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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의 사물함

하계훈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 <큐레이터의 사물함>이라는 프로젝트는 원래 스위스 취리히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독립큐레이터 버나드 드래블과 도로시 리히터에 의해 1998년에 라는 타이틀로 처음 기획되었으며 2003년부터 아카이브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 프로젝트의 기본 개념은 전시 그 자체에 대한 초점 보다는 전시기획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자료와 기록들을 한 곳에 모아 아카이브를 형성하고 그렇게 집중된 자료들을 전 세계적으로 순회하면서 큐레이터뿐만 아니라 작가와 관람객들을 포함한 폭넓은 관람들에게 접근이 용이하도록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획자는 그들과 함께 전시 큐레이팅에 관련된 다양한 방법론을 토론하고 자료연구를 진행함으로써 현대미술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해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큐레이터가 수집한 자료와 기록들은 각 나라를 순회하면서 그 지역의 작가들에 의해 자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해져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장소마다 자료열람과 활용을 위한 공간이 장소 특정적으로 디자인된다. 우리나라에서 작년 12월 20일 개막된 이 프로젝트는 Sasa와 박미나에 의해서 이들 자료들이 새롭게 분류되고 해석되어 인사미술공간 1층에 공개되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자료전시와 공간 디자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최초 기획자 가운데 한 사람인 버니드 드래블의 방문 강연이나 국내 전시기획자의 세미나 등이 프로젝트 기간 동안 함께 진행되며 그 결과물들이 인쇄물로 정리되어 아카이브의 컨텐츠로 추가된다. 이렇게 프로젝트의 순회 방문 장소가 증가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컨텐츠를 자기증식하여 나아간다.
카달로그, 도서, CD, DVD, 기사모음과 작가들에 관한 정보로 이루어진 자료들은 드래블과 리히터가 선정한 전 세계의 100명의 전시기획자들이 한자리에 모아 놓은 1000여 점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장 벽에는 이런 자료들을 수집하는데 기여한 100명의 전시기획자의 이름이 적혀있는데 글씨의 색에 의해 기획자들의 활동 거점 지역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나뉜다. 벽면을 일별할 때 주로 붉은 계통의 글씨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 색은 유럽과 미주를 나타내는 색이므로 100명의 전시기획자 가운데 상당수가 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최초 기획자 가운데 한 사람인 도로시 리히터가 자신의 글에서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도로시 리히터는 이 프로젝트의 배경을 1980년대까지 이어 온 전시에서의 큐레이터, 작가, 미술관의 전형적인 역할이 오늘날에 와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에 의해 변화를 겪고 있다고 전제하고, 이제부터의 전시는 다양한 문화적 실천의 연결망 속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실천이며 사회에 대한 봉사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 가운데에는 불법 체류자들에게 10달러짜리 지폐를 나누어준다든지 또는 약물 중독 여성들에게 아파트를 일정기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등의 사회미학적 주제가 부각되는 성격의 이벤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전세계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시나 이벤트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들을 관람자가 일일이 찾아가 볼 수 없는 현실적인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현대미술의 흐름을 손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평가될 수 있다. 전시기획자의 기획과정과 자료들이 다시 작가들과 디자이너들에 의해 전시의 대상으로 순환되는 형식도 흥미로우며 일반적인 전시행사와 달리 프로젝트 기간 중에 관람자들이 자료열람과 복사를 할 수도 있으며 활발한 워크숍 활동과 토론 등이 이루어지는 것도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미주와 유럽 중심의 프로젝트가 갖는 사회적, 철학적 배경을 이해하고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며 충분히 자료를 섭렵하기 위해서는 인사미술공간 측에서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이 프로젝트를 해석하고 준비하여 관람객들이 컨텐츠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야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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