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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갤러리 개관기념 전

하계훈

1979년 8월에 문을 연 관훈갤러리(원래 관훈미술관으로 개관하였으나 1990년대 초반 박물관및미술관진흥법에 의해 관훈갤러리로 명칭이 조정되었다)의 개관 30주년 기념전으로 개최된 <지각과 충동전>은 관훈갤러리가 지난 30년 동안 일관되게 유지해 온 전시의 방향과 성격을 잘 담아내고 있다.

12명의 평론가가 각자 한 명의 작가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개최된 <개관기념 신예작가12인전>으로 시작하여 <에꼴 드 서울전>, <레알리떼 서울전>, <로고스와 파토스전>, 그리고 <삶의 미술전>으로 이어진 갤러리의 전시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관훈갤러리는 당대의 젊은 작가들의 진취적 경향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창작 분위기를 진작시키고 실험적인 미술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일관되게 전시공간을 운영해왔음을 알 수 있다.
관훈갤러리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는 동안 모더니즘과 민중미술뿐 아니라 입체, 설치, 영상 작품 등을 통해 우리 현대미술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작가들과 그들의 그룹 운동들을 수용하여 왔으며 당시로서는 인사동 지역에서 비교적 커다란 공간으로서 새로운 전시문화를 리드해왔었다.

지금은 우리 미술계의 커다란 인물이 되어있는 작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전 초창기에 관훈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발표해왔고 갤러리 설립자의 지원을 받았으며 그로부터 창작활동에 더욱 몰두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작가들도 적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말하자면 관훈갤러리는 일정부분 우리 현대미술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온 셈이다. 실제로 관훈갤러리의 초기 기획전 도록을 살펴보면 오늘날의 유명 작가들의 젊은 시절 작품들과 작가들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인사동의 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치룬 1980년대 후반 이후 우리 미술계가 국제적으로 서서히 개방되기 시작하고 1990년대에 들어서서 비엔날레나 국제적인 아트페어를 통해 우리 미술계가 국제 시장에 개방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분위기를 띠게 되었지만 관훈갤러리가 운영되던 초창기만 하여도 인사동은 고미술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화랑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전통 회화 제작에 필요한 물건을 파는 문방구점이나 표구점이 전체 분위기를 주도하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상업적으로도 별로 실속이 없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과감하게 문호를 개방하고 우리 현대미술의 거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관훈갤러리의 역할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결국 관훈갤러리가 우리 현대미술의 중요한 움직임의 진앙지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우리 현대미술의 산증인으로서 30년간 인사동을 지켜 온 관훈갤러리가 이제 곧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전면적인 공간 보수와 신축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전해진다. 때마침 외국에서 예술경영 분야를 전공하고 돌아온 설립자의 자녀 세대로 경영이 이어지고 시설과 운영의 대대적인 혁신을 기획하고 있다고 하니 이제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관훈갤러리가 국제적으로 보다 치열한 경쟁에 놓인 우리 현대미술의 앞길에 또 다시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두 번째 도약기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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