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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하는 눈: 디지털 스펙트럼

하계훈

우리의 오감 가운데 미술활동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시각이다. 시각, 즉 눈을 통해서 우리는 형태와 색채 그리고 그것들이 종합적으로 이루어내는 여러 가지 조형적 가치들을 즐기고 감상할 수 있다. 이번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반응하는 눈: 디지털 스펙트럼>이라는 제목으로 기획된 전시는 미술에 있어서의 이러한 시각적 반응과 인식이 오늘날의 다양한 미술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현상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하는 시도였다.

<기하학적 상상>과 <이미지 환영술사>라는 두 가지 섹션을 통해 26명의 작가가 회화, 영상, 설치 등의 작품 50여점을 선보인 이번 전시는 서양미술사에서 1960년대를 장식했던 옵티컬 아트에 오늘날의 디지털 테크놀러지를 가미하여 보다 넓게 확장된 옵티컬 스펙트럼을 전개시켜주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 가운데에는 지난 세대의 옵티컬 아트에서처럼 주로 시각적 착시현상을 평면적으로 표현했던 작품 이외에 최근에 개발된 테크놀러지를 응용하여 관람객들이 렌티큘러나 홀로그램, 그리고 디지털 이미지의 조작을 통한 착시현상을 경험하게 하는 작품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기하학적 상상> 섹션에서는 프랙털 기하학 도형의 반복적 자기 증식에 의한 이미지를 확대시키고 동심적(同心的) 이미지의 방사와 수렴을 표현한다거나 빛의 작용에 의해 화면에 형성되는 이미지를 이용하여 환상적 가상공간을 형성하는 작품들이 선보였다. 이러한 작품들이 생성하는 시각적 효과는 기본적으로 우리들의 망막에서 발생하는 잔상효과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관람객은 현실의 공간에서 작품을 마주하면서도 망막 위에서 일어나는 착시현상에 의해 일시적으로 비현실적 무중력 상태의 공간을 체험하게 된다.
출품작 가운데 별 모양의 도형이 미세한 시차를 두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마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거나 반대로 무한히 외부로 확장되는 느낌을 주는 끌로드 클로스키의 영상작업과 치밀하게 계산된 오각형 도형의 꼭지점을 연결시킨 지점에 배치된 다양한 크기와 색상의 원이 모여 마치 색맹 검사용지처럼 부유하는 듯한 수많은 원의 리듬을 화면 가득 채워 넣은 고낙범의 대형 캔버스, 블랙 라이트가 깊이감 있게 후퇴하는 형광색 선에 비추어져 환상적인 공간의 확장이 암시되는 나인주의 설치 작품, 그리고 사물이나 신체의 일부가 마치 벽지의 패턴처럼 반복적으로 확장되어 전체 화면을 이루는 이중근의 작품 등이 관람객의 눈길을 끄는 편이다.

<이미지의 환영술사> 섹션에서는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관람자들에게 시각적 눈속임을 경험하게 하는 작품들이 출품되었다. 여기서 주로 이용되는 도구 가운데 하나는 사람과 사물의 그림자로서 캔버스 저편의 인물이 관람자의 공간 쪽으로 나오려는 듯한 착각을 일으켜주는 곽남신의 그림자 회화나 여러 단으로 작은 수평의 선반을 이룬 설치물 위에 찻잎을 쌓고 위쪽에서 내려 비치는 빛에 의해 이러한 설치물이 형성하는 이창원의 실루엣 설치 조형, 그리고 음각으로 파인 형태에 의해 드러나는 빈 공간 속에 생겨나는 그림자로 인한 사물의 존재감을 암시하는 이지은의 작품 등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이 밖에도 수직으로 반복되는 선에 부분 채색을 가하여 전체적으로 손과 같은 인체의 일부분이 드러나며 관람객의 위치가 이동됨에 따라 조금씩 그 모습을 바꾸는 홍성철의 시리즈, 두 개의 불규칙한 기둥 형태의 물체가 돌아가면서 그 사이의 빈 공간에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밀로의 비너스 형태를 만들어내게 해주는 김기훈의 작품, 그리고 관람자가 응시의 대상을 고정시킨 채 위치를 이동함에 따라 작품의 모습이 변화하는 이용덕의 음각 조각 등도 우리에게 즐거운 눈속임이 가져다주는 쾌감을 선사해준다.
이러한 작품들은 1960년대 서양의 옵티컬 아트와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차별화되는 점을 드러낸다. 서양미술사에서 옵티컬 아트의 작업들이 주로 기하학적 비구상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관람자들이 시각적인 착각과 애매성, 모순을 일으키도록 의도적으로 화면을 조작한다든가, 또는 선행한 추상표현주의나 팝아트 미술의 무질서와 과학성의 결여를 극복하려는 형식적 실험에 무게를 두었다는 점에 비하여 이번에 <반응하는 눈: 디지털 스펙트럼>전에 출품된 작품들에서는 형식의 유사성을 넘어 형식미와 연관된 주제의식이나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기억, 관심 등을 동시대적 내러티브에 접목시켜 보편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서울시립미술관이 내부 인력의 기획력에 의존하기보다는 외부 기획단체가 조직하는 블록버스터 형 전시에 기대어 안이하게 운영된다는 비판을 의식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반응하는 눈: 디지털 스펙트럼>전은 최근 우리 미술계에서 지적되고 있는 기획력 빈곤의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보이며 관람객과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기획자의 의지가 읽혀지는 전시였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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