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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현대미술전

하계훈

20세기 후반에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야기하던 무렵부터 세계미술의 중심부는 주변부가 중심으로 편입되거나, 혹은 중심 자체가 해체되어 다원화하는 현상을 보였으며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시아권의 미술이 개별적 혹은 집단적으로 약진하기도 했다. 이러한 아시아 미술의 부상에 있어서 각국의 미술은 순차적 도미노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도미노 현상의 출발은 중국이며 그 뒤를 이어서 인도, 베트남 등이 예견되고 한국이나 일본도 잠재력 있는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미술시장 중심적이며 여전히 서구 거대자본 주도적이고, 정작 그 지역에서 자생하는 미술의 본질적인 담론이 함께하지 못하는 한 그다지 크게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기는 하다.

우리가 목격한 것처럼 최근 몇 년간 중국미술은 광풍처럼 아시아 미술계뿐 아니라 세계미술 시장을 쓸고 지나갔고 그러한 현상에 대한 긍정적 반응과 함께 조심스런 우려와 향후의 방향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이번에 서울대학교미술관에서 열린 <인도현대미술: 일상에서 상상까지>전은 시기적으로 적절하였다고 판단된다.

싱가포르미술관과 서울대학교미술관이 공동기획 형식으로 준비한 이번 <인도 현대 미술: 일상에서 상상까지>전은 이러한 미술의 흐름 속에서 최근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는 인도 현대미술 속에 담긴 사회적 변화의 기록과 인도인들의 정신세계 속의 풍부한 신화적 내러티브 및 철학적 전통을 소개하는 의미있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미술계에서는 이제까지 외국미술을 소개함에 있어서 서구미술에 편중하여 관람객들에게 소개되어 왔고 최근에 와서 중국미술이 그러한 편식현상을 다소 누그려뜨려주긴 하였으나 그 밖의 지역미술에 대해서는 전후의 맥락을 짚어 볼 수 없이 간헐적으로 소개될 뿐 사실상 거의 소개가 되지 않은 셈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는 인도 미술 특유의 시각적 표현 뿐 아니라 작품 안에 담긴 시간과 공간 개념, 상상과 현실의 표현방식을 감상할 수 있는 뜻 깊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싱가포르미술관 측의 큐레이터 진위는 인도미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를 ‘다양하고 끝없이 무한한 이원성’이라고 보았다. 인도라는 나라는 엄청난 부와 엄청난 빈곤의 땅, 으리으리함과 누더기의 땅, 코브라와 정글의 땅, 백 개의 나라와 백 개의 언어가 있는 땅, 천 가지 종교와 200만의 신들이 있는 땅, 역사와 전통의 땅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근현대사를 들여다보면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음으로써 전통과 근대화의 갈등을 겪었으며 엄격한 신분제의 틀 속에서 현실의 삶과 꿈속의 이상이 한 공간에 존재하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작가들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사실의 발견자이며 사회의 개량자 노릇을 하기도 하고 신화의 창조자이자 마술가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본 전시의 테마는 작가들의 삶 속의 경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 안에는 작가의 개인적 삶은 물론 그들의 예술적 전개과정이 현실세계와 상상의 세계에 함께 맞닿아 있다. 출품한 작가들 중 일부는 전통과 서구적 모더니티라는 개념을 탐구하였고, 인도 현대사에서 가장 가혹했던 정치적 격동기를 지나오면서 그러한 사회현실과 관련하여 작가마다의 관점으로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작품으로 구체화하고자 했다.
이번에 출품한 아홉 명의 작가 가운데 A. 라마찬드란은 외세에 대해 저항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작가활동의 전반부를 지나, 작가의 말을 빌자면 ‘사회문제로부터 사회봉사로’ 방향을 바꾸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는 이번에 출품한 <연꽃> 시리즈를 통해 이미지와 색채가 음악이나 시와 같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다른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하고 그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작품의 규모나 표현 방식에 있어서 멕시코의 벽화나 모네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연작을 떠올리게 해주기도 하고 인도 고유의 전통적 표현을 느끼게도 해주는 복합적인 해석이 가능한 작품을 통해 작가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관람자들에게 위임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인도의 근대사가 가진 현실이 그러하듯 작가들 가운데에는 젊은 시절 인도의 반외세 투쟁에 가담하여 투옥되기도 하였다가 나중에 인도가 독립된 후에는 영국이나 미국 등에서 유학하면서 양쪽 진영의 문화를 절충하는 형식으로 작품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K.G. 수브라마니안은 이러한 작가들 가운데 하나이며 M.F. 후세인과 같은 작가는 정치활동을 병행하면서 미술에 있어서 국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출품작들 가운데 S.H. 라자와 같은 추상 작가의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인도 미술의 전반적인 특징은 서사와 상징이 풍부한 화면을 작가가 정성스럽게 묘사해나간다는 점일 것이다. 인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그러하듯 인도 현대미술 작품 속에는 영국이나 프랑스를 통한 유럽적 요소와 아시아적 설화와 전통의 요소 그리고 인도 특유의 색상과 표현이 한 화면 안에 혼재하여 풍부한 감동과 재미를 준다. 이번 전시를 기폭제로 하여 앞으로 보다 본격적으로 인도의 미술이 우리에게 소개되어 우리 미술계의 메뉴가 풍성해지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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