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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서문│최영근 전 / 심해로부터 건져 올리는 망각의 유산과 생명 존재의 메타포

김성호


심해로부터 건져 올리는 망각의 유산과 생명 존재의 메타포
 
김성호(미술평론가)


최영근의 회화는 깊은 바다, 심해(深海)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실제적 공간에 대한 재현이기보다 하나의 메타포로 작동한다. 조화(調和)와 상생(相生)의 장으로서, 인간 사회에 대한 은유로서, 망각된 역사를 소환하는 인간 주체의 터전으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곳은 때로는 신화적이기도 하지만 의인화(擬人化)된 생명체들이 저마다 동화적인 따뜻한 내러티브를 지니고 관객을 맞이하는 다분히 상상력 가득한 공간인 것이다.  


I.  '심해'의 메타포
최영근이 2014년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은 모두 ‘심해’라는 같은 제목에 일련번호를 달고 있다. 심해대(abyssal zone)는 수심이 대략 2~6km에 이른다. 이곳은 빛이 도달하지 못해 암흑에 가까울 뿐 아니라, 수온이 0∼4℃ 정도로 매우 차고 수압이 대단히 높아 식물은 전혀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심해 생물 외에는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다. 
이 공간은 실제로 인간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공간이다. 심해의 영어 ‘어비슬 시(abyssal sea)’가 그리스어 어원으로 ‘바닥이 없는 바다(abyss)’라는 말에서 유래했듯이, 그것은 옛사람들에게, 빠지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그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디깊은 암흑과 공포의 공간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어떤 면에서 심해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심해는 우리가 직접 체험하지 않았으나 수많은 다큐멘터리와 다양한 미디어의 이미지들을 통해서 신비로운 세계로 간접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미지의 간접 체험으로 인해 우리의 시각에 친숙해진 공간이라 할 것이다.  
최영근의 이번 전시는 이러한 공간을 ‘바다의 이야기’, 즉 ‘바닷속 이야기’로 가득 채우고 그곳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몸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눈이 기억하는 공간, 그리고 실제로는 공포와 두려움의 공간이지만, 미디어 이미지가 각인시킨 친숙화(親熟化)의 공간 속에 그가 자신만의 상상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어둠의 공간을 환하게 밝히고, 차디 찬 바닷물을 따뜻하게 덥히고, 바닷속 생물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유영하게 만든다. 생각해 보라! 바닷속의 먹고 먹히는 양육강식의 냉엄한 먹이사슬은 심해를 인간의 경쟁 사회가 다를 바 없는 공포의 공간으로 몰고 간다. 이 냉혹한 현장을 화가 최영근은 낙원(樂園, Paradise)의 공간으로 치환시켜 바라보고자 한다. ‘적(適)’의 존재로서의 개체들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바닷속 생명체들을 하나하나 마음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보라! 밝고 선명한 빛깔을 지닌 열대어들과,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돌고래들이 어울려 군무를 즐긴다. 거기에는 심해에 거주하는 편평하게 생긴 가오리 같은 편평형 어류는 물론이고 얕은 바다에 사는 측편형 어류, 복어와 같은 구형 어류도 한데 어울려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가 그리는 심해에는 문어와 거북이 그리고 심지어 발가벗은 예쁜 ‘어린 아이’와 ‘어린 소년’마저 함께 놀이하듯이 잠수하고 있다. 조화와 상생의 바닷속 삶의 주체들은 그에게 모두 생명 존재의 메타포가 되는 셈이다. 
그의 회화에 나타난 심해는 바다에 대한 상상의 공간이다. 그가 그리는 심해는 ‘수심 2km 이상의 물리적 거리로 환산된’ 심해가 아니다. 바다 밑에 존재하는 산인 해산, 계곡인 해구, 편평하게 펼쳐진 심해평원(abyssal plain)이, 대륙붕, 대륙사면, 해령이 분명히 드러나는 그러한 지도가 아니다. 따라서 그가 그리는 심해의 풍경은 실재(fact)가 아닌 허구(fiction)이며 검증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최영근의 상상으로 그려내는 ‘바닷속 낙원’의 공간이라 할 것이다. 그가 그리는 심해는 오늘날 인간이 살고 있는 삶과 사회를 반추시키고 은유하지만 그것의 진정한 메타포는 그러한 사회로부터 우리를 탈주시켜 시원(始原)의 낙원으로 이끌고자 하는 화가 최영근이 예술의 언어로 펼쳐내고 있는 상상의 공간이다.    


최영근, 바다이야기_유물 



II.  망각의 유산으로부터 소환되는 '바다 이야기'
깊은 바닷속으로 햇볕을 투영하고 밝고 화려한 물고기들을 재현의 언어로 생동감 있게 되살려 낸 그의 구상의 스킬은 감칠맛이 난다. 더러 상상의 세계를 둔화시킬 수 있는 이러한 세밀한 묘사와 대비되게 그는 물 속 풍경을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변화를 주면서 우리를 상상의 세계로 견인한다. 유화로 이러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 그는 테레빈과 린시드의 효율적인 배합과 더불어 다양한 용매제의 실험을 검토한다. 편평한 넓은 붓질을 배경으로 한 채, 흘러내리는 물감들은 작가의 가필(加筆)로 인해 바닷속 신비로운 암초와 산호가 되었다. 물감과 마티에르의 변주를 통해 관람자들의 상상을 이끌어내고 그들만의 상상의 이야기를 직조하게끔 최영근은 바닷속 생명들과 사물들을 다양하게 배치한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바닥에 자리한 접시, 그릇, 화병과 같은 도자기와 정체를 명확히 알 수 없는 고대 장식물과 같은 유물들이다. 그것은 오랜 시절 육상의 세계에 존재했던 고대의 유물들이거나 나룻배와 같은 근대적 유물들이다. 풍랑과 해상 사고를 만나 침몰한 배들로부터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인간 유산’인 것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유산(遺産, Heritage)’은 “죽은 사람이 남겨 놓은 재산”이자 “앞 세대가 물려준 사물 또는 문화”이다. 그것은 인간(만)의 흔적이다. 자연이 신의 영역이라면, 문화는 다분히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는, 바닷속이라는 자연 속에 해상 사고로 인해 떨구어진 문화적 유산을 통해서, 그것을 물려받은 주체를 인간으로부터 바닷속 생물들로 전이시킨다. 신의 영역인 자연과 인간의 영역인 문화를 함께 보여주는 그의 바닷속 풍경은 그런 의미에서 인류사에서 단절된 인간의 기억 혹은 망각된 기억들을 소환해 내는 기제가 된다. 
쓰임을 받지 못하고 ‘피치 못하게 버려진 것들’은 우리의 망각된 공동의 기억들을 소환한다. 유산으로서의 그것은 ‘남겨진 것에 대한 기억’의 소환이지만, 이내 우리로 하여금 후배 세대들에게 물려줄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남겨질 것에 대한 기대’마저 낳게 한다. 그의 작품 앞에서 관객들은 깊은 바닷속 풍경을 통해서, ‘유산을 받는 이’와 ‘유산을 전하는 이’들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문제마저 성찰하게 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회화는, 공포의 공간 속에 우리를 초대해 신비한 체험을 가능케 했던 다양한 미디어들의 ‘친숙화’의 효과를 훌쩍 뛰어 넘는다. 바닷속 생물들에 인간상을 투영하고, 그들을 의인화된 주체로 탈바꿈시켜 우리에게 동화 읽기의 기쁨마저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 물고기들은 누구의 가족인가? 누가 아빠이고 엄마일까? 그들의 이름은 각자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 아닌 또 다른 주체이자 육화된 인간으로 나타난다. 그런 면에서 의인화된 생물체들은 그의 ‘동화적 내러티브’에서 현실계와 비현실계를 잇는 인터페이스이자 관객을 초대하는 또 다른 주연이 된다. 결국 그의 회화에 나타난 심해 속 다양한 생물들은 그가 감정을 이입시킨 ‘또 다른 인간 주체’로, 나아가 보편적인 생명 존재의 메타포로 우리에게 소환된다. 
따라서 그들의 삶의 터인 심해는 개별 주체들이 살아가는 인간 사회에 빗대어진다. 그것은 표면상으로는 ‘지금, 여기’의 공시적(共時的) 공간을 떠올리게 하지만, 본질적으로 우리의 망각을 소환함으로써 통시적(通時的) 공간, 즉 역사의 내러티브를 재구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텍스트도 존재하지 않은 채 유물과 유적만이 덜렁 남은 이미지의 유산을 대면하는 고고학적 태도마저 그의 작품에 담겨 있다고 할 것이다. 
역사에서 사실적 진술들 사이에 비워져 있는 공간은 무엇으로 메꾸는가? 당연히 역사가의 상상적 내러티브이다. 애초부터 허구적 세계 창출에 골몰하는 화가 최영근에게 있어 이러한 상상적 내러티브는 ‘사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사물들에 이름을 부여하고, 그들의 ‘바다 이야기’를 구성해내는 화가의 근본적 동력이다. 연결 고리 없는 유적, 유물들은 물론 바닷속 생물들과 풍경들을 작가만의 상상력으로 이어내는 막힘없고 자유로운 상상력 말이다. 관객인 우리로서는 그의 이러한 상상력이 앞으로 어떻게 흥미롭게 전개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 

출전 /

김성호, '심해로부터 건져 올리는 망각의 유산과 생명 존재의 메타포', (최영근 전, 2016. 9. 24-10. 28, 의령예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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