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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욱: 사물의 숨 -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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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욱 Choi Uk의 작업을 한 문장으로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1990년대에 보여준 그의 초기 작업들은 재생타이어, 그물, 스테인레스 스틸, 납, 거울 등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혼합한 조각과 설치가 주를 이룬다.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공부를 계속했을 때에도 마찬가지. 에든버러 미술대학 대학원에서도 여전히 그의 전공은 회화지만 그가 보여주는 작업은 그냥 일반적인 평면 회화는 결코 아니었다. 멀쩡한 캔버스를 굳이 다양한 면으로 분할하여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고, 그 위로 다양한 오브제를 덧붙이고, 또 다른 콜라주 형식이 가미되기도 하고, 물감이 흘러내린 흔적이나 흩날리는 실오라기로 얼룩진 평범하지 않은 회화작품들. 그렇게 꽤 오랫동안 평면과 입체, 구상과 비구상을 오가며 다양한 실험을 하던 작가는 십여 년 전부터 다시 회화로 돌아와 ‘사물’에 집중한다.  설치, 조각, 콜라주, 드로잉… 그리고 회화. 기법은 다를지라도 최욱의 작업에는 언제나 빠지지 않는 한 가지 테마가 있다. 바로 ‘숨 – breath’이다. 언젠가부터 그의 작품 제목에는 늘 빠지지 않고 ‘숨’이 등장한다. 스테인리스 스틸과 거울로 작업한 설치 작품도, 대형 화면에 말의 머리나 통마늘을 가득 차게 그려낸 캔버스 작업에서도, 또 여백과 푸른잎 식물이 너울너울 어우러지는 대형 회화 작품도 모두 제목은 어떤 숨 a Certain Breath이다.  살아있는 것들이 뿜어내는 기운, 호흡을 회화로 담아낸 그의 캔버스에는 묵직함과 섬세함이 공존한다. 분명히 멈추어 있는 자세의 지극히 정적(靜的)인 말의 머리이건만, 땅에서 뽑힌, 더 나아가 껍질의 수분마저 모두 날아간 이제는 생명력을 잃은 마늘이건만, 이들은 최욱의 회화 안에서 다시 살아나 그 어떤 숨 a Certain Breath을 뿜어낸다. 생명체만 호흡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책, 그릇, 신발, 의자와 같은 사물에서도 호흡을 느끼며 숨결을 불어 넣는 작업을 한다. 스코틀랜드 유학 시절 어느 오래된 건물에 들어 서는데 “그 묵직한 세월의 기운에 돌로 된 벽이 숨을 내 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작가는 이후 십년이 넘게 계속해서 우리 일상에서 마주하는 물건들 - 무생물의 숨을 느끼며 회화에 담아내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런 그의 사물의 숨 시리즈 중 ‘의자’만을 골라 모았다. 미술에서 의자는 독립적으로든 부수적이로든 꽤 많이 다루어져 온 소재이다. 의자 그 자체로서 회화의 대상으로 표현된 작업을 이야기 할 때 아마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빈센트 반 고흐의 빈센트의 의자(1888,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나 고갱의 의자(1888,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소장)를 떠올릴 것이다. 고흐 자신이 사용하던 의자와, 고흐가 동경하고 무안한 사랑을 주었던 동료 고갱이 쓰던 의자를 통해 두 사람의 성격과 두 사람의 관계, 존재와 부재를 이야기하는 이 두 점의 그림은 우리에게 의자라는 사물이 의미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렇다면 최욱의 의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의자는 한 덩어리의 물질에 불과하나 의자는 그냥 사물이 아니다. 의자는 우리 몸과 가장 밀착된 도구이며 직립보행의 고단함을 잠시 덜어주는 역할로 우리와 함께 진화를 거듭해왔다.  공간에 의자가 놓이는 순간 어쩌면 공간과 의자의 대화는 시작되고 의자의 들숨과 날숨은 나직이 공간속에 퍼지면서 더 내밀하게 공간과 하나가 된다.  그 긴장 속에 놓인 의자의 숨소리에 귀기울여본다.  우리가 다가가거나 떠나온 의자는 늘 그 자리에서 한결같은 자세로 공간을 버티며 묵묵히 기다린다. 그러나 우리가 막 떠나온 의자에는 약간의 몸의 자국이나 체취의 페르몬이 떠돌다 온기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언젠가 잊혀질 우리처럼.”  - 작가 노트 중에서


  무엇보다도 최욱의 의자들은 캔버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공간에 대한 지배력으로 먼저 우리를 압도한다. 벽과 바닥만이 구분되는 단순한 빈 공간에 우뚝 자리 잡고 있는 의자. 어떤 의자는 정면으로, 어떤 의자는 살짝 비스듬히, 또 어떤 의자는 후면에서 비스듬히 바라본 모습이다.  어떤 의자는 화면의 정 중앙에, 또 어떤 의자는 한쪽으로 쏠려서, 때로는 화면에서 조금 잘려 나간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의자들은 조화롭고 스스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 하면서 한 편으로 우리에게 와서 편히 앉으라며 손짓하는 듯 하다. 의자는 우리 생활에서 어쩌면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사물이다. 걸어 다닐 때와 누워 잠잘 때를 제외하면 우리는 의자에 앉아서 일하고, 밥먹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또 이야기를 하며 다양한 활동을 한다. 이동할 때 조차 우리는 의자의 힘을 빌어 안자 있는 것을 선호한다. 작가가 이야기 하듯 의자는 직립 보행의 고단함을 잠시 덜어주는 사물인 것이다. 그런 의자와 함께 호흡하고 그 숨결을, 들숨 날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그리고 최욱의 그림은 그저 당연한 존재로 여겨왔던 의자가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를, 공간에게 하는 이야기를 느끼고 들을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시작은 의자의 숨결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작가가 회화의 힘으로 사물의 숨을 캔버스에 담아냈기에 가능한 일이다. 구도는 단순하지만 평범하지 않고, 색감은 부드럽고 조화롭지만 분명한 강약이 느껴진다. 주인공인 의자의 형태는 단순화 된 것 같으면서도 디테일이 살아있어 작가의 필력이 잘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빛과 그림자의 조화 – 빛을 받아 살짝 반짝이기까지 하는 의자와 그 의자가 비쳐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소통과 조화는 의자의 호흡을 때로는 강하게, 그리고 때로는 부드럽게 조절해준다. 의자 본연의 숨과 이를 담은 캔버스 속 의자의 숨,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숨. 최욱은 이렇게 “쉼 없는 안과 밖의 소통이며 관계 맺음의 근본”인 숨을 통해 사물과, 회화와, 나 자신과, 우리와, 그리고 주변과의 소통을 찾아가고 또 다른 숨을 부여한다.


  그렇게 회화로 담아내는 사물의 숨, 묵직함과 섬세함이 공존하는 최욱의 의자에는 “다양한 재료의 오브제와 설치 등 입체 작업에서 돌아와 드로잉과 회화의 숙명적 세계에 마주하며 회화의 힘과 그 매력의 건재함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처럼 회화의 강하고 깊은 숨과 힘이 느껴진다.


 유난히 스산하고 어수선한 11월, 도로시 살롱에서 최욱의 <CHAIRS 사물의 숨 – 의자>를 통해 지금까지 당연하고 지극히 평범하게 바라보았던 의자들이 회화의 힘으로 다시 태어나 뿜어내는 어떤 숨을 느껴보며 다양하고 편안하게 소통하는 나만의 ‘그림을 찾아가는 시간’을 만들어 보기를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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