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네덜란드 화가 가운데 주로 실내 풍속화를 많이 그린 화가로 얀 베르미어가 있다. 화면의 구도나 색채에 있어서도 뛰어나지만 베르미어의 그림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무엇보다도 측면에서 비추는 햇빛이 실내의 다양한 사물의 표면에 작용하는 부드러운 움직임을 매우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는 점이다.

베르미어는 네덜란드 델프트시의 여인숙을 운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그 부근에서 살았다고 한다. 시에 보관되어 있는 공문서 기록에 의하면 21살에 결혼하였고 같은 해에 화가 길드에 가입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 매매업을 겸했는데, 원래 여인숙을 운영하던 그의 부모가 때마침 붐이 일어난 미술품 매매업을 겸하게 되었고 이 가업이 베르미어에게 이어진 셈인 것이다. 그는 11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빵집과 식료품점이 있는 거리의 여인숙 다락방에서 그림을 그려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사실 화가로서 생계를 꾸려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화가가 아니더라도 13명의 대가족을 유지해나가기가 만만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그린 그림 가운데 이 그림은 어두운 배경을 등지고 왼쪽 어깨너머로 관람자를 바라보며 뭔가를 이야기하려는 듯한 소녀의 눈과 약간 열려있는 입술이 그려내는 호소력 짙은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그림의 제목으로 채택된 그녀의 귀에 달린 진주 귀걸이가 수많은 이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극해왔다. 초상화에서는 보통 모델의 의상이나 소지품, 또는 배경의 풍경 등을 통해 인물의 신분을 짐작할 수 있게 되지만 이 그림에서는 이러한 실마리를 이끌어낼 어떤 것도 제공되어 있지 않다.

미술사학자들은 이 그림 속의 모델이 된 소녀가 화가 베르미어의 11명의 자녀들 가운데 맏딸인 마리아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으나 이 소녀를 비롯하여 40여 점이 전해져 오는 베르미어 작품 속의 모든 여인들은 그 누구도 확실하게 신분이 밝혀진 사람이 없다. 이 작품이 제작된 시기로 추측되는 1665년 무렵 마리아가 12세 정도였으므로 모델의 모습이나 베르미어가 작품을 제작할 당시의 정황으로 보아서 이 소녀가 마리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학자는 베르미어에게 영향을 준 화가가 자신의 가족을 즐겨 모델로 삼았던 점이나 장시간 모델을 고용할 재정적 능력이 없었던 베르미어의 상황 등으로 미루어볼 때 이 모델이 그의 가족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다른 추측은 이 소녀가 베르미어의 유일한 후원자였던 반 루이벤의 딸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이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이 쓰여지고 영화가 제작되면서 베르미어가 고용한 하녀가 이 그림의 모델로 설정되어 있으나 미술사학자들은 이 사실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이국적인 옷과 머리에 두른 터번은 더욱 더 인물의 신분을 알아내기 어렵게 만든다. 아마도 이것은 이 무렵 델프트 항구를 통해 수입된 동방의 이국적 풍습이 유행하였던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소녀의 귀에 단 진주 귀걸이는 당시 상류사회 사람들의 부귀와 허영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순결과 처녀성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진주에 비추는 빛의 효과를 즐기던 베르미어는 많은 작품에서 인물들이 진주 귀고리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린 직후인 1667년 네덜란드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와의 전쟁에 휘말리고 네덜란드의 경제는 하향곡선을 그리며 베르미어의 작품을 구매하던 고객이었던 사업가들의 경제사정을 악화시킨다. 이 무렵부터 베르미어의 재정상태는 악화되며 결국 건강의 악화로 이어진다. 몇 년 후 베르미어는 43세에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가족들을 곤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은 아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식료품 상점에 진 빚을 갚기 위해 팔려가기도 하고 경매시장에서 매각되기도 하였다.

사후에 오랫동안 잊혀졌던 베르미어의 명성이 서서히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였으며 1902년 미술품 컬렉터인 데스 톰베가 사망하면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이 그림을 헤이그의 마우리츠후이스 미술관에 기증하자 당시 언론은 베르메르의 진가에 열광했으며, <진주 귀걸이를 한 여인>은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는 찬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