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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 방의 진실展

하계훈

미술에서 재현의 진실은 무엇인가?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린 <여섯 개 방의 진실>전은 미술관의 3개 층 공간 전체를 이용해서 22명의 작가들이 평면 뿐 아니라 입체, 설치 등을 통하여 최근 우리의 관심을 받고 있는 조형상의 사실적 재현의 문제를 탐구해보는 전시회였다.

미술에 있어서 사실적 재현의 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통일신라시대의 화가 솔거가 황룡사의 벽에 그린 노송도(老松圖) 이야기가 전해진다. 솔거가 소나무를 그리자 새들이 그 나무를 진짜 소나무인 것으로 착각하고 가지에 내려앉으려다 부딪쳐 떨어졌다고 하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당시에는 사실적 묘사 중심의 회화가 관심을 끌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에서도 고대 그리스의 화가인 파라시오스와 제욱시스가 포도송이를 그린 그림과 휘장으로 착각할 정도로 정교하게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을 가지고 서로 솜씨를 겨루었던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리의 중세와 근대 미술사에서 사물의 외관보다 그 의미를 포착하는 사의(寫意)를 작가의 덕목으로 여긴다거나 서양에서 100여 년 전에 발명된 카메라 때문에 화가 폴 들라로쉬가 절규한 것처럼 ‘이제 회화는 죽었다’는 위기의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 때는 사실적 재현이 비구상 또는 추상적 표현에 압도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술에 있어서 사실적 재현의 문제는 마치 오락실 두더지 잡기 놀이처럼 미술사에서 일정한 시간을 두고 반복적으로 등장하여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주장하고 있다.

사물의 정확한 외관을 재현해내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관찰 과정에서 대상에 대한 작가의 심층적인 이해 및 대상과의 교감이 발생한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추억과 감상을 표현한다거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중심으로 해서 자신의 주변상황을, 때로는 비판적으로 또 때로는 정감어린 시선으로 표현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실적 재현을 다룬 회화에서는 대상과의 친화관계를 지향하는 보링거식의 ‘감정이입’ 작용이 따르게 되고 결과적으로 표현된 작품들은 관람자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6개의 유형의 가상의 인물들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선보이는 사실적 재현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들은 주로 지난 1980년대부터 오늘날 사이의 작품들로서 주제와 내용에 따라 각 공간에 배치된다. 미술관의 공간 구성상 3개 층으로 나뉜 공간은 오늘날 아파트나 빌라와 같은 다층적 집단주거 형태와 유사성을 보여줌으로써 주제에 대한 설득력을 높여주는 효과를 내준다.

지하의 두 공간은 여대생과 건축가에게 주어졌다. 여대생 Y씨의 방은 흰 전시장 벽에 검정 테이프로 마치 문과 창문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는 일종의 환영을 그려내는 깨끗한 방이다. 인접한 건축가의 거실은 주로 서양식 건물의 정면을 보여주는 시멘트 캐스팅 오브제와 사진을 이용한 입체 작품들로 구성된 차가운 공간으로 연출되어 있다. 여대생을 디지털 그래픽한 단정함과 연결시키고 건축가를 건축 재료의 차가움과 연결시킨 것이 얼마나 객관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출품된 작품을 중심으로 배정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층의 두 공간은 주부와 화가에게 주어졌다. 배고픈 식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주부의 공간에는 과일과 야채 등을 소재로 극사실적인 묘사를 보여주며 우리의 식문화와 관련지을 수 있는 평면과 입체 작품들이 배치되었다. 화가의 공간은 그의 작업실로 꾸며져 가구와 캔버스, 거울 등을 표현한 작품들이 배치되었다. 2층에는 큐레이터와 사진작가의 방이 배치되어 있는데 큐레이터의 방에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눈속임을 자아내는 극사실적 작품들이 큐레이터의 컬렉션이라는 가정 아래 전시되고 있다. 사진작가의 스튜디오로 상정된 공간에는 자연과 실내의 풍경이나 인물 등이 마치 사진을 찍은 것처럼 사실적인 작품들이 배정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고하고 일반 건물의 3 개 층을 이용하고 있는 사비나 미술관의 현실적인 공간 환경 때문에 주제를 충분히 소화해냈다고 보기 어렵지만 최근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사실주의적 그리기 작업을 여러 가지 직업의 인물들의 방이나 스튜디오라는 공간을 통해 제시하는 아이디어는 긍정적으로 평가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 가운데 이종구의 밥상 작품이 주부의 식문화 공간으로 배정되고 김상균의 서구적 건축물의 파사드를 표현한 작품들이 건축가의 거실에 배정되는 것과 같은 표면적인 유사성은 전시기획자가 작가의 제작의도와 다르게 작품에 새로운 해석을 가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이번 전시를 위한 준비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모지만 좀 더 많은 준비 기간을 가지고 기획의도에 보다 부합하는 작품을 찾아내는 노력이 있었으면 전시가 더욱 재미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월간미술 2006.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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