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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

하계훈

예술과 패션의 본고장이라는 파리는 언제 찾아도 화려하고 세련된 면모를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역사적으로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이 상당수 배출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보다 더 많은 무명 예술가들이 좌절과 절망을 안고 파리의 뒷골목을 배회하였다. 원래 예술가들은 개별적으로 활동하기보다는 집단으로 어울려 작업하고 의견을 나누기를 선호해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몽마르트르 언덕도 결국 19세기 말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달동네였고 일명 벌집(La Ruche)이라고 불린 몽파르나스 근처의 집단 창작촌도 예술가들의 밀집지역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들어설 무렵부터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은 파리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모여든 작가들을 우리는 작품의 경향이나 이념적 성향에 관계없이 파리파(Ecole de Paris)라고 불렀다.

그러나 각 지역에서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고 좀 더 큰 세상을 찾아서 도착한 파리는 이들 파리파 예술가들을 따뜻하게 환영해주지 않았다. 이들 대부분의 파리생활은 가난에 시달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적 성취에 대한 확신은 점점 멀어져갔으며, 그러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술과 마약에 빠져 스스로의 정신과 건강이 피폐해지는 순서로 자기파멸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그토록 바라던 영광은 인생의 마지막 끝자락이나 사후에 뒤늦게 찾아왔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온 작가들의 향수와 고독은 쉽게 여성들과의 로맨스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관계가 행복하게 지속되기는 쉽지 않은 것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1906년 파리에 도착한 모딜리아니에게도 행복한 세상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파리에서의 10년간의 생활은 술과 마약과 예술가들 사이에서의 열띤 토론으로 채워졌다. 잘 생긴 외모에 어머니쪽 가계로부터 물려받은 문학과 철학에 대한 교양은 카페에 모여든 화가들 사이에서 단연 그를 돋보이게 했다. 단테와 페트라르카와 같은 이탈리아의 고전 뿐 아니라 보들레르와 랭보를 줄줄이 암송하는 미남 화가 모딜리아니의 매력은 14살 연하의 미대 지망생 잔느 에뷰테른도 쉽게 외면하기 어려웠다.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그녀와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모딜리아니는 부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마침내 1917년부터 가정을 꾸렸다. 잔느의 나이 19살 때었다.

여기 커다란 모자를 쓴 갸름한 얼굴의 여인이 바로 잔느 에뷰테른이다. 모딜리아니는 초상화를 즐겨 그렸으나 주문을 받고 그려준 적은 없으며 그의 초상화 속의 인물들은 초상화의 일반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의 아름다움이나 눈을 중심으로 한 얼굴 부분의 사실적 묘사 등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좌우가 대칭을 이루지 못하는 길고 갸름한 얼굴에 눈동자가 분명하지 않게 표현된 푸른 눈, 비뚤어진 곡선을 이루며 길게 늘인 코는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지만 단순하고 대담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보기에 따라 우수와 연민을 읽을 수 있는 이 그림은 모딜리아니가 사망하기 한 해 전에 그린 것이다.

이 여인은 모딜리아니의 단순한 반려자가 아니라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요 삶의 의미였다. 잔느와의 결합 후 점차 생활이 안정되면서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주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술에 의존하던 그의 무절제한 버릇은 좀처럼 떨쳐버리기 어려웠고 어렸을 때 앓던 결핵이 도져 건강은 악화일로를 치달았다. 마침내 피를 토하고 자선병원에 입원한 모딜리아니의 침대 곁을 말없이 지키던 잔느는 모딜리아니가 결핵성 뇌막염으로 숨을 거둔 후에도 이틀 동안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예술가의 드라마틱한 생애는 종종 과장되거나 왜곡되는 경우가 있다.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관계도 몇 가지 극적인 일화가 전해지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잔느가 죽은 모딜리아니에게 긴 입맞춤을 했으며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줄께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카톨릭 신자로서 임신 9개월 만삭의 몸으로 모딜리아니 사망 이틀 뒤에 친정집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잔느의 순애보가 이러한 일화를 만들어준 듯하다. 사실이야 어쨌든 간에 언젠가 파리의 동쪽 끝 페르 라 세즈 공동묘지에 갈 기회가 있으면 모딜리아니와 합장된 잔느의 묘를 찾아 꽃 한 다발을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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