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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운성

하계훈

말하나 마나겠지만 화가는 모름지기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시대에 따라, 또는 그 화가가 소속된 사회에서 통용되는 미감이나 종교적 가치관 등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르네상스 이후로 최근까지 우리들은 실물을 보는 것같이 대상을 묘사해내는 것을 잘 그린 그림의 기본으로 여겨 왔다. 물론 실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은 단순한 회화보다 사진이나 동영상 필름 같이 진보된 과학 기술에 의해 우리의 시각을 차원 높게 자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 화가들 고유의 활동영역은 여전히 유의미하게 존중되고 있다.
어린 시절의 방학숙제였던 <곤충채집>이라는 말을 연상시키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말이 되지 않는 것같은 <과일채집>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가진 한운성은 이런 의미에서 훌륭한 화가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실물처럼 느껴지게 잘 그린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커다란 화면 속에 농구공보다 더 큰 크기로 그려진 사과나 복숭아. 토마토 등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일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물화의 단골 모델로 등장해왔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도 과일이 등장하고 세잔과 마그리트의 정물에도 과일이 곧잘 등장한다. 그러나 그 과일들은 한운성의 과일처럼 거대하지도 않고 수박과 사과가 본래의 크기와 무관하게 한 화면 안에 동일한 크기로 병렬되어 있지도 않다. 한운성의 과일 그림은 실물을 보는 것처럼 정교하게 그려졌지만 그 과일들의 스케일이나 사열받는 사병들처럼 전후좌우로 간격을 맞추어 정렬한 모습에서 사실감을 급격히 떨어트려 버린다.
그렇다면 화가가 그토록 공들여 커다란 화면 안에 담아놓은 과일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평자들은 요즈음 우리 생활을 위협하는 유전자 변형 식품에 의한 생명의 위기에 대한 경고나 효율과 성과지향적인 우리 삶에서 고갈되는 자원에 대한 노아의 방주와 같은 방어적 보존 의식의 표현이라고 보기도 한다. 아니면 혹은 과일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는 작가의 시선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생명의 영양소 공급원을 채집하는 관찰자의 대상에 대한 감정이입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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