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전통진채 展

하계훈

유교적 전통이 오랫동안 두텁게 생활의 이모저모를 눌러 온 역사가 있는 사회에서는 쉽게 거부하거나 무시하기 어려운 몇 개의 개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전통’이나 ‘조상의 예지’, ‘민족문화’ 등의 용어가 그 예일 것이다. 이러한 개념에 대한 부정이나 도전은 사회적 또는 도덕적 불경과 패륜으로까지 간주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는 변화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내면화되어 있으며 주기적으로 과거로의 회귀본능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때때로 이 회귀본능은 현실과 미래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전통의 현대화라는 돌연변이적 변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지난 1세기 남짓 동안에 농경사회에서 공업화 사회로, 그리고 곧바로 탈공업화, 후기 산업사회를 거쳐 첨단 정보화 사회로 빠르게 진화과정을 거쳐왔다. 따라서 한 개인은 자신의 일생을 통해 사회의 여러 가지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시절 농사일을 하던 사람이라도 자신의 활동지역이 도시화되면서 중년기에는 상공업에 종사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노년기에는 인터넷이나 무선이동통신같은 정보화사회를 맞이하여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환경을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초고속 변화를 겪어온 우리나라의 다양한 분야 가운데 미술계에서도 변화의 속도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서예와 수묵화에서 수채화와 유화로 그리고 다시 사진이나 영상, 홀로그래픽 이미지 등으로 전개되는 우리 미술계의 한 세기도 숨 가쁘게 전개되어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흔히 채색화라고 불리는 전통진채를 연구하고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으로 전통진채의 현대적 활성화를 모색하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회가 열리게 되었다.

진채는 그 표현에 있어서 순간적 영감을 천재적 순발력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의존하는 회화형식이 아니다. 전통진채는 작품제작 이전 단계에서부터 재료의 준비와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고도의 육체적 노력과 정신적 집중이 요구되는 창작활동이다. 그 표현에 있어서 초상화, 불화, 민화라고 지칭되는 십장생도나 문자도 등 다양한 표현형식을 먹이 아닌 아교에 물감을 개서 종이 또는 비단 천위에 표현하는 방식으로 창조되는 전통진채화는 안타깝게도 지난 수 세기 동안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그 명맥을 유지해온 셈이다. 조선시대에는 사회활동을 지배하는 사대부들의 가치기준에 의해 저급하고 문기(文氣)가 결여된 것으로 치부되었고 일본의 식민통치를 거치는 과정에서는 일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받으며 왜색화풍으로 폄하되기도 하였다.
사실 오늘날에도 우리의 전통진채는 일부 사람들로부터 무관심이나 냉소적인 반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 까닭은 주로 창의성이 결여된 손기술의 반복과 모방, 그리고 유사한 표현의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 등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 비록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반성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좀 더 심층적으로 우리의 전통진채를 연구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고정된 형식의 단순반복과 모사가 우리 전통진채의 제 모습인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시각적 재현방식으로서 3차원의 입체성과 2차원의 평면성이 한 화면에 존재하고 우주의 원리를 다섯 가지의 색채로 표현할 수 있는 철학적 깊이를 가진 것이 우리의 전통진채다. 이번에 전시회를 갖는 작가들은 굳이 괴테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민족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일 수 있다는 진리가 국제화, 세계화로 확대되는 우리 문화계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진리라는 것을 우리 전통진채의 활성화를 통해 증명해주기를 바란다.

※ 전통진채展(한성대 대학원 회화과 진채전공/2006.11.1-11.7/관훈갤러리)의 평론글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