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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성

하계훈

중세 기독교 사상이 인간생활을 지배하던 유럽 교회의 가치관에 의하면 인간의 누드는 창세기 성경의 내용 가운데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에 대한 낙원추방에서부터 시작하는 원죄의식과 연결되어 부정적인 시선을 받았었다. 르네상스 이전의 회화에서 누드 인물은 주로 죄인이나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을 묘사할 때 등장하며 고통스럽게 몸부림을 치거나 참회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누드가 부정적인 시선을 씻고 복권(復權)하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이며 이것은 인본주의적 정신을 추구하고 인간의 미를 긍정하는 르네상스의 정신과 연결된다. 그 이후 누드는 미술 아카데미에서 화가들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수련 과목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미술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유명 작가들이 누드 작품 하나쯤은 남겨놓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유럽의 미술관을 방문한다면 이러저러한 인물화를 볼 수 있으며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은 누드화일 것이다.
배준성은 누드 사진 위에 비닐을 덮고 그 위에 인물의 의상을 그려 누드와 착의(着衣)의 인물이 한 화면에 표현되는 작품으로 시작하여 최근에는 이러한 두 화면이 한 곳에서 드러날 수 있는 렌티클러 수법을 도입하였다. 비교적 대형 화면으로 구성되는 배준성의 작품들은 관람자의 눈앞에 파노라마적인 장면을 전개시키며 미술관 전시장 공간에 대한 감상과 그 안에 삽입된 작가의 작품에 대한 감상이라는 이중적인 감상 과정을 경험하게 해준다.

이번 전시는 비닐과 렌티클러 작품을 거쳐 캔버스 위에 세계의 유명 미술관 전시장 장면을 그리고 그곳에 걸려있는 작품 가운데 한 작품에 작가의 렌티클러 작품이 삽입되는 형식의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누드를 중요한 소재로 채택하고 있는 이상 그가 유럽의 유명 미술관을 자신의 화면에 도입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으며 작가는 이러한 작업 과정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여 과거의 거장들과 소통하는 의미를 발견하기도 하고, 작품의 레이어가 미술관 전시실 벽으로, 그리고 이러한 캔버스가 다시 이번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의 벽면으로 중첩되는 시각적이며 시간적이기도 한 층위의 누적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번에 제시되는 배준성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은 정지된 화면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각 체험에서 한 걸음 나아가 전시장을 거닐면서 화면에서 이미지가 변화하는 경험을 즐길 수 있으며 서양미술사에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누드화의 한국적 전화(轉化)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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