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미술과 놀이:펀스터즈展

하계훈

우리 생활에서 놀이는 학습과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영역이며 사회성과 자기계발 등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행동양식이다. 동물학적으로 볼 때 놀이는 특정한 자극에만 반응하거나 의식적인 몸놀림을 따르지 않는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행동을 말한다. 관련 학자들이 포유류나 조류 등을 통해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동물들의 새끼들은 놀이를 통해 사냥술을 배워 생존의 지혜를 터득하고 자기가 처한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알게 된다고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도 놀이는 지능발달과 사회화 훈련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신체발달에도 중요한 기여를 한다. 성인의 경우에 놀이는 일반적으로 ‘일’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놀이는 일과 달리 행동의 결과에 대한 구체적 보상을 기대하지 않으며 행동 자체도 강제성이 없이 자율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이 특징이다. 원래 산업사회 이전에는 생활 속에서 일(노동)과 놀이(여가)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그리고 놀이가 곧 일의 연장이요 때로는 이 두 가지가 동시적으로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사회 이후 우리 생활에서 노동과 여가는 장소 면에서도 뚜렷이 구분되고 노동시간과 여가시간도 비교적 뚜렷하게 구분되고 있으며 두 영역이 서로 직접적인 상승작용을 일으켜주는 효과도 줄어들게 되었다.

이번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개최하는 <미술과 놀이-펀스터즈>전은 이와 같은 인간 행동양식의 한 부분인 놀이와 여가활동을 미술이라는 예술형식을 통해 바라보는 전시다. 2003년부터 매년 여름 개최해 온 이 전시는 무엇보다도 예술의 대중적 접근이라는 면에서 성공적인 전시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이 이제까지 세 차례의 전시를 통해 20만 명이 훨씬 넘는 관람객을 유치하였으며 이들 가운데 일부는 충성도 높은 관람객으로 확보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누구나 매일 24시간이라는 물리적인 양의 시간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지위의 높고 낮음, 나이의 많고 적음, 재산의 많고 적음 등의 조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따라서 이 제한된 시간 가운데 생리적으로 소비해야 하는 수면 시간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노동시간을 제외한 시간이 우리의 놀이와 여가활동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으로 남게 된다. 인간은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지속하기 위하여 매일 일정량의 수면시간을 확보하여야 한다고 하는데 전기의 발명으로 일몰 후의 야간활동이 늘어나게 되고 노동시간이 점차로 줄어들게 됨으로써 상대적으로 놀이와 휴식에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오늘날처럼 일과 놀이가 구분된 우리의 생활에서 놀이시간에 즐거움과 만족감을 얻는 것은 차후의 일터에서의 노동생산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에너지가 된다. 따라서 미술을 통한 놀이에서 즐거움을 얻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거창한 의미를 큰 배경으로 하면서 보다 좁은 의미에서는 작가들의 창작물을 아주 심각한 미학적 개념으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쉽고 즐겁게 관람객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관람객 친화적이고 일상생활과 유리되어 있지 않은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희와 놀이적 요소를 주제로 한 국내외 작가들의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200여 점의 다양한 작품들이 출품될 예정이다. 출품작들은 전반적으로 전시의 주제에 맞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흥미롭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성격을 띤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개별 작품을 통해 작가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부터 인간의 생명과 실존적인 문제나 미학과 과학 분야의 탐구, 그리고 한국과 일본 사이의 현안이 되고 있는 독도문제를 포함하여 폭넓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전시된 작품들은 성인과 어린이 관람객의 관점에 따라 이중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전시기획자는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을 몇 개의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우선 첫 번째 그룹의 작품들은 대상을 사진으로 찍었을 때처럼 사실적 정확성을 가지고 표현하는 방식과 달리 아동들의 회화나 입체조형에서 자주 드러나는 것처럼 사물의 비례나 형태의 왜곡과 색상의 치환 등을 통해 우리의 인식체계에 충격을 주는 작품들이다. 사물에 대한 인식방법에 있어서 학습과 사회적 관습에 길들여진 눈으로 바라볼 때 이러한 작품들은 충격적일 수 있고 신선하기도 하며 결국 우리의 인식과 사고에 대한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출품작 가운데 홀로그램을 이용한 변재언의 작품이나 형광도료와 블랙라이트를 이용한 나인주의 작품 등은 옵티컬 아트적인 요소도 보여주며 우리의 눈을 더욱 즐겁게 해준다. 그리고 마늘, 인삼, 오렌지와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식재료를 소재로 하여 팝아트적 작품을 만든 김문경의 작품도 어린이들을 동화적인 환상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작품들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감상할 때 보다 잘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그룹의 작품들은 다분히 아동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작품들이라고 볼 수 있는 인간과 동물의 즐거운 만남을 일깨워주는 작품들이다. 말, 소, 닭 등의 등에 우스꽝스럽게 올라앉은 기사의 모습을 각종 철제 폐품과 시멘트를 이용하여 제작한 성동훈의 돈키호테 시리즈나 동물과 인간의 공존의 장에서 벌어지는 해학적인 상황을 묘사한 최석운, 그리고 돌고래와 바다동물을 통한 상상의 세계를 표현한 임영선의 작품들이 이 부류에 해당한다.

인간과 동물의 우호적인 공생의 바탕에는 사랑이 깔려있어야 하며 이러한 동물들과 인간과의 관계는 심심치 않게 신화·미술·문학 등의 장르에서 감상적으로 다루어져왔다. 고대 문명사회가 시작된 이후로 인간은 개, 고양이, 말, 원숭이 등을 애완동물로 길들여왔다. 중동과 이집트, 그리스 등의 조각이나 회화에서 이러한 동물들이 빈번히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인간은 문명사회가 시작된 때부터 동물들과 함께 생활해왔음을 알 수 있다. 동물들과의 공생은 인간으로 하여금 동물들의 특성을 관찰하고 그 특성들 가운데 인간과 유사한 점을 우의적으로 표현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많은 동물들의 에피소드에서부터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동물들까지 우리 생활에서 동물들은 빼버릴 수 없는 요소가 된 셈이다. 따라서 이러한 동물들에 대한 작품이 우리에게 친숙하고 정겹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세 번째 그룹의 작품들은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작품들이다. 작품의 소재나 주제 뿐 아니라 재료의 선택과 적용에서도 이러한 작품들은 기발하고 유쾌한 반응을 유도한다. 이 그룹에 속하는 작가들은 전통적인 미술재료의 범주를 넘어 우리 생활 주변의 여러 가지 물건과 도구들을 작품의 중요한 재료로 이용한다. 자물쇠와 열쇠를 변형하여 오리의 모습을 만들어낸다거나 니퍼를 이용하여 물고기 형상을 만들어내고 게껍질로 로봇을 만들어내는 도영준의 작품과 스티로폼을 이용해 커다란 사람의 얼굴 모습이나 동물의 형상을 만들고 그 겉 부분을 새끼줄과 비슷한 마닐라 로프로 감아서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놀이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어린이들에게는 올라타고 만져보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난감을 제공해주는 이성형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이 밖에도 한지, 단추, 구슬 등을 이용하여 부처상과 꽃 등을 만들어낸 작품들에서부터 부직포를 이용해서 알록달록한 마을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이고 있다.

마지막 그룹에 속하는 작품들은 앞에서 소개된 대부분의 작품들이 유희와 놀이적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에 대한 일방적 소통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달리 관람객과 작품이 상호 소통하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한 요소에 중점을 둔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관람객이 수동적으로 관람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작동이나 형성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작품을 완성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작품 앞에서 손뼉을 치면 작품의 조명이 켜지고 꺼진다거나 디지털 정원을 거닐며 관람자가 가상정원의 식물들을 만져보기도 하는 종류의 작품들이 출품되고 있다.

즐거움을 제공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펀스터(funster)라는 이름이 붙은 작가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서 관람객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가면서 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거리감과 미술품 감상에 있어서의 난독성을 줄여보려는 다양한 시도를 보여준다. 이번에 4회를 맞는 <미술과 놀이>전은 폭넓은 관람객에게로 열린 전시라는 점에서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폭넓은 연령층의 관람객들이 미술을 통한 즐거움과 상상력을 마음껏 즐기고 신체발달이나 사회성계발에서부터 각자의 활동을 위한 에너지의 재충전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필요한 자기개발의 요소들을 취할 수 있게 된다면 <미술과 놀이>전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 동안 관람객들의 사랑 속에서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수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