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이미지 연대기

하계훈

1979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으로 출발한 아르코 미술관 수장고에는 400 여 점의 작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초창기의 작품들은 미술대전, 공예대전이나 서예대전 등의 공모전 입상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2000년대 들어서서는 작품의 스펙트럼이 사진과 영상 및 설치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반영하여 보다 다양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이미지 연대기>는 이러한 작품들을 재료로 엮어내는 아르코 미술관의 소장품전이다. 미술관 측은 이러한 자료들을 편년적으로 펼쳐 보이거나 장르별로 모아놓는 단순한 구성을 지양하고 외부로부터 8명의 객원 큐레이터를 초청하여 각자 소주제를 선정하게 하고 시각예술에서 도출할 수 있는 몇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시장을 구성하였다.

이렇게 참여한 8명의 큐레이터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작가, 큐레이터, 미술기자, 교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작품을 엮어 내거나 공간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이들의 아이디어가 총출동됨으로써 자칫 무미건조해버릴 수도 있었던 아르코미술관의 소장품들이 작품과 작품 사이에서 새롭게 창출되는 의미의 맥락을 구성해내어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아르코미술관측에서는 이번 전시를 통해 지난 30년간 소장해왔던 작품들을 처음으로 정리해보고 작품의 성격에 따라 몇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작업을 병행한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회고적 정리와 결산을 마침으로써 향후의 아르코미술관 수집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은 총 93점인데 이 가운데 12점은 전시 주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하여 외부에서 대여해오기도 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이번 전시는 아르코미술관의 소장품전만은 아닌 것인 셈이다. 1, 2 층의 여덟 개의 섹션에서 펼쳐진 이번 전시는 큐레이팅을 맡은 각각의 기획자들의 개성이 강하게 반영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만화가 김영기의 경우에는 정물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을 엮어내면서 작품과 작품 사이의 신경망처럼 연결되는 배경의 드로잉을 제작하여 기획자이면서 동시에 작가로서 이번 전시에 참여하고 있다. 김영기는 또한 전시장 내부로 반입하기 어려운 미술관 외부의 조각 작품들을 촬영하여 실내에서 영상으로 제시하는 작업을 병행하였다.

국가 이데올로기나 가부장적 이념을 표현하는 문구, 게다가 지금 젊은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한자로 된 내용의 작품들이 대부분인 서예작품을 가지고 전시를 구성한 김학량 교수의 경우는 이러한 우려를 떨쳐버릴 수 있게 화환에 부착되는 리본의 글씨나 평범한 일상에서 신문지 위에 습작으로 써나간 글씨 등의 사진과 실물을 함께 전시실에 동원하여 우리의 전통 속에서 면면이 전해 내려온 서예가 박제된 과거의 예술 활동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 주변에서 엄연하게 수행되고 있는 글쓰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은박지처럼 반짝이는 돗자리 재질로 전시장 벽을 도배하고 작품 액자를 벽에 걸지 않고 비스듬히 걸쳐 놓은 전시 공간 연출은 그를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가 분명치 않아 보이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밖에도 인물화를 중심으로 그림 속 인물의 묘사에 담긴 당대의 사회 분위기를 더듬어 보고 이러한 인물화를 제작한 작가들이 지닌 근현대사 속의 자의식이 변천해오는 과정을 추적해보려 했던 노형석 기자의 기획이나 전형적인 공예대전 입상작들을 가지고 다양한 형태의 그릇이 빚어내는 선과 형태를 조명효과로 멋지게 표현한 강홍구의 기획, 그리고 관념적 풍경에서 사실적인 풍경으로, 또는 부감법으로 바라보는 원경에서 점점 다가서는 시선이 그려내는 풍경 작품들을 엮어낸 김보민 작가의 기획도 전시의 흥미를 더해주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아르코미술관 측은 동일한 작품이라도 기획자의 해석과 배치에 따라 새로운 의미망을 엮어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시도는 유럽과 미국에서 헤럴드 제만과 같은 기획자의 기획 이후 새롭게 시도되는 전시 형태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러한 기획은 기본적으로 소장품에 대한 정리와 해석이 완결된 이후의 단계에서 관람객과의 보다 차원 높은 소통의 방법으로서 채택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아르코미술관 측이 이러한 소장품 해석 작업을 완료하지 못했다면 그 작업에 자기 에너지를 먼저 투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자 제대로 된 순서일 것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