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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

하계훈


이민호의 작품을 관류하는 주된 소재는 사람이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거의 언제나 사람이 등장하며 그 사람은 그녀의 지인일 수도 있고 작품제작 기회를 통해 난생 처음 만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사람과의 친연관계와 무관하게 언제나 대상을 하나의 인간의 전형으로 파악하고 그 내부에서 공통적으로 잠복해있는 보편적 인간성에 주목한다.

이민호가 주목하는 인간의 속성은 거창하거나 특별하지 않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성격의 것이다. 작가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현대사회 속에서의 인간소외와 소통의 단절을 읽으며 특정인을 익명화하고 그 모습을 근접묘사 함으로써 개인의 특정성을 제거하고 익명성과 인간 속성의 보편성을 부여한다.


모델의 얼굴의 대부분을 의도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사진 현상소에서 “영수불가(Non Facture)' 판정을 받기도 한 <증명사진>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은 익명성과 함께 증명사진의 사회적 기능이나 재현적 이미지로서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학으로 화화를 시작하여 파리로 건너가던 1990년 무렵부터 시작된 그녀의 회화작업은 얼굴 표정이 생략된 사람의 옆모습이나 뒷모습이 실루엣으로 나타난다. 묘사된 인물은 얼굴 부분이 온전하게 묘사되지 않아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아보기 어려우며 군상을 이룰 경우에도 서로간의 심리적 연결을 이루지 못한다.

인물의 배경은 원근법적 거리감을 주는 공간이 제시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공간감이나 장소성이 모호한 색채로 이루어진 배경을 이룬다. 그리고 종종 그녀의 인물들은 이중의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그림자를 통해 작가는 작가 자신을 포함한 인간 내면의 이중성, 자기 정체성의 이원성 등을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큐레이터인 막심프레오는 이러한 작품에서 작가의 우울을 읽기도 하였는데 필자 역시 부분적으로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파리에서 미술대학에 진학하면서 작가의 화면은 그리기와 사진 작업이 공존하며 점차 사진의 비중이 커져 현재는 화면 전체가 완전히 사진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비록 표현 재료와 형식은 달라졌지만 이민호의 작업은 여전히 인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점차 자신의 지인에서 모르는 사람으로, 좁은 실내의 공간 또는 작가와 모델 사이의 근접한 공간에서 좀 더 멀어지고 넓어지는 공간으로 물리적으로 확장된다.

이 글의 앞부분에서 필자는 작가가 모델을 ‘만난다’고 했지만 보다 엄격히 말하면 작가는 모델을 만나고 있지 않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모델과의 정면응시를 피하고 있는데 이것은 작가 자신이 한편으로는 모델과의 공감을 이루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관찰자로서의 작가로 남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관심을 갖는 인물들은 도시 중심의 화려한 장소에 있기보다는 도시 변두리의 다소 황량하거나 우울한 배경 속에 놓여있으며 이러한 공간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찾아나서는 공간이 아니라 바로 작가 자신이 처해 있는 생활의 공간과 그리 다르지 않은 곳이다. 따라서 작가는 자신이 바라보고 카메라로 포착하여 자신의 작품에 도입하는 인물들과 심정적으로 동일시 또는 적어도 동류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귀국 전 파리 교외의 어느 주거지역을 촬영한 작가의 작품에서는 인물과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면서 작품 속에 공간에 대한 의식이 점차 증가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제 작가는 인물 뿐 아니라 공간에 대해서도 조형적 의식을 갖게 됨으로써 화면은 점차 장식성을 띠게 된다.
시멘트와 유리로 이루어진 주거환경 속에서 자연의 유기적 생명감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는 소통의 단절, 자연과의 격리 속에서 어딘가로 가고 또 돌아오는 인간의 일상을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감수성이 담겨있다.


- 고양스튜디오 오픈 세미나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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