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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대전, 관으로부터의 독립이 열쇠

하계훈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형식화와 절차화는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특히 관이 개입된 행정의 경직성과 현실로부터의 괴리는 비단 미술 분야뿐 아니라 사회문화 전반에서 드러난다. 그래서인지 미술대전의 원조인 조선미술전람회는 해방 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로 이름을 바꿔 1981년까지 운영되어 왔고, 그 후 문화예술진흥원에 의한 반(伴)관 형태로 이어 오다가 마침내 1986년부터 민간기구인 한국미술협의회에서 운영을 이어받아 오늘날까지 지속되었다.

하지만 관제 행사의 민간 이양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 미술대전은 그동안 심사와 시상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으며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오면서 우리나라의 미술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본래의 취지는 사실상 고사되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한 미술대전이 최근 대통령상 제도를 부활시키고 그 밖의 몇 가지 운영 형식을 바꿈으로써 회생의 발판을 마련해 보려고 한다.


상금과 권위

그러나 과연 대통령상 제도의 도입이 한국 미술문화를 발전시키고 국민들로부터 애정 어린 시선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상의 명칭에서도 다시 민간에서 관으로 시대를 역행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지난 1월 28일자 <오마이뉴스>에 한국미술협의회 측에서 기고한 내용을 그대로 옮기자면 “반(伴)관전의 이미지를 담고 있으면서 전통과 권위를 함축하는 ‘대통령상’이라는 명칭”을 다시 사용한다고 한다. 무슨 전통과 무슨 권위인가?

사실 상의 명칭이나 상금의 액수는 최우선적 중요성을 갖는 요소는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외국의 경우 우리의 미술대전과 비슷한 군주제 치하의 시혜성 시상제도가 점차 사라지는 추세고 새롭게 출발하는 시상제도에서도 대통령이나 그 밖의 정치인들보다는 존경받을 만한 예술인이나 문화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의 이름을 붙인 제도가 운영되는 것으로 보아도 이번 대통령상 명칭 부활은 바람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상금의 증액도 주최 측의 노력에 의한 것이기 보다는 정부의 문화부문 공공예산이 추가적으로 지원되어야 하는 형식으로 증액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외국의 유사 사례를 참고해보자. 시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 가운데 흔히 인용되는 영국의 터너상의 경우에는 우선 터너라는 영국미술사에서 존경받을 만한 인물의 이름을 붙인 시상제도이고 상금도 액수가 강조되지 않을 뿐 아니라 주최측의 노력으로 협찬에 의해 상금을 확보하므로 상금 액수의 증액이 공공재원을 잠식한다는 시비거리가 되지 못한다. 터너상의 경우에는 주최측의 노력의 정도에 따라 상금이 달라지거나 심지어 상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로 인해 터너상의 권위가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대중적 호응 얻어야


터너상은 수상자를 결정하기 전에 5명 내외의 후보자들의 작품을 유명 미술관에 공개적으로 전시하여 미술전문인들이나 일반인 등 많은 사람들이 심사와 수상자 결정 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함으로써 그 운영이 비교적 투명하고 그로 인해 짧은 기간동안 나름대로의 권위도 얻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상제도를 상금주고 끝내는 국내의 일회성 미술행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스컴과 소장가들의 호응도 받으며 영국현대미술의 국제적 확산을 위한 전략적 약진을 도모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어서 미술인들 뿐 아니라 비교적 폭넓은 대중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 우리의 미술대전과는 다르다. 물론 터너상을 받음으로써 우리처럼 미술대학 교수직을 얻는데 프리미엄을 갖게 되는 것도 아니다. 영국에서 작가와 교육자는 그 진화 과정이 다르다. 우리처럼 대학교수가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작가 활동을 하고 교수라는 직함이 작품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미술대전이 보다 바람직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어야 하며 주최측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 제도를 운영할 수 있다는 신뢰감을 주고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우리나라의 미술을 전략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수상자가 미술대학의 전임교원으로 선발되는 데에 프리미엄을 갖는 현재의 시스템도 재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미술대전이 바람직하게 변화하기 위해서는 관에 다가가기 보다는 관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하고 그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상을 주고 정부의 공공자금을 더 타내서 듬뿍 상금을 올려준다고 해서 이것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할 것이 아니면 섣불리 손대서 예산만 더 낭비하고 쓸데없이 일을 그르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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