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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가론│임무상 / 불가분의 곡선과 자연주의 미학

김성호

불가분의 곡선과 자연주의 미학


김성호(미술평론가)

I. 한국성의 현대한국화와 만남의 미학

임무상은 현대한국화의 영역에서 서구 미학과 차별화되는 한국적 미감을 탐구한다. 〈월송(月松)〉, 〈노거송(老巨松)〉, 〈금강별곡(金剛別曲)〉, 〈황산월색(黃山別曲) 등 작품 제명에서 보이듯이, 임무상은 한국화의 전통적 화제(畫題)를 계승하면서 그 속에 내재한 동양의 고유한 미감 더 나아가 한국의 독자적 미감을 찾고자 한다.  
한국성(Koreanity)은 이것에 관한 하나의 화두이다. 한국성은 과거로부터의 ‘전통성(tradition)'과 더불어 현재의 '정체성(identity)'을 함께 아우르며 현대적 변형(變形)과 변용(變容)을 용인하는 개념이다. 즉 뿌리는 그대로이나 가지들이 변화하는 추상적 생명체라 할 수 있겠다. 한국성에 근간한 한국적 미감이란 그런 면에서 김원룡(金元龍)의 ‘자연주의’ 그리고 고유섭(高裕燮)의 ‘비정형성, 비균제성, 무기교의 기교’와 같은 것들과 만난다. 이 모든 것들은 관계와 만남의 미학일진대, 만남의 주체들이 반대편에서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닌 느슨하게 연계하고 비스듬히 겹쳐 맞물려 있는 성향을 드러낸다. 
바로 임무상이 언급하고 있는 ‘린(隣)’과 같은 세계인 것이다. “이웃, 보필(輔弼), 근접한”과 같은 의미들을 함유한 임무성의 ‘린’의 세계에는 이러한 조화로운 관계와 만남의 미학이 작동한다. 그는 특히 자신의 작업이 한국성의 모색에 있음을 명확히 한다: “린(隣)은 공동체 정신과 한국적 곡선 미학이 접목된 새로운 형상화 작업을 시도한 한국성(Koreanity) 창출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현대한국화의 장에서 ‘전통의 계승’과 그것의 ‘현대적 변용’을 꾀하는 한국성을 실천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종이, 붓, 먹이라는 한국화 고유의 매체적 한계를 저버리지 않고 끌어안으면서 오늘날의 변용 가능한 한국성을 성찰하고 실천해야만 하는 까닭이다. 임무상은 자신의 회화에서 한국성 또는 한국적 미감에 관한 사유와 회화적 성찰을 일련의 ‘관계와 만남의 미학’으로부터 출발시킨다.      




II. 자연주의적 조화
임무상의 회화에서 드러나는 이와 같은 ‘관계와 만남’이란 대개 ‘자연주의적 조화’라 지칭할 만한 것들이다. 그의 회화에서 자연주의적 조화(調和)란 한 개체와 또 다른 개체 혹은 군집체가 서로 만나서 이루는 관계 지형이 자연의 순리적 질서 속에서 형성되는 안정적인 분위기를 가리킨다. 즉 자연의 순환성과 생태적 유기성의 체계가 서로 잘 어울리고 있는 현상을 가리킨다.
임무상의 작품을 보라! 소나무라는 개체는 더러는 ‘집’ 때로는 ‘산’ 그리고 ‘달’과 만난다. 자연의 한 개체가 또 다른 개체 혹은 군집체를 만나는 이러한 조화는 소우주와 대우주가 만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 면에서 그의 그림에서 소나무 뒤편에 자리한 작은 한옥은 소우주이고 자연은 대우주라 설명해도 무방하겠다. 마치 한자어 우주(宇宙)가 결국 ‘집의 연장’인 것처럼 말이다. 
달, 산 그리고 집, 이 모든 것이 함께 만나는 한 작품에 붙여진 제명 〈Korean nocturne(夜想曲)〉 즉 ‘한국야상곡은 그의 작품이 모색하는 ‘자연주의적 조화’라는 한국적 미감을 효율적으로 잘 설명해 준다. ‘한 밤의 정취를 담은 부드럽고 서정적 선율의 하모니를 담은 피아노곡’을 야상곡이라 지칭하듯이 그의 ‘한국야상곡’은 이와 같은 부드럽고도 자연주의적인 조화가 잘 드러나 있다.  
그렇다. 임무상의 작품이 드러내는 ‘자연주의적 조화’란 만남의 의미를 극대화시킨 결과이다.  그것은 마치 만남의 주체들을 서로 대립시키지 않는 상태에서 이웃시키거나 아예 하나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따라서 ‘자연주의적 조화’는 일원론적 사유에 근거한다. ‘자연주의’에서 자연의 본성은 서구철학에서 인간이 분리된 ‘이원론’적인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생산성 속에 살아 있음의 역동성이 배가되는 일원론적 입장의 자연이다. 여기서, 인간은 자연을 분석대상으로 보는 서구의 관점을 떠나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보는 관점을 지향한다. 따라서, 자연과 인간은 한 몸이며, 한국의 자연관은 인내천(人乃天)을 반영하는 자연, 인간, 신의 삼자일합(三者一合)적 일원론이다. ‘하나’와 ‘또 다른 하나’가 ‘하나의 정체성’으로 만나는 곳에 일원론의 세계가 있다. 마치 임무상의 작품들이 드러내는 린(隣, Rhin)의 세계관처럼 말이다: “‘린’은 원융(圓融)한 것이어서 하나가 모두요, 모두가 하나 됨을 뜻하며 공동체 문화의 근본이라 하겠다.” 


황산월색(黃山別曲), 96x57.5cm,Korean paper,chinese ink,mixed natural coloration, 2014
 

III. 불가분의 곡선과 오방색의 미학
‘일원론에 근간한 선(線)’은 공간을 꿰는 시간과 같은 존재이다. ‘일원론적 선’은 공간 속에서 언제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지속적으로 자리 이동시키면서 시간을 시각화하지만 정작 그것의 본질은 나뉠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의 삶에는 공간과 시간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베르그송이 파악하고 있는 지속(duree)이라는 삶의 시간(Vie du temps)과 같다. ‘삶의 시간’의 본질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범주화와 나눔의 순간들을 지속적으로(너무나 자주, 끊이지 않고) 변화시키는 시간 운동(mouvement temporel)이다. 
임무상이 그의 회화에서 천착하는 곡선은 이러한 불가분(不可分)의 시간 운동을 지향한다. 그가 자연에서 발견하는 선에는 직선이 없다. 그가 자연으로부터 자신의 화화에 가져온 선들은 따라서 곡선들이다. 그의 회화에서 하늘이 땅을 만나는 접지(接地)의 장은 구불구불한 곡선이며,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는 달님 아래 붉은 몸의 소나무들이 만드는 외형 역시 유기체의 외면을 닮아 있는 곡선이다. 금강산의 외벽을 표현한 준법(峻法)은 구불한 선들로 만들어져 그것 자체가 차라리 한 폭의 ‘곡선 부벽(付壁)’이 된다. 
오방색을 중심으로 한 보색 대비도 그의 회화의 한 특징이다.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5가지 색을 지칭하는 오방색은 서구의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에 부가하는 흑백의 깊이의 측면만큼이나 동양의 심오한 음양오행의 사상적 체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강렬한 보색이 일렁이고 비균질적이고 비정형화된 구불거리는 둥글둥글한 선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그의 작업에서 우리는 ‘불가분의 곡선 미학’을 읽어 낼 수 있다. 그의 작업이 다루는 화제들이 늘 ‘삶의 시간성이 한데 녹아있는 공간성’을 탐구하기 때문이다. 


월송(月松)-70x123cm,Korean paper,chinese ink,mixed natural coloration,2013

외금강전도(外金剛全圖), 110x168cm,cotton,chinese ink,mixed natural coloration,2008

신미년팔월백두산(辛未年八月白頭山,), 430x151cm,Korean paper,chinese ink,mixed natural coloration, 2011

한편, 그의 곡선미는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복잡다기한 선묘들을 버리고 그저 최소한의 선들을 남기는 간결함과 단순함이 그의 회화의 비균질적이고도 자연스러운 곡선들 속에서 돋보인다. 목판화에서 보는 굵은 선묘들이 간결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동양의 자연주의관에서 드러나는 넉넉함과 유연함은 임무상의 회화가 지향하는 곡선의 미학이다. 
결론적으로 그의 현대한국화는 간결하고도 단순한 유기적인 곡선을 통해 자연주의 미학을 드러내고 오방색에 기초한 강렬한 보색 대비의 화면을 추구함으로써 전통의 계승과 재해석을 훌륭히 성취한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관건이 있다면, 앞으로 그가 자신의 전통적 화제를 어떻게 보다 더 효율적으로 동시대적 담론으로 변화시켜 갈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것이리라.● 

출전/
김성호, 「불가분의 곡선과 자연주의 미학」, (임무상 작가론), 『미술과비평』, vol 4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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