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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조형 언어를 통한 개체간의 소통을 모색하는 작가들

하계훈

우리는 지난 10 여 년간 국제 미술계에서 그때까지 주변에 머물러 있던 지역의 예술가들이 중심부로 진입하는 현상을 목격해왔으며 그러한 움직임이 진행되면서 한국의 미술도 조금씩 국제미술계에서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세계 미술계의 흐름을 탄 결과인지는 좀 더 연구해보아야 하겠지만 백남준을 비롯한 몇몇 대한민국 작가가 세계 미술의 중심 무대에서 당당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고 후배 작가들은 저마다 새로운 가능성을 꿈꿀 수 있었다.

사실 한국 작가들의 예술적 기량의 우수성은 많은 사람들이 칭찬해왔고 일부 작가들은 그것을 세계 미술의 중심 무대에서 분명하게 증명해 보여주었다. 다만 그러한 재능을 세계무대에 효과적으로 올려놓고 정당하게 평가받는데 필요한 매니지먼트 능력과 미술 외적으로 요구되는 조직화된 노력이 아직까지 조금 모자랐던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역량 있는 작가들이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약진하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분야에서의 조직적이고 전문적인 노력이 합쳐져 좋은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갤러리 LVS에서 기획한 뉴포커스전은 이런 의미에서 역량있는 젊은 작가의 잠재성을 일찍부터 개발하여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활동력 있는 작가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작은 시도의 출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5명의 출품 작가들 가운데 맏형격인 박종호는 건축공학을 전공한 뒤 다시 미술대학에서 훈련을 받고 뒤늦게 전업작가의 길로 뛰어든 작가로서 현실의 불확정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평면 작업과 사진작업을 겸하고 있다. 작가 자신의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고 인간 일반의 공통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는 현실 타협과 이상 추구 사이의 괴리의 지점에서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살아가는 상황을 은유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작가는 우리 속의 돼지의 삶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한다. 좁은 축사에서 이무런 노동 없이도 때가 되면 먹을 것을 주는 환경에 처한 돼지들은 무기력하고 나태하게 무리지어 누워있거나 엉켜있는 듯 보이지만 그들의 눈은 또렷하게 살아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작가는 돼지로 은유된 현대인의 자아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 금속성이 강조되는 알루미늄 깡통을 사람 형상으로 구축하고 그것을 촬영하는 사진작업으로도 연장된다.
오수진의 경우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는 시점에서 요즈음 대부분의 젊은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광고나 매스미디어와 같은 대중 매체에 대한 관심을 작품으로 연결하고 있다. 잡지의 표지 등에서 화려하게 등장하는 모델들의 모습을 다시 대형 화면에 포토리얼리즘 형식으로 세밀하게 표현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약간의 화면 편집을 통해 관람객들이 현실과 허구의 차이와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자신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배양해왔던 환상적인 자아를 향한 욕망의 실체와 현실의 자아가 뿌리내리고 있는 자신의 상황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오수진의 작품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주제의 보편성을 구현하는데 있어서 관념을 동반한 탄탄한 묘사력이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보람의 경우에는 핑크색과 붉은 색을 중심으로 화면에 보도사진 등에서 채집된 듯한 모자이크된 인물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의 이미지들을 표현한다. 작가가 관심을 갖는 주제는 상당부분 전쟁과 같은 폭력과 상처 등에 관련되어 있는데 붉은색이나 핑크색이 주는 희생과 피흘림의 느낌은 화면에 파열된 청회색 얼룩에 의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주제의 강렬함과 긴장감을 이완시키기 위하여 작가는 색채를 파스텔 톤으로 누그러뜨리고 있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관람자는 쉽게 화면 속의 이미지에 다가서지만 이내 주제의 심각성에 빠져들게 된다.

이효영의 경우에는 작가로서 중요한 무기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색채라는 요소를 화면에서 배제하고 오직 연필만을 이용하여 흑백의 모노톤으로 커다란 화면 위에 무수히 많은 인물과 사물의 이미지들을 세밀하고 조밀하게 채워 넣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많은 시간과 노력의 집중을 요구하며 화면의 조화와 균형 역시 고려되어야 하는 지루하고 고통스런 작업일 수도 있다. 화면 속의 형상들은 인간의 얼굴에 동물의 몸을 가지고 있거나 초현실주의적인 비례와 구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가 창조해내는 이러한 개체들은 상당수가 스스로 고립되어 잇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소통하려는 자세로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면의 한 지점에서 시작하여 마치 거미가 허공에 거미줄을 지어가듯 작가는 화면 속에 개체간의 그물망을 지어가는 것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박현민의 경우에는 캔버스에 유채를 이용하여 작가 자신의 주변 인물의 일상에서 포착된 모습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하거나 한국화의 채색 기법으로 인물과 동식물 등을 차분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두가지 기법과 재료는 그 성질을 달리하는 것으로서 유화가 물감을 덧씌우는 과정으로 작품을 창조해낸다면 채색화는 안료가 화면에 스며들고 번지기도 하면 얇게 올려진다는 차이점을 나타낸다. 사진기를 이용하여 이미지를 채집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화면 속의 인물들이 관람자들과 시선을 마주치는 작품들이 대부분인 점이 작가의 사적인 관계를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과 화면 속 인물 사이의 과계로 확대시켜야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박현민 역시 탄탄한 묘사 능력을 바탕으로 두 가지 형식의 회화의 특성에서 절충점을 찾아내고 다른 한편으로 주제의 발전을 계속해 나아간다면 앞으로 좋은 작품을 낳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번에 출품하는 작가 다섯 명은 이처럼 한 가지 양식이나 속성으로 묶기 어려운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다섯 작가 모두 인간성에 대한 관심과 인간 상호간의 소통과 교류를 지향하고 있으며 선명한 주제의식과 이러한 주제를 뒷받침해주는 조형언어의 선택에서 각자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실험과 모색을 지속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활동을 관심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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