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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그 서문ㅣA1신진작가전 / 문을 두드리고 물을 찾는 신진들

김성호

카탈로그 서문


문을 두드리고 물을 찾는 신진들_A1신진작가전

 

김성호(미술평론가)

 


오늘날 미술현장에서 신진 작가들이 두드려야 할 문은 많다. 내면에의 갈등과 싸우면서 미술현장에서 작가로 살 것을 다짐하며 나선 길에서부터 맞닥뜨린 꽉 막힌 여러 문들을 하나둘씩 두드리고 열어젖혀야만 한다. 창작 공간 마련을 위한 경제적 어려움, 그것을 타계하기 위한 가족으로부터의 지원 요청,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와 작업의 병행, 자신만의 작업을 찾기 위한 작업실에서의 번뇌, 그리고 그 고뇌의 결과들을 다른 미술인들과 공유하기 위한 미술현장에서의 전시라는 제도적 행위들은 모두, 신진작가들이 두드려 힘차게 열어야 할 문이다.

 

I. 전시와 후원_A1신진작가전

신진작가들이 거쳐야 할 여러 과정 중에서도 전시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확인받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전시는 기성 작가들과 미술현장에서 동등하게 ‘작가’로서 인정받는 제도적 행위이다. 따라서 여러 유수한 전시에 초대받을 만큼, 인지도를 갖고 있지 못한 신진작가일 경우, 작업실에서의 작업도 중요하지만, 전시라는 필수적 과정이 보다 더 주요해진다. 이러한 그들에게 자신의 작업 세계를 미술현장에 알릴 수 있는 전시의 기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주지하듯이, 전시 경험은 또 다른 전시 참여의 기회로 어렵지 않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타 전시공간으로부터 쉽게 초대를 받지 못하는 신진작가들이 그러한 기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작가로서의 몸만들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작가로서의 성공’ 혹은 ‘성공적인 작가로서의 삶’이라는 물을 찾기 위해서는 그 샘물에 이르는 문들을 찾아 두드리고 열어젖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시를 위한 모든 재원을 신진작가 스스로 매번 감당할 수는 없다. 신진작가를 위한 후원과 전시 지원 프로그램이 절실한 대목이다. 특히 ‘마실 물을 찾아 막힌 문을 두드려 열어젖히려는 열심이 가득한 신진작가들’에게는 전시 지원과 작가 후원은 절대적이다. 지원이 절실한 역량 있는 신진들에게 현재의 ‘조금의 도움’은 ‘미래적 성장’이라는 커다란 동력을 만들어내는 절대적 생명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A1신진작가전》을 기획한 미술재료 전문점인 〈에이원 아트오피스〉(대표 이상동)의 후원은 각별한 면이 없지 않다. 작업을 위한 재료를 판매하여 얻은 수익금의 일부를 예술계로 환원하고자 신진작가들 지원에 아낌없이 나섰기 때문이다. 〈에이원 아트오피스〉는 공모를 거쳐 신진작가를 선정하고 〈에이원 아트오피스 윈도우갤러리〉에 매월 전시를 초대한 후, 연말에 인사동에서 통합적인 ‘선정 작가전’을 개최함으로써 한해의 지원을 ‘자가 점검’한다.


최혜란, relocation_16  116.8 × 80.3 cm  oil on canvas  2014





II. 참여 작가들의 작품 세계

이번 《A1신진작가전》에는 고은별, 김민영, 김영창, 박준석, 박지혜, 서지원, 윤민지, 윤수길, 윤이연, 윤지종, 장종현, 전희수, 최혜란, 총 13인의 신진작가들이 참여한다. 회화 및 평면 장르가 대다수인 이들의 작품의 세계는 몇 가지 범주로 분류됨으로써 이번 신진작가전의 지원 방향성을 일정부분 가늠해볼 수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는 참여 작가들의 범주화와 분류화를 지양하고, 신진의 미래적 변환의 잠재적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개별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단평에 보다 집중하고자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고은별_상상의 내러티브로 잠입하는 비밀의 방: 고은별의 회화에 등장하는 실내 공간은 낯익은 일상의 장소이지만, 그녀가 상상과 동화적 충동으로 써내려간 가상 시나리오를 덧입고 이내 낯선 ‘비밀의 방’으로 탈바꿈한다. 그곳에는 그녀의 ‘의인화의 마법’에 걸린 사물/동물들이 한판의 초현실적 페스티벌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2. 김민영_도시 풍경 속 사회적 인간: 김민영은 달동네, 재래시장, 고가 교차로 등 밀집한 도시 풍경을 파노라마로 펼쳐놓고 사회적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다. 발광 안료로 덧칠된, ‘생생하게 살아있는’ 도시 야경을 통해 그녀는, ‘사람을 전혀 그리지 않으면서도 인간 삶의 흔적이 가득한 반의적 풍경’을 창출한다.


3. 김영창_허무한 좌절로부터 긷는 희망: 김영창은 인체 조각의 파편들을 통해서 고즈넉하고 황량한 풍경 속으로 희망이 스러져가는 인간 존재를 그려낸다. 그럼에도 세기말적 풍경과 절망이 교차하는 그의 회화 또는 회화적 설치는 궁극적으로 희망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다.


4. 박준석_텍스트의 표정: 박준석은 전형적인 옵아트의 형식을 빌려 알파벳 위에 인간의 감정과 표정을 올려놓는다. 관자의 위치와 보기의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겹쳐진 텍스트’는 가독성을 방해하면서 이것/저것 사이의 위태롭지만 흥미로운 인간 존재의 양면성에 대해 질문한다.


5. 박지혜_분출하는 색의 유희와 개인서사: 박지혜는 자신의 주변 일상으로부터 길어 올린 정제되지 않은 사유와 감정의 편린들을 분출하는 색들의 유희 속에 담아낸다. 카툰의 조형언어를 통해 의인화의 내러티브에 포섭된 회화 속 등장인물들 모두는 그녀가 변주하는 미시적 내러티브의 주인공들로 등극한다.


6. 서지원_개념적 풍경: 서지원의 회화에는 풍경의 클로즈업된 단면들이 적막하게 자리한다. 넓은 붓질의 중간 색조 속에서 파편적 풍경 혹은 특별한 사물이 관자의 시각적 몰입을 도모하는 그의 회화는 ‘익숙한 현실을 낯선 풍경 속에 거하게 함으로써’ 비로소 현실을 일깨우는 일종의 ‘시각적 공간학’이자 ‘개념적 풍경화’가 된다.


7. 윤민지_붓으로 그린 시네마토그래피: 윤민지는 공항으로 대별되는 경계와 접점의 공간에서 사회적 인간의 존재를 발견한다. 이동의 과정 속에 놓인 짧은 멈춤의 순간 속에서 인간이 대면하는 불안/편안이라는 이중적인 감정의 상태를 발견하고, 그것을 카메라로 추적하고 회화로 되살리는 그녀의 작업은 일종의 붓으로 그린 시네마토그래피가 된다.


8. 윤수길_스냅 일상의 타자들: 윤수길의 회화는 일상을 포착한 과거를 현재의 시공간에 불러옴으로써 우리의 기억을 재구조화한다. 화가의 기억이 불러온 ‘흔하지만 담담한 사진적 기록’이 참조되고 겹쳐진 스냅 풍경 위에 관객들이라는 불특정 다수의 추억이 또 다시 겹쳐지면서 비로소 작가가 기대한 타자들의 귀환이 가시화되고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9. 윤이연_명주실로 짓는 우주라는 집: 윤이연은 장지 위에 전통 기법으로 채색한 화면에 명주실을 부착하면서 우주라는 집을 짓는다. 부정형의 프랙털 패턴이 확장하는 그것은 신이 창조한 미지의 신비로운 대우주로서의 천체이거나 거미가 짓는 자연 속 소우주의 형상으로 연유되면서 우리에게 혼돈과 질서의 의미를 질문한다.


10. 윤지종_선으로 집적된 미확정의 이미저리: 윤지종은 선 긋기, 혹은 선 그리기를 통해 반복되는 노동의 조형적 변주를 탐구한다. 필연과 우연의 경계 사이를 구획 짓는 선택의 순간들이 무수히 집적되면서 만들어낸 ‘선의 패턴’은 선인장, 바다 속 산호, 구름, 물결, 숲, 산맥 등 불가사의한 자연의 이미지들 혹은 미확정의 심적 이미지인 이미저리(imagery)로 변주한다.


11. 장종현_촉각적 질료의 흔적: 장종현은 인간 전신상이나 얼굴을 뒤덮었던(을) 격동적인 물감 층의 흔적을 더듬어 되살려낸다. 그것은 입체 위에 쏟아져 흘러내리는 물감이라는 촉각적 질료를 때론 질료 자체로, 때론 묘사를 통해, 평면 속에서 다시 시도하는 하나의 실험이다. 가히 우연적 표현의 질서를 더듬는 작업이자 ‘그리기에 대한 그리기’라 할 것이다.


12. 전희수_카툰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드로잉: 전희수는 대중문화의 코드인 만화의 형식을 빌어 자신의 일상을 드로잉하듯이 재구성한다. 의인화된 만화 주인공이나 만화의 형식으로 옷 입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그의 조형적 발화는 ‘카툰 드로잉’이라 할 만한 형식으로 신세대만의 내적 표현 욕구를 빠르게 포착해낸다.


13. 최혜란-투영과 반영으로 재구조화되는 현대인의 욕망: 최혜란은 거리의 쇼윈도나 커피숍과 같은 투명한 유리로 구획된 도시의 공간으로부터 현실을 읽어낸다. 그것은 빛을 통해 ‘안의 투영과 밖의 반영’이 겹쳐지는 만남의 접점으로부터 재구조화되는 자본주의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그녀는 ‘현대 자본주의 속 사회적 인간’의 욕망과 허위를 비판적이면서도 담담하게 재해석한다.



 

III. 특성화된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기대하며

올해 두 번째인 《A1신진작가전》은 현재까지 전시장, 도록, 현수막, 홍보 및 평론 지원 등 소소한 후원으로 겸허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지만, 향후 보다 더 발전된 모습의 후원을 계획하고 있다. 여기에 평자의 의견을 덧붙인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까지 평면이나 회화 장르의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특성이 강해 보이는데, 이것을 공모 단계부터 공표하고 ‘평면 작업으로 특화된 공모 지원’으로 접어드는 것도 특성화 전략상 검토될 필요가 있겠다. 또한 매달 개별 작가의 윈도우 전시에 이어 연말에 통합적인 ‘신진작가전’을 지원하는 만큼, 매년 새로운 주제 하에 작가들의 작품을 공모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신진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보편적 주제 보다는 화두를 생산해낼 수 있는 주제 기획전으로 신진을 지원하는 것도 지원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고 그 대외적인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덧붙여 전문 큐레이터가 이들의 작품을 해석하고 전시로 옮겨내는 과정도 필요할 수 있다. 공모 기간도 상시가 아닌 특정 기간으로 집중화해서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겠다. 물론 이러한 견해들은 평자의 개인적 판단일 따름이다. 


《A1신진작가전》이 후원처 〈에이원 아트오피스〉의 신진작가 지원의 순수한 의지로부터 촉발된 전시라는 점에서, 다른 ‘덧붙이기의 형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게다가 ‘발굴다운 발굴과 지원다운 지원’을 기대하는 미술현장의 바람을 모두 충족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에이원 아트오피스〉의 신진작가 지원이 이미 2회를 맞이한 만큼, 현행의 지원 방향을 재검토하고 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진행해나갈 미래적 청사진을 보다 구체화하는 단계는 필요할 것이다. ‘들어갈 문을 두드리고 마실 물을 찾는’ 신진작가들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그들의 희망으로 도약 중인 〈에이원 아트오피스〉의 《A1신진작가전》에 거는 기대가 남다른 까닭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된 작가들이 향후 한국 미술현장에서 괄목할만한 작업세계를 천착해나가며 중심축으로 성장해나갈 것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


출전 / 

김성호, 「문을 두드리고 물을 찾는 신진들 맞이하기_A1신진작가전」, (A1신진작가전, 2014. 12. 3~2014. 12. 8, 인사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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