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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스토리텔러(sroryteller)전_1.2부/ 막강 신진들의 스토리텔링과 미시 서사의 힘

김성호

막강 신진들의 스토리텔링과 미시 서사의 힘 

김성호(미술평론가)



I. 전시 개요
이 전시는 갤러리 세인이 2015년부터 새해를 여는 첫 전시로 마련한 연례 기획전이다. 전시는 10년 이상 작업에 매진해 온 역량 있는 1-2인의 작가들과 더불어 미술 현장에서 최근 활동을 시작한 3-4인의 신진 작가들로 구성된다. 
2015년에는 《스토리텔러(sroryteller)-이미지로 말하다》라는 주제로 신창용, 이시우, 이채원, 한지민 4인의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되었다면, 2016년에는 《스토리텔러(sroryteller)-컨셉으로 말하다》라는 주제 아래 총 6인의 작가들의 작품이 2부로 나뉘어 소개되었다. 1부의 김진우(조각), 김쥬쥬(도자), 이규원(회화), 2부의 박세준(회화), 염지현(회화), 최방실(회화)이 그들이다. 
작가들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우리가 편의상 괄호 안에 대표적 장르를 표기했지만, 실제로 이들 작가들의 작업이 표기한 장르에 귀속되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김진우는 키네틱아트로, 김쥬쥬는 조각적 설치로 표기하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겠고, 이규원, 박세준, 염지현은 평면, 회화로 정의해도 무방해 보인다. 그리고 최방실은 설치 또는 단순히 회화로 정의될 수도 있겠다. 특히 신진들이 다수인 이번 전시에서 장르적 구분은 별반 주요하지 않다. 장르와 형식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젊은 작가 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신진들의 전시이기 때문이다.    


II. 스토리텔러, 스토리텔링
주목하는 바가 있다면, 작년의 후편 격으로 보이는 이 전시의 명제 《스토리텔러(sroryteller)-컨셉으로 말하다》에 관한 것이다. 작년과 동일한 메인 주제인 ‘스토리텔러’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스토리텔러(storyteller)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행위 과정과 결과를 이끄는 주체(subject)이다. 이것은 비언어 이미지(nonverbal-image)를 창작하는 이(image creator) 혹은 시각예술가(visual artist)를 일련의 언어적 메시지(verbal message)를 생산하는 사람으로 보는 견해와 맞닿는다. 그런 면에서 작년의 서브 주제인 ‘이미지로 말하다’로부터 올해의 서브 주제인 ‘컨셉으로 말하다’로 이동해 온 일련의 흐름은 ‘스토리텔러’라는 거시적 주제를 단순하면서도 매우 효율적으로 설명하는 장치가 된다. 


미술 작품을 이미지로 혹은 컨셉으로 재정의하는 일련의 서브 주제를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기획전의 목적과 목표는 명징하다. 각 작품의 주체인 미술가들이 자신만의 조형 형식과 내용을 갖추고 관객에게 자신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들려주어야만 한다는 일련의 당위성과 더불어 그 지향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시의 목적, 목표는 갤러리 세인의 다음과 같은 기획 취지문에 잘 드러나 있다. 

“아티스트가 작품을 창작할 때 직·간접적 경험과 상상을 바탕으로 조형화합니다. 즉, 작가의 직접적인 경험을 중요시하는 가시적인 세계를 재현하거나 이미 경험한 세계를 기억으로 풀어내는 방식과 경험하지 않는 상상의 세계를 구현합니다. 더불어 특정 철학이나 삶의 방식에 따라 컨셉이 중요시되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본 전시는 형상이 있는 작품 위주로 작가의 서사적 내레이션이 풍부하게 가미된 작품이 중심입니다.
스토리텔러가 된 작가들은 시각으로 먼저 말을 건넵니다. 관람객은 작가가 말하는 이미지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들여다보며 작가의 예술 세계를 접근하는 계기가 되며, 공감과 의문은 감상의 기초가 됩니다. 감상의 깊이는 작품을 대면했을 때 1차적으로 반응할 것입니다. 그 이상의 반응은 관람객의 몫입니다.”

위의 취지문은, 관객은 스토리텔러로서의 미술가에 대한 이해를 넘어 그들이 생산한 미술품이 건네는 스토리텔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즉 감상이란 이미지가 말을 건네는 시각적 결과물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공감 혹은 의문에 관심을 표하면서 ‘그 이상의 반응’조차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스토리텔링의 커뮤니케이션 ‘주체’는 화자(teller)뿐만이 아니라, 청자(listener)이기도 하다. 이들 사이에서 이야기(story) 또는 서사(narrative)는 의미(meaning)의 메시지를 함유하면서 오간다. 그것은 화자로부터 이미 ‘말해진 것’ 이상을 넘어서 ‘말해지지 않은 것’을 청자가 건져 올리면서 성취되는 것이다. 우리의 논의대로 말하면 감상자란 미술가가 창작하지 않은 메시지를 건져 올리면서 스토리텔링에 참여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스토리텔링의 온전한 주체는, 일방향적 의사소통의 체계에서 ‘발신자’와 대립하면서 수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된 ‘수신자(receiver)’ 대신 피스크(Fiske)의 기호학파 커뮤니케이션 모델에서 능동적인 개념으로 제시된 ‘독자(reader)’ 개념에 보다 더 가깝다고 할 것이다.  
이처럼 독자로부터 끊임없이 이야기가 생산되는 스토리텔링이란 그런 차원에서 ‘종결된(told) 이야기’가 결코 아니며 변화와 새로움으로 ‘진행되는(telling)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서 아니 생산자와 독자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결과물인 것이다. 


III. 미시적 서사들 1 : 변하는 인간 주체
갤러리 세인이 올해 여섯 작가를 통해서 선보이는 스토리텔링은 모두 어떠한 메시지들로 구성되고 있는 것일까? 이들의 개별 서사 혹은 미시적 서사가 어떠한 것인지 또한 이들이 한데 모여 어떻게 전체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전시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스토리텔링이 구성된 것인 만큼, 섹션별 구성에 따른 주제별 변별성이나 효율적인 전시 공간 연출을 분명코 고려했을 것이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우선 1부 출품작들은 대개 키네틱아트, 조각, 도자 조각, 회화 등 장르적 변별성이 뚜렷한 반면, 2부 출품작들은 거의 회화 혹은 평면 장르에 속하는 것들이다. 물론 이러한 재료와 장르의 변별성이 스토리텔링의 변주에 영향을 미치는 직접적인 이유는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 주제 의식과 작품의 내용이 스토리텔링과 관계한다고 하겠다. 그런 면에서 1부에 참여했던 출품작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업들’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겠다. 반면에 2부 참여 작품들은 상상이든 추상이든 혹은 형상이든 그 재현과 탈재현의 진폭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르지만 ‘일련의 풍경을 탐구하는 작업들’이라고 묶어서 고찰해 볼 수 있겠다. 1부는 인간상을, 2부는 풍경을 주로 다루지만, 1, 2부 동일하게 일련의 ‘변화와 변주’라는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김진우_호모 메카니컬이라는 신인류 
김진우의 출품작은 로봇이다. 인간의 움직임을 흉내 내며 인간을 닮고자 했던 유사 인간으로서의 ‘자동기계(automaton)’ 혹은 ‘자동인형기계’로부터 인간의 불구를 치료하는 의치, 의족, 의안 등 보철(prosthetics)과 같은 인간의 부속물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기계 인간은 이제 옛말이다. 오늘날 기계는 인공 지능과 유기체적 인간이라는 일명 ‘젖은 인공 생명(Wet Artificial Life)’의 세계를 꿈꾼다. 그런 면에서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를 대체하는 호모 메카니컬(Homo mechanical)이 등장했다는 상상마저 가능할 정도이다. 
김진우는 자신의 기계 로봇과 동물, 식물 등 생명체와 접목하여 도달하는 진화를 상상한다. 그의 작품에는 인간이 하늘을 나는 기계를 흉내 내기도 하지만, 기계가 책도 읽고 배변도 하면서 인간을 흉내 내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동물의 이종 교배체 그리고 존재 불가능한 동물/식물의 융합적 생명체는 그에게서 ‘신인류’라는 이름으로 실험되면서 생명 진화를 거듭한다.

김쥬쥬_비너스와 바비인형이라는 미적 대상과 미적 주체   
김쥬쥬의 작품에서 ‘미(美)’란 너무 많아서 초미(超美)적이 되었거나 그 과도함으로 인하여 미가 외려 쓰레기가 될 지경이다. 오늘날 사회에서의 ‘미’란 이전에 미의 아이콘이라 불리던 ‘비너스’의 기준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이 미의 다양한 조건들과 기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상대화, 주관화되어 있는 미적 가치 인식과 판단에 있어서 이제는 오랜 세월 소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바비인형’의 획일화된 이미지도 여러 체형과 인종 등으로 다원화되기에 이르렀다. 이제 더러움이라 치부되던 추(醜) 역시 ‘미’가 된지 오래이며 그로테스크, 카니발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된 비주류 혹은 일명 B급 정서가 우리의 삶의 중심으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김쥬쥬는 이러한 다원화된 미의 가능성을 도자 조각으로 만들어진 인형을 통해서 탐구한다.  그녀는 감정이입한 자신의 인형 조각을 통해 변신을 거듭하는 오늘날 현대인의 미적 욕망을 소녀적 감수성으로 잔잔하게 다루고 있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담고 있기도 하다. 비현실적인 미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삐뚤어진 병적 증후군으로 파악하면서 오늘날 혼돈에 빠져 있는 가치 판단에 대해서 문제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규원_혼성의 메이드 인 코리아  
이규원의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캐릭터 〈신세기 에반게리온(Neon Genesis Evangelion)〉의 ‘아야나미 레이(綾波レイ)’를 새로운 변종으로 만들어 재현한다. 캐릭터는 분명 일본의 산물이지만, 그 배경은 중국 상하이의 와이탄(外滩)의 풍경이다. 세계의 다양한 건축 양식들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와이탄의 풍경은 그 자체로 혼성의 도가니이다. 그것은 더 이상 중국이 아니고 유럽이나 북미의 어느 가상 도시처럼 보인다. 여기에 덧붙여 미국의 50개 주를 상징하는 별 50개가 어지러이 배경 속에 뒤섞여 기존의 혼성의 아시아 풍경을 보다 더 극대화한다.  
그런데 그의 작품 제명은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이다. 한국은 없고 오직 일본, 중국, 미국만 있는 이미지들은 실제 오늘날 한국의 풍경과 다를 바 없다. 근대화에 이르는 과정까지 한국은 미국을 비롯한 수다한 서방 열강과 일본, 중국으로부터 문화식민의 피지배자였다. 이러한 피식민의 아픈 경험은 전통적인 한국의 정체성을 기억 속으로부터 내몰고 피부 위에 혼성의 정체성을 새긴다. 한국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가 이규원이 “도대체 진정한 한국의 것은 무엇일까?”라고 반문할 만하다. 그의 가족 모두가 한국이 아닌 일본, 중국, 미국, 영국 등 각기 다른 나라에 살고 있던 2011년 당시의 독특한 경험이 그로 하여금 이러한 질문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당시 그의 가족의 모습은 유목주의(Nomadism)을 수시로 실천하는 오늘날 한국의 모습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 이처럼 이규원의 작품은 애니메이션, 만화, 팝아트 등의 정서를 회화로 실천하면서 오늘날 혼성화된 모든 것들의 본원성을 찾아가는 다양한 작업들로 전개되어 간다고 하겠다. 



IV. 미시적 서사들2: 변주되는 풍경의 맥락
앞서 언급했듯이, 1부의 다양한 장르의 출품작들과 달리, 2부 출품작들은 대개 회화 혹은 평면 작업들이다. 또한 인간 정체성을 탐구하는 1부와 대비되게 2부의 출품작들은 ‘풍경 혹은 풍경적 맥락을 탐구하는 작업들’이라 하겠다. 1, 2부 동일하게 탐구하는 ‘변화와 변주’라는 주제 속에서 전시의 주제인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 것일까? 





박세준_혼성의 미디어 풍경과 시뮬라크르  
박세준의 작품은 멀티 시점의 풍경들이다. 피카소의 입체주의와 들로네의 오르피즘으로부터 계승한 파편적 시점들이 동시성과 종합된 혼성의 이미지들이다. 풍경의 맥락과 이탈한 채 등장하는 익명의 인물들은 물론이며 모호하고 낯선 풍경들이 만드는 혼성 이미지들은 우리의 시선을 평화롭게 놔두지 않는다. 모호하고, 불안하며 낯선 풍경들은 작품 제목 〈위태로운 대화 패턴〉처럼 불안하고 위태롭기 그지없다. 이 풍경들은 다중의 불안함과 위태로움 자체를 패턴으로 삼는 오늘날 정보 커뮤니케이션의 비선형적 이미지들이다. 즉 특정 형식을 패턴으로 지니진 않지만, 복잡다기한 모호함, 은폐의 암울함, 비균형의 위태로움 자체를 패턴으로 용인하고 수용하는 혼돈의 ‘혼성 이미지’들이다. 
박세준은 현대 정보 사회의 이러한 이미지의 생산/소비의 멀티화 경향으로부터 불안함, 암울함, 위태로움, 비정상의 병적 징후들을 읽는다. 특히 CCTV, 위성, 드론 등이 포착하는 감시의 이미지들은 더욱 그러하다. 낯설고 기묘한 느낌을 넘어 현대인의 불안하고 심각한 병적 징후마저 우리에게 알려 준다. 아울러 박세준은 이러한 이미지들의 포화 상태가 만들어 내는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거짓의 이미지’인 시뮬라크르를 고발한다. 그는 시뮬라크르로 넘쳐 나는  “미디어 경험 속에서 느끼는 되는 불안과 혼란으로부터 회화를 일종의 지지대로 삼으려는” 전략을 수립한다. 즉 가장 내밀한 회화적 언어를 통해서 미디어의 시뮬라크르적 오염을 치유하려고 시도하는 자기 의식적인 위치를 끊임없이 재확인하려는 것이다.  

염지현_지금, 여기에 소환되는 버려진 관심과 과거의 풍경  
염지현은 특정 시대에 빛을 발했던 특정 장소와 건물들을 그린다. 물리적 장소가 지녔던 화려했던 과거의 기억을 지금, 여기에 소환해서 그 의미를 되묻는 것이다. 그러한 예들은 사직단(社稷壇)이 있는 사직공원, 옥인아파트, 양재천, 성산플라타너스와 같은 것들로 나타난다.  
보라! 조선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한 뒤 마련했던 사직단은 당시에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성지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그 격을 낮추기 위해 공원화되면서 훼손되었고, 세월이 흘러 오늘날 사직공원이란 이름으로 변질된 채 남겨졌다. 어린이 놀이터, 도서관, 수영장 시설, 휴게소 등 공공시설이 함께 자리할 뿐만 아니라, 단군 성전과 신사임당(申師任堂)과 이이(李珥) 모자의 동상이 뒤섞여 있는 이곳은 이전의 성지로서의 위상은 더 이상 갖고 있질 못하다. 염지현은 오늘날 사직공원의 모습을 두상이 잘려 나간 동상과 그 주위의 낯설고 을씨년스러운 풍광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이전의 시대에 신성한 땅으로 간주되었던 사직단에 관한 한국인의 ‘과거 집단 기억’을 지금, 여기에 매우 의미심장하게 소환한다. 
한편, 인왕산 수성동 계곡의 원형 복원을 위해 철거에 들어갔던 옥인동 시범아파트의 일부분만을 오늘에 잔존시킨 까닭은 개발로 점철되었던 근대사의 오류에 대한 ‘지금, 여기’의 처절한 반성적 의미에서였다. 양재천은 또 어떠한가? 잠실지구 개발 논리에 따라 탄천의 지류가 되면서 물길이 바뀐 양재천은 오늘날 다시 생태계의 복원이라는 과제를 실천하고 있다. 또한 성산동의 나무 한 그루는 또 어떠한가? 그것은 이제 ‘버려진 관심들’이다. 염지현은 이러한 ‘버려진 관심들’을 그리고 영광의 시대를 기억하는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음으로써 처절하게 변모, 훼손된 ‘지금, 여기’에 대한 통렬한 집단 반성에 기꺼이 동참한다.  

최방실_대립적 만남에 대한 실험과 유희하는 회화의 풍경  
최방실은 정사각형 모듈로 구성되는 격자 구조의 나무 패널 위에 재생지, 시트지, 아크릴, 거울 등의 납작한 매체로 표면을 덮고 그 위에 먹, 물감, 미디엄 등의 흔적을 층층이 남긴다. 그 흔적들은 물질 집적의 층위를 형성하기보다 질료들의 산포 혹은 확산으로 인한 표면 위 엷은 도포의 수준일 따름이지만, 때로는 일필휘지(一筆揮之)로 휘몰아치는 서예처럼, 때로는 몰골법(沒骨法)으로 그리는 크로키처럼 유연하면서도 분방하고 역동적이다. 
선을 긋든, 물감을 뿌리든, 형상을 덧입히든, 그녀의 회화에는 가장 원초적인 회화 행위가 꿈틀댄다. 유희와 제의라는 회화의 오랜 두 가지 기원의 양상이 그의 회화의 표면을 지나고 배면을 침투하는 것이다. 물론 그의 작품에서는 작품 제명 ‘회화 유희’처럼 놀이와 유희의 차원이 보다 더 극명하게 간파된다. 그것도 수묵의 표현주의적 행위와 수학적 비례의 사각 모듈이 그리고 먹의 표면의 도포와 배면의 침투가 대비되는 곳에서 유희는 살아 꿈틀댄다. 보라! 관객들은 모듈의 통제된 규범과 이성 그리고 수묵화의 우연의 개입과 감성이 한바탕 놀이처럼 만나고 헤어지길 거듭하는 최방실의 작품이 만드는 ‘유희의 바다’ 속을 천천히 유영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IV. 미시적 서사들의 힘
갤러리 세인이 2015년부터 새해를 여는 첫 전시로 마련한 기획전은 지금까지 《스토리텔러(sroryteller)》라는 메인 주제로 이어져 왔다. 이것이 ‘이미지로 말하다’, ‘컨셉으로 말하다’ 등의 다양한 서브 주제를 만나 올해까지 진행되어 왔는데 앞으로도 이 메인 주제로 전시가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서브 주제들을 만나 느린 진폭으로 이 메인 주제를 매해 진행해 가거나 아니면 반대로 오늘날 문화 트렌드를 읽는 또 다른 재기발랄한 메인 주제로 옷을 바꿔 입고 나타날 수도 있겠다. 
관건은 지금까지 선보인 이 전시가 비언어인 시각예술을 언어의 체계로 번안, 해설, 해석하여, 일반 관객들로 하여금, 미술 작품에 대한 소통을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으로 수용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즉 이미지 안에 내포한 스토리텔링에 주목하거나 그것의 컨셉의 주요성을 강조하면서 2년 동안 시각예술의 이미지/텍스트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주제를 이어온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주제 아래 참여 작가들을 역량 있는 중견을 소수 포함하면서도 대개 신진들을 초대해서 그들의 신작들 위주로 소개함으로써, 주류의 세계에 아직 이르지 못한(않은) 신진들의 ‘미시적 서사들(micro narrative)’에 집중했다는 점은 우리의 논의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스토리텔링’이라는 서사의 창의적 생산을 신진들의 비주류 내러티브, 미시적 내러티브에 집중함으로써 주류와 거시적 담론에 쐐기를 박고 자유로운 이야기 생산에 보다 주목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시적 내러티브에는 주류의 세계가 간과한 여러 부산물들로부터 가능성을 꿈꾼다. 예를 들어 그것은 내러티브의 완성된 본문 대신 그것을 대체하는 프로토콜(protocole), 즉 초안과 같은 것이거나 본문의 언저리로 밀려난 각주의 인용문과 같은 부산물들에서 창의적 상상력을 실험한다. 일련의 트렌드를 따르는 주류의 흐름을 추종하기보다 트렌드, 주류, 원전, 본문들이 간과한 비주류, 부산물과 같은 미시적 서사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갤러리 세인의 이러한 기획은 아직은 실험적 단계이지만, 훗날 다음과 같은 지향점에 성큼 다가설 것으로 기대한다: 미시적 서사들과 버려진 것들에 대한 ‘재전유(re-appropriation)’를 거친 스토리텔링의 정신을 지속적으로 재정의하고 실험함으로써 주류의 관성과 습성으로부터 탈주하기..... 그것도 아주 신선한 모습으로 말이다. 갤러리 세인이 이 기획전과 맞물려 다양한 스페셜 프로그램들을 함께 운영해 온 까닭을 이해할 만하다. ●


출전/

김성호,「막강 신진들의 스토리텔링과 미시 서사의 힘, (스토리텔러(sroryteller)-컨셉으로 말하다 전, 1: 김진우(조각), 김쥬쥬(도자), 이규원(회화), 2: 박세준(회화), 염지현(회화), 최방실(회화), 1, 2016, 1. 25-2. 5 & 2, 2. 16-26 갤러리 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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