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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립미술관

하계훈

지난 6월 26일 제주도립미술관이 개관되었다. 제주도립미술관은 4만㎡ 가까운 규모의 부지 안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데 연면적은 7000여 ㎡로서 제주 현무암과 노출콘크리트, 현대식 통유리로 외관을 꾸며 놓았다.

주차장에서 제주의 전통대문인 ‘정낭’을 지나 전시장 입구로 접근하면서 관람객들은 전면에 설치된 발목 깊이의 물이 채워진 수면공간을 건너게 되면서 이곳이 섬 지역 제주임을 환기하게 된다. 이 수면공간에 반사되는 본관 건물 전체는 노출 콘크리트 구조에 현무암 마감으로 무채색의 톤을 드러낸다. 미술관 건물을 설계한 간삼파트너스 김미정 소장은 자연 속에서 최대한 몸을 낮추어 미술관이 제주와 미술 작품의 배경이 되고자 했다고 한다. 이러한 건축 컨셉에 대해서는 찬반의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미술관이 예술 감상 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장소이며 중요한 관광 자원의 한 가지로 변화 되는 추세에 비추어보면 너무 특색 없는 외관을 가진 미술관이라는 부정적인 의견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미술관 본연의 기능인 미술품 감상을 위한 환경 조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설계자의 아이디어가 합리적이며 겸손하였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할 것이다.

도립미술관은 개관 전시로 <환태평양의 눈(Eye of the Pacific Rim)>이라는 타이틀 아래 4개의 전시를 선보였다. 다양한 정치, 사회, 문화적 스펙트럼을 통해 글로벌화를 경험하고 있는 34인 작가들의 작품들이 서로 다른 내러티브를 통하여 투영된 국제전 ‘숨비소리’전 외에 제주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해보는 ‘제주미술의 어제와 오늘’전, 차세대 주역이 될 지구촌 어린이들의 작품을 한데 모은 대규모 축제형식으로서 제주 환경을 주제로 한 어린이들의 작품 424점이 전시된 ‘세계어린이환경미술제’, 그리고 제주도에 정착하여 창작생활을 해 온 작가 가운데 하나인 장리석 화백이 제주도 당국에 작품 110점을 기증한 것을 계기로 마련된 장리석 기념관을 여는 첫 전시로서 ‘바다를 닮은 화가 장리석’전 등 4개의 전시가 9월30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이중 가장 규모가 큰 <숨비소리>전은 자연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춘 1부 생명의 에너지와 인간의 삶을 조명한 2부 호흡하는 공간들로 나뉜다. 이렇게 두 섹션으로 나뉘어 바람, 물, 빛 등 제주를 상징하는 자연요소를 주제로 작업한 11개국 작가 36명의 작품 98점이 선보이는 전시의 타이틀인 숨비소리는 해녀가 물질로 숨이 차면 물 위에 올라와 가쁘게 내뱉는 숨소리를 말한다. 숨비소리는 제주 특유의 지역적 특성에서 파생된 독특한 문화적 코드이며 동시에 그 천혜의 자연환경을 구성하는 물, 빛, 바람이라는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을 반영하는 상징으로서 해석될 수 있다.

‘생명의 에너지’ 부문에는 근래에 와서 더욱 더 그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물, 빛, 바람, 그리고 소리라는 자연의 요소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전 세계 예술인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거장 톰 윌킨슨(영국)과 21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바람의 예술가 테오 얀센(네덜란드), 빛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미국), 중국 현대미술의 대표 주자인 숭동(중국), 그리고 한국 작가로서 백광익(한국), 안병석(한국), 최우람(한국) 등이 이 전시에 출품했다. ‘호흡하는 공간들’은 호흡, 순환, 공생, 관계, 삶과 죽음 등 ‘인간의 삶’에 초점이 맞춰졌다. 죽음의 본성에 대한 탐구를 해 온 빌 비올라(미국), 오니시 야스아키(일본), 한기창(한국), 이재효(한국), 차기율(한국) 등이 여기에 출품했다.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서 왼편 로비에 설치된 영국 작가 톰 윌킨슨의 유리로 만든 조각들은 모터의 진동에 따라 파도처럼 춤을 추고 있다. 톰 윌킨슨은 빛과 바람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키네틱 아트 작품을 보여주는 작가다.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움직임에서 발견되는 운동성을 수학적인 사고로 전환하여 주기적인 패턴을 발견하고 거기서 발산되는 에너지를 그의 작품에 반영시킨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인 ‘Light Wave’에서 흐르는 듯 일정한 리듬을 반복하며 움직이는 유리 조각들이 빚어내는 빛의 물결은 중력과 동력이 정확히 적용된 수학적 계산에 의한 움직임으로 전환되어서 300 킬로그램이 넘는 유리날개들이 단지 100와트의 전력으로 평형을 유지하며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Light Wave’의 날개에서 발산되는 빛의 매력은 비단 작품의 움직임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유리가 가진 물성의 매력으로부터 나오기도 하는데 이러한 유리의 속성을 작가는 비물질의 고체(amorphous solid)라 정의하고 있다.

공학도 출신의 세계적인 키네틱 아티스트로서 네덜란드 출신의 테오 얀센과 한국의 대표적인 키네틱 아티스트 가운데 한 사람인 최우람도 움직이는 작품을 출품했다. 바람의 아티스트라고도 불리는 테오 얀센의 작품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바람이다. 테오 얀센은 로봇처럼 움직이는 목재 구조물을 출품했고 최우람은 기계생명체 ‘우르바너스’ 시리즈를 선보였다.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최우람의 곤충 형상의 조각품들은 천장에 매달려 일정한 시간을 주기로 움직이며 빛을 낸다. 작가는 각 기계생명체에 암컷, 수컷, 새끼 등의 정체성을 부여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최우람의 작품은 암컷이 빛을 내면 수컷이 반응하는 형식의 작품으로 한 작품 안에 고대와 현대, 생물체와 기계가 혼재하며 상호 반응하는 특징적인 작품이다.

빛을 활용해 명상적 이미지를 펼쳐온 제임스 터렐은 움직임과 소리를 위주로 표현되는 키네틱 작품 사이에서 관람객들이 잠시나마 안정과 명상에 잠기게 유도해준다. 중국 작가 송동은 중국을 대표하는 개념 미술 작가이다. 중국 현대사에서 커다란 국가 폭력과 예술적 희생이라는 오점을 남긴 문화혁명이 마침내 피로 폭발하는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천안문 광장. 작가는 1996년 한겨울의 꽁꽁 얼어붙은 그 역사의 현장을 직접 혀로 핥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공산 정권아래 억압되고 경직되었던 표현의 자유를 따뜻한 인간애로 풀어냄을 상징한다. 본 전시에 출품된 Water Diary 는 작가가 물을 이용하여 적은 일기의 기록으로서 이러한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출품 작가 가운데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는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는 화면 속에서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의 표정과 동작을 보여주고 있으며 일본 작가 오니시 야수아키는 어두운 방에 거대한 투명비닐을 설치해 놓은 작품을 선보였다. 어둠 속에 형광색이 점점이 빛나는 방은 마치 우주처럼 보이는데 여기에 두 개로 이뤄진 비닐은 번갈아가며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해 숨 쉬는 허파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면서 우리들이 일상에서 숨쉬는 들숨과 날숨 상기시켜준다. 독일 작가 베른트 할브헤르는 제주 성산봉 분화구의 사진을 이어붙 둥근 공으로 만든 작품 <분화구>를 출품했다.
이번에 출품한 작가들 가운데 서유럽이나 미국 작가 중심의 작품들에 국한되지 않고 전시회의 국제적 성격을 더욱 다채롭게 해주는 역할을 맡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룰롸 알 호모드의 경우에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 명기된 신을 일컫는 99개의 소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 한 작품을 출품하였다. 중동지역과 북 아프리카에 걸친 아랍 문화권의 미술에서는 이미지의 표현이 제한되어 왔기 때문에 문자는 매우 중요한 조형요소로 작용해왔다. 세라믹, 회화, 조각, 타피스트리 등 아랍 예술의 전 장르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이 문자이며, 이러한 전통은 이미 서구화된 매체와 그 표현법을 사용 하는 아랍 출신의 현대미술작가들의 작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출품작가 가운데 한국 작가로는 강요배, 김주연, 백광익, 부지현, 문창배, 이성은, 문기선을 비롯해 이재효 이민호, 이배경, 한기창 등이 있다. 몇 해 전부터 제주의 풍광을 독특한 시각으로 작업해 온 강요배는 제주 바다의 거친 파도를 감동적으로 묘사하여 제주 땅이 갖고 있는 잠재적 힘을 가시화한 작품을 출품하였으며 김주연은 3.8t 분량의 신문을 쌓은 뒤 그 사이에 식물씨앗을 심어 새싹이 나오는 작업을 통해 생명의 신비와 인간과 자연의 만남을 시도했다. 전시작품 중에는 관람객과 상호 소통하는 작품도 있었는데 이배경의 〈Mirror of Mind〉는 관람객의 행동에 따라 화면 속 그림자가 다양하게 반응한다. 제주의 산 영상이 펼쳐진 작은 방에 들어가면 관람객의 실루엣이 제주 바닷물로 채워져 벽에 비친 영상에 나타난다.

빛과 소리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도 다수 출품되었는데, 제주 출신 작가인 부지현은 해질 무렵 고향의 모습을 바다 멀리에서 빛을 발하는 오징어잡이배로 기억하고 전시장 안에 바다에서 빛을 발하는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을 모아 그 위에 푸른빛, 노란빛의 조명을 비추는 밤바다 풍경을 재현했다.

김기철의 소리보기_비는 깜깜한 방 속에서 빗소리를 시각적으로 들려주는 작품이다.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천장에 가늘게 매달린 투명한 낚싯줄 끝에는 작은 스피커들이 매달려 빗소리를 낸다. 작가는 종묘의 빗소리를 채집하여 작품을 구성했으며 청각적 소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한다. 김순임은 전시장 입구에 제주 돌멩이와 솜뭉치 수백 개를 천장에 매달아 제주도 지도 모양을 만들었다.

특별전인 <제주미술의 어제와 오늘>전은 제주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해 미래를 가늠한다는 취지 아래 제주출신이거나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136명의 작품 152점을 선보인다. 1000명 가까운 미술인들이 활동하고 있는 제주도 미술의 지형은 조선시대의 유배자로서의 선비 화가, 식민지 때 일본유학 마치고 귀향한 화가, 해방이후 육지로부터 숨어든 화가, 한국전쟁으로 피난 온 화가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들이 제주미술의 형성에 미친 영향은 한반도 어느 지역보다도 복합적이고 특이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1부 전시는 조선시대 제주에서 유배생활하며 추사체를 완성한 김정희를 비롯해 송영옥과 현중화 등 일제강점기의 제주출신의 서예가나 일본유학 미술가, 이중섭과 홍종명 등 6.25전쟁 당시 제주에서 피란생활을 한 미술가, 김인지와 양창보 등 제주화단의 형성과 전개의 초기에 중심적 역할을 하였던 미술가, 강요배 등 현재 제주에 활동 기반을 두고 내일을 향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되었으며 2부 전시는 현대미술의 흐름 속의 제주미술의 현 위치를 가늠하고 그 미래를 예측해보는 전시로 구성되었다.

섬, 생태, 환경 등을 화두로 삼아 개최하는 문화적 소통과 축제의 장인 세계어린이환경미술제는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대륙의 25개국에서 보내온 450여점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닮은 작가, 장리석은 제주도에 작품 110점을 기증한 것을 계기로 마련된 장리석 기념관이 여는 첫 전시로, 제주해녀와 서민들의 건강한 삶과 해학의 의미를 음미하게 해주는 작품들이 출품되었다.

이처럼 풍성하게 준비된 제주도립미술관의 개관전은 외견상으로 성공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염려스러운 점이 적지 않게 잠복되어 있는 상태에서 개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립미술관 설립에 소요된 비용은 약 180억 원으로서 그 재원은 중앙정부의 ‘국가균형발전특별예산’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데 이 비용은 건립에 관한 비용일 뿐이고 향후의 미술관 운영에 관련된 예산의 윤곽은 아직 나타나 있지 않아서 미술관 운영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미술관 건립에 있어서는 전국에서 최초로 20년 임대 뒤 기부 받는 소위 임대형 민자사업(賃貸形民資事業) 또는 BTL(Build Transfer Lease)이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건립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적정성이 심층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제주도립미술관의 개관은 개관준비 TF 팀의 도움으로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준비 과정에서 제주도 당국이 미술관 운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전문 인력의 참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행정직 공무원들의 견제와 지역 미술인들의 분분한 의견 등의 난맥상은 매우 후진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제주에서 최신 시설 속에서 국제적인 현대미술의 면모를 보여주는 다양한 전시가 열린 제주도립미술관이었지만 정작 미술관 개관 당일에야 기습적으로 공무원 미술관장이 임명되고, 이에 반발하여 개관전 준비팀장이 사퇴하는 잡음을 남기며 출발하고 있는 미술관의 앞날은 적잖이 불안한 상태다.

개관이 된 이후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제주도립미술관에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학예실도 꾸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쯤이면 그 윤곽이 드러났어야 하는 개관전 이후의 후속 전시나 교육 등의 계획도 변변히 세워지지 않은 상태라서 제주미술에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이제 제주도립미술관은 제주시립현대미술관과의 역할 차별화를 비롯한 전문 미술관으로서의 위상에 걸맞은 내부 조직 구성과 운영 방식의 전문화 등 산적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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