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움직이는 기억의 땅
김성호(미술평론가)
기억은 소멸하는 시공간의 흔적을 우리의 마음에 깊이 새긴다. 그것은 우리의 몸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특이점의 순간마다 몸 밖으로 뛰쳐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삶의 저편으로부터 지금, 여기의 삶의 지평으로 육화된 채 이주해 온 망령이자,현실의 지평 아래서 살아 숨 쉬는 잠재적 생명체라 할 것이다.
과거로부터 발원한 기억을 지금, 여기의 현실의 지평 위에 올려놓는 배성미의 작업은 우리의 육신이 정주하는 현재의 공간이라는 것이 사실은 과거의 기억이 이주해온 곳이자, 그것이 살아 숨 쉬는 곳임을 일깨운다. 그녀의 작업은 망각의 껍질을 벗겨 내고, 우리에게 적어도 잊지 말아야 할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때로는 담담하게 되뇌고, 때로는 처연하게 읊조리고, 때로는 단호하게 선언하는 그녀의 기억에 관한 시각적 메시지는 내밀한 자신의 미시적 기억으로부터 사회 공동체의 집단 기억, 나아가 역사의 기억으로까지 횡단한다.
기억의 땅 한 평,
배성미 개인전의 전시명인, 《움직이는 땅 - 나는 3.3m²입니다》는 개인 주체의 기억과 사회적 주체의 집단 기억을 지금, 여기의 시공간에 한꺼번에 불러온다.
전시장의 입구에 첫발을 내딛는 관객이 가장 먼저 대면하는 것은 바닥에 가득 깔린 흙이다. 그것은 도시의 공간에 느닷없이 침투한 낯선 이방인이자, 배성미의 개인전을 관객으로 하여금 첫인상으로 맞닥뜨리게 하는 시각적 메시지이다. 흙이란 이번 전시에서, 그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던, ‘땅’의 메타포를 구현하는 일차적 질료이다.
땅의 이차적 질료는 이번 전시에서 비물질의 이미지로 현현한다. 관객은 바닥으로부터 시선을 들어 올리면서, 천장이 낮은 전시장 가운데 자리한 반투명의 빛나는 물체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두 개의 영상이 투사되고 있는 입방체의 유리 구조물이다.실제의 3.3m²의 크기를 마치 쪽방의 형태로 구현한 유리 구조물의 한쪽에는 태풍이 오기 직전의 제주도 해변의 자연 풍광을 투사하고, 반대편 입구 쪽에는 도시의 재개발 지역의 철거 장면을 투사하고 있다. 관객이 이 구조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번 전시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나는 3.3m²입니다’라는 텍스트가 쓰여 있는 자연석 하나가 구조물의 바닥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는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나’라는 주체가 곧 ‘1평(3.3m²)의 공간’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이 텍스트의 아이러니는 무엇인가? 이 텍스트는 인간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대상화된 1평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개념을 돌이라는 자연물과 상치시킴으로써 결국 인간이 땅을 소유하는 개념으로 등장시킨 1평의 공간이라는 것은 원래 자연의 소유였음을 피력한다. 더불어 나(우리)라는 주체 역시 이 돌과 같은 자연으로부터 도래했던 존재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관객에게 반문한다. 결국 작가의 비판적 메시지는 땅 1평을 소유와 환금성의 척도로 재단하는 오늘날 현실에서 모든 생산물의 근원지라는 땅의 본질적 의미는 망각으로 인해 오염되거나 훼손되고 있다는 진술에 집중된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은 우리에게 되묻는다. 이러한 망각이 원래 타자의 것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음모자의 은폐로부터 타자화된 것인지에 관해서 말이다. 그래서 망각으로부터 길어 올려야 할 이 시대에 요청되는 우리의 공동의 기억이 정녕 무엇인지를 ‘땅 한 평’으로부터 같이 생각해 보자고 말이다.
움직이는 땅 _ 나는 3.3㎡입니다. 1800ⅹ1800ⅹ300mm , Steel 현무암 흙 잔디 우레탄바퀴. 2014
움직이는 땅
인간에게 땅은 움직이지 않는 존재였다. 그래서 땅을 정복하기 위한 지난한 역사가 수다한 전쟁으로 진행되어 왔고 오늘날 자본주의에 이월된 땅은 부동산(不動産)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주인들의 의해 소유권 이전의 역사를 반복해 오고 있다. 인간에게 땅은 움직이지 않았고, 땅을 지배하는 주인들의 움직임만이 있었을 따름이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땅의 본질은 움직임 자체이다. 굳이 대륙 이동설과 같은 거대 이론이 아니더라도, 융기, 침강과 같은 조륙 운동의 결과들로 나타난 산과 바다의 변형은 물론이고, 습곡 산맥과 단층들에서 발견되는 땅의 변형은 우리에게 땅의 본질이 움직임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게다가 우리는 날마다 지진, 해일, 화산과 같은 움직이는 땅의 모습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배성미는 인간에게 부동산으로 고착화된 땅의 이데올로기를 들추어내고 그것의 본질은 움직임과 생성 자체임을 드러내는 퍼포먼스와 설치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예를 들어, 그녀는 제주도 ‘삼달리아트창고’에서의 같은 작품명의 작업에서, 바퀴 달린 한 평의 큐브 땅을 이곳저곳으로 끌고 다니는 퍼포먼스를 통해 오늘날 변형된 땅의 개념과 그것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것의 본질을 되물은 바 있다.
바람에게 바람, 현무암, 동선, 가변 설치, 2014.
이번 전시도 같은 맥락에서 펼쳐진다. 그녀의 전시마다 매번 이동하는 ‘움직이는 땅- 나는 3.3m²입니다’라는 텍스트가 쓰인 작은 돌덩이는 움직이는 땅에 관한 상징이다. 더불어 유리 구조물 양편에 투사되는 두 개의 대립되는 영상 이미지도 이러한 작가의 메시지를 강화시킨다. 한쪽에는 태풍의 전조를 알리는 거센 바람에 몸을 싣고 흔들리는 풀잎들이 서로의 몸을 부딪치는 아픈 소리가 바람 소리와 함께 뒤섞인다.또 한쪽에서는 도시 공간에 이미 구축했던 건물들을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너뜨리는 포크레인의 기계적 굉음과 함께 벽돌과 콘크리이트 등 인공 잔해들의 아픈 소리가 함께 뒤섞인다. 한 평의 땅을 만든 유리 구조물 외벽에 투사하는 대비적 이미지는 분명코, 땅의 본질이 오늘날 소유권 이전으로 등기되는 환금성의 무엇이 아니며,모든 생산물의 근원지인 대자연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담아낸다. 그것은 땅은 움직이지 않되, 소유권만 이전된다는 현대인의 건조한 인식에 울리는 경종과 같은 비판적 메시지를 배태한다.
그녀는 <흔들리고 부딪치는 것들>(2007)이라는 영상 작업에서, 제주도의 바다 위에 자기애, 이기심, 욕망이라는 언어들을 생성시키고 그것이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이내 사라지고 마는 풍광을 선보인 바 있다. 대자연의 품에 인간의 언어들을 내던지고 그것이 끝내 자연의 품 안에서 부질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을 형상화한 이 영상 작업은 자연 앞에서 실행한 자기 성찰적 인 명상을 드러낸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에 대한 경외할 만한 숭고(sublime)의 심정을 담아낸 것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일까? 작가는 바람이라는 자연의 움직이는 본질 앞에 인간의 희구(喜懼)를 투영하는 <바람에게 바람>(2014)이라는 설치 작업을 펼쳐 낸다. 그것은 생명력 가득한 자연에 대한 경외, 공포, 두려움, 명상이 부딪히는 가운데 펼치는 처절한 자기반성이자 여전히 이 세상을 기꺼이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는 작가의 ‘명상 일기’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움직이는 땅 - 나는 3.3m²입니다, 유리 구조물, 영상, 가변 설치, 2015.
자연 유산의 땅 : 대립적 연속으로부터 분절의 내러티브 찾기
인공은 자연을 해체하고 본성을 오염시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현존을 지속시켜 온 최소한의 장치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는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한 평의 서민적 삶의 소중함’을 내팽개치는 야만 앞에 무조건적인 저항의 언어를 독설처럼 내뱉지는 않는다. 그녀는 피식민화된 모든 것들에 연민을 투영하는 동시에, 식민화의 주체에게 용서와 화해의 제스처를 던진다. 즉 자연의 땅 위에 지도를 그리고, 경계의 틀을 세우는 모든 식민화의 주체에게 경계 밖의 것들 역시 원래 경계 안과 한 고향이었음을 끊임없이 일깨우려는 것이다.그것 모두는 땅 혹은 자연의 본성으로부터 근원한 유산(遺産)이었음을 말이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전시에서 ‘한 평의 땅’이라는 자연의 유산을 둘러싸고 이원적 대립의 형식으로 투사되고 있는 대조적 영상 속에서 우리는 둘에 관한 화해, 소통이라는 작가의 제스처를 읽어낼 필요가 있겠다. 보자! 흥미롭게도 유리 구조물 위에 투사되는 뚜렷하게 대비되는 양측의 영상은 서로 닮아 있다. 그것은 이미지의 차원에서 분명코 파괴의 전조를 의미하거나, 해체와 파괴를 실행하는 것임에도 신성한 의식의 전조이거나 경건한 의례처럼 보이기도 한다. 태풍이 예고된 바람에 의해 풀잎이 일렁이는 단순한 이미지를 끊임없이 반복하거나 파괴를 시도하는 포크레인의 단순한 동작을 클로즈업의 슬로우 비디오로 펼쳐 보이고 있는 이미지는 이러한 측면을 더욱 부추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파괴에 대한 공포를 동반하면서도, 인간의 유산에 대한 복구 의지를 되뇌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소리의 차원에서 바람, 파도, 풀이라는 자연의 아우성은 기계, 콘크리트, 벽돌이라는 인공의 아우성과 그다지 다를 바 없이 들리기도 한다. 그것은 파괴와 공포의 전조가 난무하는 소음이지만, 마치 제례 의식처럼 우리의 상처 난 영혼과 마음을 치유하는 주문처럼 들리기도 한다. 소리와 이미지들은 유리 구조물의 외벽의 경계를 일정 부분 공유하거나 외부와 내면의 공간에 침투하면서 서로의 몸을 뒤섞는 공간을 창출하는데, 이것은 마치 둘 사이의 화해와 소통을 갈구하는 작가의 희망을 여실히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그녀의 이번 전시는 모음과 자음으로 분절할 수 없는 연속되는 소음과 이미지 속에서 쉬이 찾을 수 없는 희망의 분절적 내러티브와 소통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번 전시를 찾는 관객이 그녀의 시각적 미술 행위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 낼 수 있다면, 즉 움직이는 땅의 본성과 그것에 관한 기억을 과거로부터 느린 속도로 귀환시킬 수 있다면, 그녀의 전시는 애초의 지향점을 훌륭하게 달성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
출전/
김성호, 「움직이는 기억의 땅」, 카탈로그 서문, (배성미 개인전, 2015, 5. 9-28, 쿤스트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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