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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회화의 행방전

하계훈

도시(city)는 근대 공업화, 산업화의 산물이며 좀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보면 탈봉건화(脫封建化)의 산물이었다. 원래 중세 영국에서 도시란 인구가 밀집된 지역 가운데 대규모 성당을 갖추고 국왕의 칙령에 의해 일정 지위를 인정받은 곳을 의미하였다. 유럽에서의 도시는 로마제국에 의해 그 기초를 마련하였고 중세 십자군 원정에 의해 오늘날의 중요한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근대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그 도시들의 완성을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농경사회에서의 집단 노동과 씨족 또는 부족 사회적 연대를 바탕으로 한 생활과 달리 도시생활은 타지에서 유입된 사람들로 구성된 계약중심, 목표중심의 사회를 형성한다. 도시행정을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은폐가 불가능한 농토와는 달리 휴대와 은폐가 간단한 화폐를 중심으로 한 상업과 금융업 등이 중심이 되는 주민들의 활동을 대상으로 세금 징수를 위한 세원 파악이 좀 더 체계적이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되게 된다. 이를 위하여 도로의 명칭과 호수가 부여되고 도시를 지역별로 세분화하기도 하며 도시 내의 기능에 따라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공업지역 등으로 분할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의 본격적인 도시화는 공업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1970년대 공업화와 수출산업에 의한 국가발전을 지상의 목표로 삼은 정부의 시책에 따라 생산 노동력 확보를 위한 농촌 인구의 도시 전입이 급속화되었던 것으로부터 오늘날의 대도시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교통이나 통신, 각종 행정업무 처리 등 사업 수행의 편리성 때문에 공업생산시설은 도시에 집중하였고 여기에 필요한 노동력 또한 도시로 집중하면서 전에 보지 못했던 쪽방이나 기숙사 같은 공간도 생겨나고 어둡고 습한 비위생적인 지하실, 창고 등이 근로자들의 거주용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노동자들이 밀집되는 공장 주변의 상점이나 식당, 유흥시설 등이 늘어나는 현상이 확대되어 오늘날의 우리 도시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가내 수공업 중심의 도시에서는 주거지와 사업장이 동일한 경우가 많았지만 본격적인 공업화가 이루어지고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주거지와 사업장의 분리현상이 나타난다.

미래파 화가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도시는 움직임이고 속도였다. 급격한 인구 유입에 대처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도시에서는 하나의 교실을 가지고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하는 2부제 수업이라는 교육제도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1960년대 말부터 수년간에 걸쳐 도시로 밀집되는 인구는 도시 인구의 2/3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역동적이고 바쁘게 살아온 도시생활의 한 세대가 경과하여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생태도시, 국제 거점도시의 개념이 거론되고 있는 시점에서 젊은 예술가 여덟 명이 자신들이 태어나서 자란 도시를 바라보는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여덟 명의 작가들 가운데 상당수는 도시의 밀집성과 복잡성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미래지향적이기보다는 과거 회귀적 혹은 감상적 노스탤지어를 담아내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들이 태어났던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에 걸친 시기를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과 거의 같은 시간을 지내온 낡은 건축물들을 통해 드러나는 세월의 무게와 쇄락, 온갖 비바람과 매연을 벗삼아 한 자리에서 수 십 년을 버텨온 아파트나 빌딩 등을 정밀하게 반복적으로 묘사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로는 정재호와 김수영, 그리고 정직성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작품들은 재료나 소재 면에서 다소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화면을 가득 메우는 도시 건축의 반복되는 기하학적 구조와 패턴, 그 속에서 드러나는 미세한 형태나 색상의 변화를 통해 도시의 표정을 파악하고 있으며 도시적 특성인 인구의 밀집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여 역설적이게도 화면에서 사람과 그들을 동반하는 동물 등이 철저하게 배제됨으로써 초현실적 낯설음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도시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공조명을 이용한 활동시간의 연장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농촌지역이 일몰과 함께 사람들의 활동이 소강상태 혹은 종료에 이르게 되는 반면에 도시에서는 인공조명에 의한 밤의 공간이 대낮과 별로 다르지 않게 부산한 움직임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이러한 도시의 소란스러움과 속도는 김효준의 야경에서 다양하게 표현된 도시생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김윤경의 경우도 도시의 거리와 건물 등이 파노라마적으로 배열된 화면을 통해 개인적 공간체험을 표현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한 화면 안에는 여러 시점과 시간이 공존하는 편집된 공간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까지 언급한 작가들이 도시의 모습을 비교적 거시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 비하여 이문주, 노충현, 이제 등은 도시의 이면과 작은 부분에서 모티브를 포착하여 대상을 화면에 담아내는 편이다. 이문주가 관심을 갖는 대상은 재개발 혹은 재건축을 위해 철거된 도시의 한 구석에서 감지되는 사람의 흔적과 효율성을 지향하는 도시개발의 냉엄한 논리 사이의 괴리를 느끼게 해준다. 노충현의 작품에서는 도시의 한 구석 또는 그 공간에 놓인 사소한 물건으로부터 실존적 사색을 유도하며 이제의 작품은 우리 생활 주변에서 무심코 머물 수 있는 시선들을 화면에 포착시키고 있다. 이처럼 8명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삶을 담고 있는 도시공간을 숨쉬고 느끼며 관찰하고 표현하며 그들이 묘사하는 도시회화의 행방을 모색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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