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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긋기

하계훈

드로잉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구석기 시대 원시인들의 동굴벽화나 오세아니아 원주민들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모래 그림 등은 인류의 원초적인 드로잉에 속하는 셈이다. 우리 미술사에 남겨진 농경문청동기나 빗살무늬 토기, 그리고 울주군반구대의 암각화에 담긴 풍부한 이미지들도 우리 미술사에서 오랜 드로잉 역사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원래 서양에서 드로잉은 중세 성당의 프레스코 벽화나 모자이크 그림의 준비 단계에서 쓰이는 밑그림 정도로 인식되어 왔으며 건축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작가의 초기 작품구상 아이디어를 간략하게 기록하는 정도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비로소 드로잉을 통해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게 되었고, 또 한 편으로는 대가들의 화실에서 훈련받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중요 수단이 되었다.
소마 미술관에서 열린 ‘막긋기’전은 오늘날 이러한 드로잉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지난 해 11월에 개관한 드로잉센터에서 제 1부로 개최한 ‘잘긋기’에 이은 제 2부의 전시였다. 최근까지만 해도 우리 작가들의 작업에서 드로잉은 작품의 형성과정을 드러내는 흔적으로서 작가의 고뇌와 수없는 수정의 과정을 보여줘야 하는, 일종의 보여주고 싶지 않은 치부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상의 사고와 작가의 사적인 생활의 편린마저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드로잉을 솔직하게 공개하는 과정을 통하여 설령 그것이 미완성이고 때로는 유치하기까지 하더라도 오히려 관람객에게 친근하고 다양한 조형실험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예술창작의 기본이며 그 시발점으로서 드로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대적 의미에서 드로잉의 영역을 확장,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된 이번 전시에 출품된 44명의 작가들의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오늘날의 드로잉의 개념의 확장과 젊은 작가들의 톡톡 튀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개성이 잘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품된 작품들의 경향을 분석해보면 몇 가지 키워드로 분류된다. 출품작들은 첫째, 미술에서 꾸준한 소재가 되어오고 있는 인물과 풍경을 묘사하는 드로잉, 둘째, 막긋기에 적합한 주제가 될 수 있는 생명과 환타지를 주제로 한 선묘 중심의 드로잉, 셋째, 작가들이 수집가의 입장에서 바라본 오브제들을 이용한 드로잉의 표현, 넷째, 일상보다는 사회적 현상에 맞추어져 다양한 탈조형어법으로 구성된 기록으로서의 오브제를 공간 속에 제시하는 형식의 표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통적인 재료로서의 드로잉이 아니라 빛과 선을 이용한 인터랙티브한 공간 드로잉 등 다섯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평면에 단색의 선묘로써 표현되는 화면이라는 전통적인 드로잉의 개념을 확장하여 담채 수준 이상의 채색이 가미되기도 하고 철사나 돌, 나무 등의 오브제를 도입한 공간에서의 입체적 선묘 드로잉과 영상작업 등 확장된 의미의 시각적 표현이 전부 망라되었다. 전시의 제목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막긋기’로서의 드로잉이란 즉흥적이며 거침없이 세차게 쏟아내는 에너지의 표현과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표현 행위의 집적으로서의 거칠고 자유분방한 조형작업을 말하며, 그 결과로서 드러나는 이미지들은 그 어느 표현 수단 못지않게 감동스럽고 현대적이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부디 소마 미술관의 드로잉 센터가 우리 미술의 다채로운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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