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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한국현대회화 8인

하계훈

2007년을 전후로 세계 미술시장의 급성장을 반영한 우리 미술시장과 미술계의 관심이 외국의 거물급 작가나 국내의 작고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거장들, 그리고 외국 경매시장에서 조명을 받은 신진작가들로 몰렸을 때 우리 화단에서는 미술계의 허리 부분에 해당하는 작가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되어가는 미술 현장의 쏠림현상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었다.

이번에 갤러리 박영에서 기획한 맥-한국현대회화 8인전은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우리 미술계의 영양 불균형의 치유(remedy)를 위한 처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 출품된 8명의 작가들의 작품은 주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우리 미술계를 형성하는데 밑거름이 된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시장을 중심으로 한 우리 미술계와 미술시장의 근시안적인 성과지상주의에 의해 이들 작가들의 업적과 기여도는 무대 뒤로 밀려난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1960년대와 70년대라는 시기는 우리 미술이 지역주의적 단순성에서 탈피하여 보다 넓은 시각으로 미술활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유럽과 미국의 미술을 이전보다 활발하게 접하게 되는 시기로서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이 시기를 “보다 폭넓고 내면적인 의식의 변혁을 통해 배태되고 영글었던” 시기로 보고 있으며 “뜨거운 추상미술에서 시각적 추상과 행위예술을 거쳐 미니멀리즘과 개념예술에 이르는 긴 과정”이 한국현대미술의 전개과정에서 숨 가쁘게 진행되었던 시기로 보고 있다.
참가 작가 가운데 곽훈은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작업의 완성도를 높인 작가였으나 자신의 뿌리인 동양사상을 작품에서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과 한국 양쪽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로 안착한 대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곽훈이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미국 화단은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이 남아있던 시대였으므로 곽훈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양식의 영향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의 작품의 특징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으로 사발을 배열한 작품은 동양적인 붓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그가 미국에서 작업하여 오는 동안 전개된 팝아트와 미니멀 아트, 개념 미술 등의 사조와 직접,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음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사상이나 양식이 적절하게 혼합된 작가의 작품으로는 이강소의 간결한 청회색 필치로 표현되는 오리 작품을 들 수 있다. 동양적 도자가의 분청과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작품의 결과보다 제작 과정의 제스처를 읽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액션 페인팅과도 연결을 지을 수 있는 것이 이강소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출품작에서는 종전과 달리 단색조에서 벗어나 채색을 가미하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줬다.

곽훈처럼 직접 외국으로 건너가지 않더라도 그 당시 우리 화단의 작가들의 촉수는 외국의 미술사조에 민감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한편으로 같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다른 한편으로 꾸준히 창작활동을 펼쳐 온 하종현, 서승원, 김태호는 각자 추상미술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하종현의 접합 시리즈는 유럽의 앵포르멜 회화에서 물성에 대한 탐구에 집중되었던 작품들과 맥을 같이 하는 면이 있다. 그의 작품은 작가가 굵은 마대 천 뒤에서 물감을 바르면서 천을 누르는 압력으로 인해 천의 올 사이를 통과한 물감이 앞면으로 밀려 올라오게 되는데 이렇게 밀려 올라온 물감을 다시 평평한 도구를 이용하여 누르면서 펴거나 긁어내는 등의 작업을 거쳐 제작된다. 가늘고 굵은 선과 마대천의 특유한 질감이 단색조의 물감과 접합되는 등의 작용으로 발생하는 느낌이 관람객의 마음을 차분하고 명상적인 무드에 젖게 만들어 준다.
서승원의 부드러운 기하학적 화면은 예리한 윤곽을 배제한 파스텔 톤의 화면을 통해 명상적 분위기를 주는 신작을 통해 산사의 아침햇살 같은 화사함 혹은 우리 전통의 모시 천이 겹쳐진 느낌을 전해주기도 한다.

대형 캔버스에 수평과 수직으로 그리드를 형성하는 단색조의 모노크롬 화면을 기본으로 하는 김태호의 작품에서는 역설적이게도 많은 이야기들과 움직임들을 읽어낼 수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작가의 작품은 관람자의 망막에서 하나의 색으로 읽혀지지만 작품에 다가가서 자세히 화면을 들여다보면 수없이 쌓아 올린 물감 층의 두께와 세부의 미묘한 조형적 변형을 읽을 수 있다. 미세한 구조의 반복에 의해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지고 여기에 오묘한 색채의 변주가 더해지면 화면은 단순한 모노크롬 회화에서 벗어나 치밀한 구성으로 관람자들이 생명의 리듬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김구림은 프린트된 이미지 위에 호방한 붓놀림으로 채색을 가하고 그 위에 콜라주를 덧붙인 ‘음양’시리즈를 선보였다. 큰 붓을 생동감 있게 휘젓듯이 운필하여 화면에 흐를 것만 같은 물감 사이로 보이는 대중소비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이미지가 한국의 대표적인 아방가르드로 분류되는 작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공공 미술 조각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온 조각가 정보원은 이번 전시에 기하학적 평면 작품을 처음 선보였고 안정숙은 64개의 정사각형 화폭이 모여 부조로 인간의 다양한 표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자연의 기하학적인 이미지를 담은 패널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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