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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와 객체가 혼합된 새로운 무대장치- 쌍쌍전

하계훈

주체와 객체가 혼합된 새로운 무대장치
쌍쌍전 2005. 7. 29 - 9. 14 마로니에미술관


설치미술을 중심으로 한 10 명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출품된 이번 전시는 다분히 공간 중심적이고 그 공간 속에서 관람자들이 느끼는 상황에 따라 작품이 가변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연극 무대나 영화촬영 세트장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전시장 안에는 소지품 보관소, 정원, 아트 숍, 댄스 홀, 그리고 공원 등과 같은 다채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따라서 관람객들의 동선은 일반적인 미술 전시장에서처럼 단순히 벽을 따라 단선적으로 움직이게 되지 않고 설치된 작품 속을 관통하면서 그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 머무르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모종의 활동을 첨가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쌍쌍전은 관람객의 참여가 작품의 최종적 완성의 한 요소라 할 수 있으며 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완성되는, 관람의 주체와 객체가 명확하게 구분될 필요가 없는 전시라고 볼 수 있다.

마로니에 미술관이 매년 자체적으로 기획하는 전시의 하나로서 한국 현대미술의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보고자 하는 야심적인 목표를 가지고 기획하였다는 이번 전시는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 미술상황을 접할 기회를 가졌던 젊은 작가들을 위주로 기획되었다. 따라서 작품의 주제 면에서 지역적 특성이나 민족 역사적 관점을 갖는 것보다는 보편적 삶의 측면을 관조하거나 개인적 경험과 정서를 반영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관람객들이 전시장 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일상을 벗어난 새로운 공간으로 흡입되는 느낌을 받는다. 다시 말해서 관람객들은 일종의 공간적 판타지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번 전시를 구성하는 3 개의 전시장이 계단이나 중앙현관 등의 공간에 의해서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전체 전시에 대해서 완전한 몰입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미술관 공간은 일반 관람객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곳은 관람객들에게 지배계층의 권위를 시각적으로 과시하며 주어진 질서에 순응하도록 강요하고 일반인들이 문화적 교양인으로서의 규율을 습득하도록 길들이는 공간이었다. 초기의 미술관을 방문할 때 관람객들은 단정한 복장을 갖추어야 하고 전시장 안에서는 시끄럽게 떠들지 말아야 하며 작품들은 교훈적이거나 미적으로 영감을 주어 자신들의 삶을 개선시켜주는 은전으로 받아들여야 하였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종래의 미술관 공간의 부담스런 성격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관람객들이 처음 전시장으로 유입되는 제 1 전시장 입구에는 소지품 보관소처럼 공간이 연출되어 마치 미술관의 입구에서 관람객이 소지품을 맡기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오인환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실제로 관람객들이 소지한 물건을 맡길 수 있게 운영함으로써 작가에게는 사진 스튜디오 공간이면서 관람객과 그들의 소지품을 통해 조우하게 되는 접점을 형성하는 또 다른 공간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이중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공간은 오디오와 조명 그리고 비닐 장막을 통해 음악 감상과 그림자놀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장윤성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술관 공간에 대한 전도된 해석은 외부의 보관소를 내부로 끌어들이는 오인환의 작품 이외에 전시장 안에 외부의 정원을 끌어들인 손정은과 건축물의 외관을 내부로 도입한 김상균의 작품에서도 읽을 수 있다. 특히 손정은의 모조품으로 꾸며진 나무와 꽃 등의 소품에서는 미술관 소장품들의 박제된 생명력에 대한 조롱적 해석을 읽을 수 있다.

붉은 커튼과 비디오 설치를 이용하여 전시장을 탱고 무도회장처럼 꾸민 김지현의 작품은 미술관 공간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의 관계성과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의 문제를 네 개의 스크린 의에 현실과 가상을 교차시키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수직과 수평으로 짜인 실선을 통해 탈물질적 열린 공간을 창출한 김태곤의 작품이나 영상과 거울의 반사로 확장되는 풍경의 이미지와 박제된 공작새를 통해 의식의 경계를 모호하게 탐닉하는 박혜성의 비디오 설치 작업, 완벽한 대칭구조의 공간에서 느끼는 성스러움과 속세적인 공간의 가치체계의 혼란을 표현한 유영호의 설치작업, 건축적 구조를 작품의 조형 단위로 치환한 김상균의 설치작품 등을 통해서 전시장 안의 관람객들은 시공을 초월한 의식의 유영을 즐길 수 있다.

제 3 전시실에 설치된 강효명의 무대공간같은 설치와 최도영의 관객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3개의 유리방도 전시장 공간에서 관객을 보다 자유롭게 해주는 시도였다. 각 작가가 제시하는 공간을 누비며 전시장 순례를 마친 관람객들은 이제 더 이상 “쌍쌍“이라는 전시 제목이 주는 모호한 느낌에 얽매이지 않고 공간을 자유롭게 해석하고 거기서 꿈꾸며 때로는 작가와 함께 자신을 표현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획자의 기획의도에 비추어보면 이것이 한국현대미술의 미래상의 한 단면이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 월간미술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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