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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위하여

하계훈

한 사회에서 어떤 이는 남들보다 많은 권력과 재력을 가지고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의 방면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며 살아간다. 다른 이들은 이런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며 존경하기도 한다. 세인들의 질투나 존경은 그 대상의 태도와 행동에 따라 결정된다. 자신이 평생동안 모아 온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독지가가 있는가 하면 온갖 편법을 동원하여 자녀들에게 자신의 재력과 권력을 세습시키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이는 탐욕스런 속마음을 감추고 너그러운 문화사업가 또는 사회사업가로 위장하기도 한다.

서양사회에는 권력과 재력을 가진 이들이 사회에 대해 갖는 의무감을 뜻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개념이 있다. 재력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사회의 어려운 계층들을 위해 자신들의 능력과 재산을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사회에 대한 의무를 솔선수범하여 실천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위층이나 부유층 자제의 병역의무 회피 현상 등에 대하여 지탄하는 경우 이 개념이 인용되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최고 부유층 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 세운 미술관의 파행에 대한 의혹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서양에서는 사회적 성공의 외형적 표현 가운데 하나로서 미술품에 대한 수집과 이에 대한 소장가의 교양이 사교계의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귀족이나 사업가들은 대대로 물려받은 상당량의 미술품을 소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얼마나 훌륭한 소장품을 형성하고 있는가가 소장가들 사이에서 은근한 자랑거리가 되어왔다.

이렇게 수집되어 온 소장품들은 심심치 않게 국가에 기증되거나 비영리 재단으로 귀속되어 공공미술관의 중요한 전시품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 정부는 기증과 기부에 대한 적절한 세제혜택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기증자의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미술관 전시실에 기증자의 이름을 붙여주거나 심지어 흉상을 세워주는 등의 방법을 통하여 타의 모범이 되도록 하며 또 다른 잠재기증자의 기증을 유도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이렇게 개인의 기증에 의해 비영리 미술재단이나 미술관이 세워지는 경우 향후의 운영에 설립자가 개입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일단 미술관이 설립되면 관련분야의 전문가를 중심으로 하는 이사회가 구성되고 전문성을 지닌 관장과 직원들이 모집된다. 우리나라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것처럼 설립자나 그 주변 사람들이 전문성과 관계없이 관장직이나 그 밖의 중요한 직책을 맡는 일이 없다.
이렇게 운영되는 서양의 미술관에서는 설립자 주변인에 의한 미술관 운영의 파행 문제가 일어날 수가 없다. 건강한 이사회가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 진지하게 검토하고 예산 집행을 포함하여 한 해 동안의 사업 전체를 연례보고서 형식으로 발행해서 일반인들에게 사소한 것까지 모두 공개한다. 이럴 경우 미술관과 관련된 특정인이 이사회의 승인 없이 엄청난 가격의 미술품을 독단적으로 구입한다든지, 미술관의 소장품을 자신이 개인적으로 이용한다든지 하는 일들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서양의 공공미술재단 설립자들 가운데에는 미술관의 설립뿐 아니라 향후의 운영을 위하여 운영기금까지 쾌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신이 세운 미술관이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오래동안 건전하고 건강하게 운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것이다. 우리도 이들의 행적에서 좋은 점은 배워서 실천에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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