬아리(Shirazeh Houshiary), 미국 시카고 출신인 수 윌리엄스(Sue Williams), 그리고 이집트 카이로 출신인 가다 아메르(Ghada Amer), 이렇게 세 작가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서아시아라는 넓은 지리적 괴리에서 드러나는 문화적 특징과 이들의 개인적 생활의 궤적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혼성을 보여 주면서도 세 작가가 함께 여는 개인전 성격을 띠고 있다.

우선 1층 전시장 전면을 차지한 쉬라제 후쉬아리는 서구 미술계에서 (물론 그녀는 이것을 부정하고자 했지만) 이란이라는 낯선 오리지낼리티를 가진 작가라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 수 있는 작가다. 그녀는 21세에 런던으로 건너가 첼시 미술학교를 다녔으며 지금까지 런던에서 살고 있다. 후쉬아리는 원래 조각 작품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일찍이 1980년대 초부터 런던 미술계의 젊은 작가(yBa) 운동의 제1세대 중심작가로 부상하여 1994년에는 터너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이번에 소개된 작품들은 미니멀리즘 계열의 평면 작품으로서 영국에 거주하는 아랍인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넘어서서 성별이나 민족성에 얽매이지 않고 내적 사유를 바탕으로 신비주의적 명상과 심오한 인류공영의 공간을 추구하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후쉬아리는 어떤 특정한 장소나 사조에 한정되기보다는 자신의 “호흡을 담기 위해서, 그리고 이름, 국적, 문화 등의 요소를 초월하는 기 존재의 고유한 요체를 찾기 위해서” 작업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후쉬아리가 과연 자신의 말대로 완전한 초월적 사유에 도달하였는지는 의문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조형요소 가운데는 그녀의 조국에서 행해지는 수피교(Sufism) 승려의 나선을 그리는 춤을 연상시키는 표현이 발견되거나 흰색 바탕에 동일한 흰색 계열의 물감으로 농도를 달리하여 써넣은 이슬람의 텍스트 등이 발견된다. 나선형을 그리는 춤은 일종의 종교의식으로서 승려들이 현재의 자아를 이탈하여 새로운 차원의 의식상태로 진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이러한 존재적 초월 혹은 자아탈피 행위는 후쉬아리에게도 간절하게 요구되었을 것이다.

작가가 부인하고 있지만 후쉬아리의 작품에는 자신의 문화적 근본이 반영되어 있으며 그와 동시에 이를 타파하려는 노력과 모노크롬 형식에 대한 탐닉, 미니멀리즘의 반복적이고 암시적인 현실탈피의 노력 등이 담겨 있다. 이러한 상반된 목표를 추구하는 노력은 검정색과 하얀색, 빛과 어둠으로 표현된 그녀의 작품에서 드러난다. 페레쉬터 다프타리(Fereshteh Daftari)는 후쉬아리의 작품에서 이러한 수피교적 자기 제거를 향한 의지와 서구의 모노크롬 전통을 동시에 읽어내고 있으며 그녀가 라우센버그나 칸딘스키, 말레비치, 로스코와 같은 서구 모더니스트의 영향을 지그재그 형태로 연속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월간미술 2004. 5월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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