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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영

하계훈

한참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물러갈 준비를 하던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 사람들은 서울의 어느 실내 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세계적인 아이스발레 공연을 관람한다. 우리 주방에 있는 냉장고 냉동실에도 계절에 관계없이 얼음이 만들어진다. 이것들이 비록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얼음이지만 얼음은 우리 주변에 흔하게 있다. 또 다른 얼음은 대부분의 우리가 가보지 못한 북극이나 남극에서 조용하게 생명을 품고 자연의 순수를 지켜보며 긴 시간을 품어오고 있다. 이러한 극지의 얼음들이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다.

작가 강소영은 우리의 생활 주변에 존재하지만 우리의 눈에 쉽게 띄지 않아서 관심에서 멀어지고 그러는 사이에 차츰차츰 사라져가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대학에서 판화를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다시 서양화를 공부하더니 이어서 애니메이션과 영상 공부를 더 하고, 한동안 핸드백 디자이너로 활동하기도 한 작가를 화가로 불러야 할지 아니면 디자이너나 영상작가로 불러야 할지 분명치는 않지만 강소영은 인간의 물신숭배적 욕망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욕망인 행복감의 추구에 대한 관심을 거쳐 보다 폭넓게 생명과 존재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작가로서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디지털시대의 인간답게 작가 이전에 인간 강소영은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이곳저곳 관심이 끌리는 곳을 옮겨 다니며 작업하는 노마드의(Nomadic) 작가다. 생명의 원천인 물 가까이에 정주하여야 생명과 생활이 보장되던 농경사회를 벗어난 현대에 정착의 필요성은 더 이상 설득될 수 없다. 작가의 말처럼 무언가에 이끌리면 강소영은 우즈베키스탄이나 베트남, 혹은 남극을 향해 떠나간다.

이번 대안공간 풀에서 열린 강소영의 영상작품 전시 은 1988년 우리나라가 남극조약에 가입하면서 남극의 킹 조지 섬에 설립한 세종기지에 위치한 극지연구소에서 아리디어가 잉태되었다. 이번 전시는 2005년 11월에 예술가들을 초청하여 남극의 환경을 체험하고 그로부터 창작의 영감을 끌어내도록 기획한 <극지연구소 예술가체험단 프로젝트>에 문인이나 사진작가들과 함께 참가한 결과를 영상으로 풀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남극 체험의 동기를 그곳에서 보고 느낀 것들로 스케치를 하며, 실험 단편 애니메이션을 위한 시놉시스를 제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아직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남극의 자연에 대한 체험을 작품화하려는 작가의 고민은 생태파괴와 과학적 연구라는 이름 아래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장소에 대한 안타까움, 정치적 욕망과 정복욕에 의해 허물어지고 떠내려가는 것에 대한 연민과 공감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떠내려가는 유빙(遊氷)과 친구처럼 어울리기도 하고 한발자국 떨어져 관찰자의 시선으로 현장을 바라보기도 한다.

이번에 출품된 3D 애니메이션 영상에서는 기후 온난화의 영향으로 떨어져 나온 유빙이 남극 바다의 출령임 속에 떠내려가는 장면을 아날로그적 수작업 드로잉으로 표현하여 입체영상으로 마무리하였으며 이렇게 서서히 인간의 발길에 의해 허물어져 가는 자연에 대한 고발과 연민이 잘 드러나 있다. 또 하나의 작품에서는 헬리콥터와 트랙터가 순결한 자연의 땅 남극에 쉴 새 없이 컨테이너와 과학실험 장비를 운반하는 장면이 그래픽 영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애니메이션 영상과 평면작업을 병행하고 있는 작가 강소영은 호기심에 가득한 창작의욕을 억누르지 못하고 낯선 곳으로 떠나고 되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주로 우리들의 관심에서 한발 비켜 있는 장소에서 강소영은 상황의 정치적,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고 그것을 인간 고유의 욕망이나 정복욕과 연결된 현상으로 해석하여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이번 전시의 제목에서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사라져가는 장소를 찾아가는 이러한 프로젝트는 앞으로 시리즈 형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릴릴(Liilliil)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강소영의 유목민적 창작의 순례가 다음번엔 어디로 향할 것인지 궁금증을 가지고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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