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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간에 대한 색다른 해석

하계훈

박기원展 3.24-4.26 , 채우승展 4.4-4.27 아르코미술관


마로니에 미술관에서 아르코 미술관으로 그 이름을 바꾼 문화예술위원회의 미술관에서 올해 첫 번째 기획초대전으로 마련한 두 작가의 개인전이 미술관 아래 위층에서 나란히 열렸다. 아래층 제 1 전시실에서 열린 박기원의 전시는 전시장 공간 안에서 작품을 보여주기보다는 공간 그 자체를 작품으로 보여주는 공간에 대한 재인식, 공간 재가공의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명절 때 받은 선물상자를 풀어보고 나서 알맹이만큼이나 탐나서 버리기 아까운 포장 재료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포장재와 알맹이의 관계처럼 공간과 작품의 관계에서 공간은 때때로 작품과 동일하게, 혹은 작품보다 더 유의미하게 기능할 수 있다. 언젠가 올림픽 게임을 주최하는 나라에서 선수촌 식당에 음식 담는 그릇을 먹을 수 있고 폐기처리했을 때 잘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환경친화적인 재료로 만든 적이 있다. 음식이 아니라 음식을 담는 그릇을 먹는다는 발상 역시 우리의 고정관념의 허를 찌르는 것과 같은 한방 먹이기였다.

우리들의 고정관념에 대한 허찔리기는 박기원의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객들도 맛보게 된다.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관람객들은 벽은 물론이고 바닥과 천정까지 온통 검게 조성되어 있는 텅 빈 전시장 한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전시장에서 익숙하게 바라보던 작품들의 부재로 인해 관람객들은 자신들의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며 두리번거리다가 벽과 바닥, 그리고 천정을 서서히 음미하기 시작한다. 관람객들은 작품에 의해 가려졌던 이 공간의 본래의 모습을 천천히 눈에 담으며 공간이 주는 분위기, 그 속에서의 미묘한 공기의 흐름에 대한 미세한 느낌, 그리고 자신과 공간과의 관계에 대한 사색 등에 빠져 볼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 터널에서의 어두움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얻게 되는 적응시력을 체험하면서 공간에 대한 물리적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작가는 공간을 움직임이 발생하는 곳으로 보고 관람객들이 그 움직임을 느끼고 더 나아가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공간설치 작업에 오래 동안 몰두해왔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공간 속의 움직임을 유도하여 관람객이 섬세한 움직임과 변화를 감지하기 용이하도록 가볍고 투명한 재료들을 주로 사용하여 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공간에 대한 탐구와 관찰을 통해 그 공간이 갖는 참모습과 깊이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 ‘파멸’에서 느끼는 것처럼 그의 공간은 불에 탄, 그래서 내부가 온통 검게 그을린 텅 빈 공간을 나타낸다. 그 공간은 많은 것이 있었지만 이제 그 모두가 제거되고 다시 무(無)의 상태에서 존재의 흔적을 암시하거나 공간의 근본을 체험하는 곳으로 관람객들에게 제시되고 있다.

같은 장소의 위층 제 2전시실에는 채우승의 설치작품이 놓여있다. 장방형의 전시장 안에는 한 가운데를 길게 가로지르는 길이 18미터 정도 되는 종이 박스 구조물이 성인의 허리 높이로 설치되어 있고 이 구조물이 서양 건축의 난간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이 표면에 종이를 발라 난간의 작은 기둥의 실루엣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표현된 구조물은 고대 서양의 신전 건물의 발코니 난간과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러한 느낌을 위해 사용된 재료는 전통 한지를 연상시켜주는 이질적인 물질이다. 한국의 전주와 서울, 그리고 이탈리아를 생활과 작업의 무대로 가져왔던 작가가 이 공간에서 제시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지 않다. 전주가 전통한지와 연관이 있는 지역이라는 것이 부분적으로 작품에 사용된 재료의 의미와 이질적 문화의 교배를 설명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 모호성이 시원하게 해소되지는 않는다. 작품 해석의 난독성은 기둥이나 계단처럼 보이는 작은 구조물이 이 커다란 난간구조 옆에 다소곳이 놓여있는 것에 의해서 더욱 증폭된다. 보기에 따라서 이 전시공간은 연극 무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공간에 있는 관람객들은 연극 무대에 올라선 연기자인가?






작품의 모호성의 원인은 작가가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명확하게 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이분법적인 고정된 시각과 의미로 읽히는 것을 오히려 경계하며 관람자의 자의적인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다. 말하자면 작가의 작품은 작가의 설치작업이 완료된 다음 관람자의 개입과 해석이 가미됨으로써 비로소 작품으로서 완성된다는 해석이 가능한 셈이다.

“~머물다-가다”라는 전시 제목처럼 작가는 마치 바람이 불고 지나가듯이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실체에 대한 존재를 느끼는데서 오는 감미로움, 결정되지 않음으로써 무한히 변이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암시를 무심코 비켜가듯이 전시장에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측은 이번 기획초대전의 의의를 한국 현대미술의 허리세대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고 동시대 한국미술의 현주소를 확인하고자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취지에 맞춰 선정된 이 두 작가들이 부디 위원회의 기획의도를 저버리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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