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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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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 명 : 핑크빛 현재 (2012 안국약품(주) GALLERY AG 신진작가 공모전)
전시 일정 : 2012.12.3. - 2013.1.11
초대  일시 : 오프닝: 2012. 12.7 (금) pm6~

관람  시간 : 월-토 10:00am~06:00pm 일,공휴일 휴관

 

 

_작가노트

 

 나는 양면성에 관심이 있으며 산호빛 형광 핑크색을 테마색으로 그린다. 최근에는 ‘핑크빛 현재(A Glorious Present)’ 라는 주제로 우리가 쉽게 생각하게는 핑크빛 삶의 가능성 혹은 지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늘 꿈꾸는 핑크빛 미래란 과연 올 수 있는가에 회의를 가지면서, 찬란하게 빛나는 미래란 모순적 단어의 조합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여기 현재에서 핑크빛으로 대표되는 욕망의 단상을 찾고자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도시, 관계를 주로 다루었다. 그러나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결코 온전할 수 없고, 배열을 바꿈에 따라 다른 이미지가 나타나는 연속그림을 통해 하나로 채워진 것 같았지만 결코 진정한 하나가 될 수 없는 욕망의 원리와 양가적 가치의 공존을 나타낸다. 또한 한 장면으로 제한된 회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해석에도 여지를 주려 한다. 
          
비현실적이고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형광 핑크색은 매혹적인 아름다움과 강박감을 동시에 지닌다. 핑크색으로 치환된 인체, 건물, 물의 이미지 등은 사실적인 형태이지만 현실에서 불가능한 색으로 치환되어 더욱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된다. 그림의 4방향 옆면, 혹은 특히 윗면에 나의 테마색을 칠했다. 회화의 평면성 안에 숨겨져 사진과 도록으로는 볼 수 없지만 전시장의 하얀 벽과 만나면 신비로운 핑크빛을 반사할 것이다. 마치 그림이 살아있으면서 빛을 뿜는 것 같이 만드는 이 색의 아우라는 나의 시그니쳐이고 잠재된 욕망의 발현이다. 나는 이 핑크색을 쓰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도시남녀의 핑크빛 현재

 

이선영(미술평론가)

 

이예희의 ‘핑크빛 현재(A Glorious Present)’ 전의 주조색은 자연은 물론이고, 인공에서도 드문 형광 빛 분홍이다. 달콤한 환상을 연상시키는 색깔에 찬란한 광휘까지 더해진다. 그러나 이중 긍정은 좋은 것의 곱빼기가 아니라, 좋은 것의 그렇지 않은 이면을 드러낸다. 캔버스 틀에 바른 산호 빛 형광 핑크색은 하얀 벽을 바탕으로 빛을 발해, 그림의 아우라를 부여한다. 빛과 만난 핑크는 신비로운 생명력을 발산한다. ‘핑크빛 현재’는 일상어에서 많이 사용하는 ‘핑크빛 미래’와 관련이 있다. 미래가 현재로 전치되면서, 기대 반 회의 반인 ‘핑크빛 미래’는 역설적 풍자로 곤두박질친다. 이예희의 어법에서, 핑크와 현재가 결합되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핑크빛 미래를 향한 일률적 욕망은 핑크빛이라고 할 수 없는 역설적 현재를 낳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의 평균적인 삶은 어떤 의미에서는 핑크 빛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현재가 아닌, 미래에 온통 저당 잡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건전한’ 사회인은 근 30세까지 미래를 향한 투자에 매진하고, 그 이후의 30년간은 자식이라는 미래에 전력투구하는 전형적인 삶을 영위한다. 근면 성실 및 미래를 향한 건설적 투자라는 그럴듯한 도덕적 경제적 가치와 결합된,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기적인 그 욕망은 질곡의 현실을 유지하는 가장 큰 세력이다. 개념미술이 말하는 식으로 ‘모든 것이 예술, 모두가 예술가’라고 아무리 외치고 싶어도, 심미적 현재가 없는 삶에서 예술의 입지는 너무나도 좁다. 유예된 현재를 대신 채우는 것은 잡다하고 자잘한 욕구의 만족일 뿐이다. 핑크빛 미래를 향한 노력은 현재는 물론, 미래 또한 결코 핑크빛일 수 없다는 진실을 예시한다. 이예희의 ‘핑크빛 현재’ 전은 현재라고도 미래라고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허구에 매달리는 삶의 단면을 그린다. 핑크빛일 수 없는 상황과 상태를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인 작가가 세상을 보는 관점은 다소 비관적이다. 전시부제에 포함된 ‘현재’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자괴감’을 나타낸다. 아름답지 않은 현재를 대변하는 것들은 ‘도시, 인간관계, 부, 지식, 결혼, 자녀 양육 등’에 관한 문제들이다.


그 모두가 욕망과 관련되는 테마이며, 이번 전시에서는 도시와 남녀관계에 집중했다. 도시는 어느 장소보다도 이성을 포함한 타인과 마주칠 기회를 주지만, 각자 맡을 역할 연기의 그럴듯한 무대를 제공할 뿐이다. 나르시시즘에 빠져 온통 자신이 주인공인 어떤 각별한 사건들도 모두 비슷한 스토리와 결말을 가지는 통속 드라마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편 핑크는 작가 개인에게는 긍정적인 색이다. 이예희는 자신을 ‘산호 빛 형광핑크색을 테마 색으로 사용하여 작업하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여성이지만 훤칠한 키에 분홍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그녀에게 분홍은 ‘숨겨진 욕망과 정체성’이다. 여행가서 무의식적으로 고른 물건들은 거의 핑크색이었으며, 다른 주제를 그려도 핑크색은 계속 가지고 갈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핑크는 자신에게 억눌린 부분을 분출하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정체성을 상징하게 되었다. 물론 이예희의 핑크는 변형되어 있다. 보통 핑크는 여성적이지만, 그녀의 핑크는 형광색이다. 아름답지만 강박적이고, 여성적이지만 강력하다.


도시 풍경과 남녀관계를 표현한 이번 전시에서, 핑크는 시멘트와 유리로 이루어진 현대 도시의 회색 및 에메랄드빛과 대비를 이루며, 영원한 사랑이라는 믿음을 환상으로 변질시킨다. ‘핑크빛 현재’라는 역설적 표현은 분홍이 가진 양면성과도 관련된다. 에바 헬러는 [색채의 유혹]에서 분홍이 독자적인 색인가를 묻는다. 그것은 빨강과 흰색 사이에 놓인 중간색에 불과하다. 분홍은 붉은 색 열정과 하얀색 순수 사이에 구름처럼 떠 있는 비현실적인 색이다. 분홍의 양극단에 있는 빨강과 흰색은 힘과 연약한 부드러움의 대립, 적극성과 수동성의 대립, 불과 얼음의 대립인데, 분홍은 그 양극단의 이상적인 중간에 위치한다. 뜨거운 색과 차가운 색이 혼합된 분홍은 타협의 미덕을 상징한다. 녹색이 식물의 색, 빨강이 동물의 색이라면 분홍은 어린 생명의 색이다. 그래서 분홍은 언제나 달콤한 사탕의 색이자, 즐거움의 색이었다.


에바 헬러에 의하면 분홍을 보면 달고 부드러운 맛이 기대된다. 후각적으로도 분홍은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장미 향기를 연상시킨다. 책의 표지가 분홍색이면 달콤한 삼류 연애소설을 떠올리게 된다. 분홍은 피부를 떠올리기 때문에 에로틱하다. 누드는 분홍을 배경으로 할 때 가장 아름답기에, 에로틱한 침실을 꿈꿀 때 분홍보다 더 어울리는 색은 없다. 이예희의 작품에서 부드러운 중립을 내포하는 분홍에 가미된 형광 빛은 튀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도시풍경을 온통 물들인다. 형태면에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찍었던 사진적 정확성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반면, 분홍은 도시적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변화시킨다. 광화문, 강남역, 서울역 등 대체로 장소가 확인될 수 있는 도시는 색채에 힘입어 신기루같이 붕 떠있다. 게다가 쪼개진 캔버스로 이루어진 장면들은 캔버스의 배열에 따라 가변적 풍경으로 변화한다. 같은 장면이 분열하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한다. 작가는 ‘배열을 바꿀 수 있는 연속 그림 형식을 통해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는 인간의 마음, 하나로 채워진 것 같았지만, 결코 진정한 하나가 될 수 없는 욕망의 원리를 표현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배경과 형태, 분열과 종합 사이에는 따로 또 같이의 원리가 적용된다. 회화와 더불어 전시된 렌티큘러 작품은 배열에 따라 달라지는 이미지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맞붙은 캔버스가 배열을 달리할 때, 하나의 건물은 둘이 된다. 비슷비슷한 구조로 복제되는 도시풍경은 고층빌딩의 유리 피막에 되비치는 공사장의 모습을 통해 진행형으로 보여 진다. 그러한 도시에서의 삶은 스포츠 선수 같은 극한의 경쟁에 내몰려 있다. 그것은 경쟁을 위한 경쟁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게임이다. 건물과 같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화면 속 인물들은 완전을 지향하지만 완전은 순간일 뿐이며, 곧 반쪽이 된다. 도시 풍경에 자연이 개입된 경우, 보다 묵시록적이다. 대도시의 빌딩은 녹아내리는 빙하나 거대한 홍수에 잠겨있고, 사람들은 높은 곳에서 추락하거나 위태로운 다리를 건넌다. 비자연적인 색채인 분홍과 어울리는 몽환적 지형이 등장하곤 하지만, 이러한 이국적 자연풍경에도 불길한 도시적 잔상이 복합되어 있다.


전시 주제의 또 하나의 축을 이루는 인간관계는 분홍의 이중성이 더욱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이 분홍빛 무대에서 애증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작품 [핑크빛 현재; 관계 #1]에서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두 남녀의 배치를 바꾸면 서로 다른 곳 보게 된다. 작품 [핑크빛 현재; 관계 #2]에서 커튼 아래에서 결혼, 또는 구애하는 남녀는 좌우의 캔버스를 바꿔 걸면 냉정하게 등 돌리는 장면으로 바뀐다. 어떤 인간관계보다도 뜨거울 수 있는 남녀 관계는 급랭한다. 서로와의 부드러운 섞임은 드세고 이기적인 자기주장으로 급변한다. 이예희의 작품에서 분홍은 현실세계의 불확실성을 강조하는데, 남녀 관계는 그중에서도 가장 변질되기 쉬운 것이다. 상상과 가상이 융합된 이 백일몽 같은 풍경에서 변치 않는 단단한 기반은 발견되지 않는다. 환상은 펼쳐졌다가 접혀지고, 분리된 것을 종합했다가 해체한다. 캔버스라는 틀은 하나의 구조적 단위가 되어 이합집산의 게임을 행한다. 세상과 인간을 분홍빛으로 물들게 한 것은 단지 현실을 허구화하는 허무한 단계에 머물지 않는다.


이예희의 작품에서 허구화는 세상과의 보다 흥미로운 게임을 위한 전초 단계이다. 허구적 요소는 놀이적 요소와 결합하여 다층의 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 퍼트리샤 워는 [메타 픽션]에서 모든 놀이와 픽션은 한 문맥으로부터 다른 문맥으로의 전이를 설명하고, 문맥들과 의미들의 계층을 수립하는 메타 단계를 요구한다고 본다. 픽션과 놀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메시지로서의 기호들의 집합과 문맥 또는 메시지의 틀 사이의 관계를 교묘하게 조작함으로서, 하나의 대안적인 리얼리티를 구성하는 것이다. 예술은 또 다른 상징적인 세계들을 창조한다는 면에서 놀이이다. 조합과 순열에 의한 놀이의 문제는 메타픽션에서 잘 사용되는 장치이다. 자리 재배치의 유희를 통해 메시지 전달의 언어를 재문맥화 하는 이예희의 작품에서, 캔버스의 위치 및 관객의 시선에 따라 세계는 변화하는 관계들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놀이의 특이성은 일상문맥으로부터의 해방, 즉 무엇인가를 반드시 의미해야 하는 것으로부터의 도피와 해방의 한 형식이다.


이예희의 작품에서 분홍색의 분리된 판은 놀이의 시작을 알린다. 분홍빛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일정한 방식으로 한정짓지만, 일단 작가가 제시한 놀이 원칙을 받아들이면, 거기에서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다. 여기에서 활동이라 함은 상상의 확장을 말한다. 분홍은 지시대상으로부터 탈각된 자유로운 기표가 되어 다양한 의미와 결합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놀이는 새로운 의사소통의 수단이 된다. 이예희의 작품의 특이점은 상상을 사회적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킨다는 점이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남녀관계는 사적인 것을 공적인 것과 중첩시킨다. 그것은 예술처럼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중간에 있다. 개인적 상상이 사회적 상상으로 고양되는 작품의 배경은 자연적 무정부 상태가 아니다. 그곳은 조밀하게 조직된 발전된 도시이며, 이곳에서 인간들은 자신의 본성대로만 살아갈 수 없다.


원초적 자연이나 인간 본성이 아닌, 역사적으로 주어진 시공간과 타자들 사이에서 감각되는 총체적 상황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 내야한다. 그것은 그냥 상상이 아니라, 사회적 상상인 것이다. 찰스 테일러는 [근대의 사회적 상상]에서, 사회적 상상(social imaginary)이란 우리의 동시대인들이 스스로 살면서 유지하는 사회를 상상하는 방식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사회적 상상은 사람들이 흔히 사회적 현실에 관해 자유롭게 생각할 때 떠올리는 그런 지적 도식 보다는, 훨씬 폭넓고 심층적인 어떤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 실존에 대해 상상하는 방식, 사람들이 다른 이들과 서로 조화를 이루어가는 방식, 사람들 사이에서 일이 돌아가는 방식, 통상 충족되곤 하는 기대들, 그리고 그러한 기대들의 아래에 놓인 심층의 규범적 개념과 이미지들이다. 사회적 상상은 소수 지식인들의 전유물인 사회적 이론과도 다르다. 도시와 인간관계를 포함한 이예희의 여러 테마는 사회적 환경을 상상하는 방식에 맞추어져 있다.


환경과 우호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닌, 냉정하게 주변을 되 반사할 뿐인 초고층 빌딩은 모호한 반사면을 통해 사회에서 작동되는 위계질서를 반영하며, 작가는 분홍을 통해 이러한 현실을 삭감시킨다. 삭감은 변환을 위한 조건이다. 변환가능하다는 것은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도 다가온다. 이예희의 많은 작품은 이중적 해석을 낳는다. 분홍은 바람직하지 못한 수직적 구조를 강조하면서도 와해시킨다. 사회 구성원들을 훈련된 개나 서커스의 광대처럼 몰아세우는 현재는 변화를 요구한다. 변화가능성이 누군가에게는 희열이며 희망이다.  남녀 관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곤 하는 이전시대의 위계 서열적 상보성은 자의적 배치에 의해 도전 받는다. 자리 바꾸기 놀이는 추상적 공간 질서를 교란시킨다. 현재의 현실을 분홍빛으로 탈각시키는 작가의 해석적 관점은 일련의 처방으로 이동된다. 여기에서 동일한 원리에 의한 위계구조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평등으로 전환될 때, 분홍은 진정 부드럽고 달콤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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