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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욱 전: 지리산 가는 길

  • 전시분류

    개인

  • 전시기간

    2020-10-18 ~ 2020-11-18

  • 참여작가

    임채욱

  • 전시 장소

    악양작은미술관,지리산 실상사

  •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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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점·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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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욱 지리산 가는길

2020.10.18(일)-11.7(토)
지리산 실상사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길 94-129
주최 | 지리산프로젝트 추진위원회
후원 | 실상사, 사단법인 숲길, 아트제

2020.11.8(일)-11.18(수)
악양작은미술관
경남 하동군 악양면 악양동로 176 악양생활문화센터
협력 | 지리산문화예술사회적협동조합 구름마


< 지리산 가는 길> 
임채욱 작가 노트

1.지리산 종주로 시작된 인연 

10년 전 작업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에 지리산 노고단으로 갔다.
우연히 노고단에서 지리산 종주를 향해 질주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 순간 충동적으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지리산 종주를 감행하고야 말았다. 내 생애 첫 지리산행이 종주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1박 2일간의 힘겨웠던 지리산 종주는 내 몸에 많은 상처를 남겼지만,
산을 주제로 작업하는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2016년 실상사 지리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된 3박 4일간의 지리산 종주에도 참여했다. 두 차례의 지리산 종주는 지리산 작업에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이 지나도 지리산 작업은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지리산이 규모가 큰 탓도 있었지만, 설악산과 북한산보다 시선을 끌 만큼 매력적인 기암절벽이나 풍 광이 별로 없어 사진으로 풀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설악산과 북한산 인수봉 전시회를 먼저 열었고 지리산은 그 다음 차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지리산과 인연을 맺은 지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작업의 실마리가 비로소 조금씩 풀리기 시작 했다. 


Blue Mountains 2004,107x30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Hanji, 2020


2.지리산 둘레길과 평사리 

지리산 둘레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섬진강을 보면서 걷는 하동의 평사리다. 2008년부터 ‘지리산’보다 ‘평사리’ 작업은 먼저 시작되었다. 
2009년 ‘정태춘 박은옥 30주년 기념’으로 열린 전시회에 평사리 부부송을 작품으로 선보였다.
그 이후에 2012년 새 앨범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가 발표되었고 정태춘 선생님께서 사인한 CD를 직접 선물로 주셨다.
그 앨범에 수록된 노래 중에서 특히 ‘섬진강 박 시인’을 좋아했고 평사리에 갈 때마다 그 노래를 즐겨 듣곤 했다. 
그런데 최근, 평화롭던 평사리에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평사리 동정호에는 촌스럽게 빨간색 하트 모양의 다리가 만들어졌고 아름답던 초 록색 들판에는 알프스 하동을 새겨 불길한 조짐이 감지되고 있었다.
결국은 평사리 들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형제봉에 산악열차를 설치하려는 알프스 하동 프로젝트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국립공원 1호 지리산에 생태 환경을 훼손하는 시대착오적 개발 사업인 산악열차가 웬 말인가! 

Jirisan 2032, 107x16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Hanji, 2020



3. 도법스님과 실상길 

도법 스님께서 295km나 되는 지리산 둘레길을 만드신 지도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최근에 실상사 앞마당에 작지만 특별한 길을 만드셨다. 
양쪽으로 기왓장을 포개어 만든 좁은 길이라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다. 
함께 동행했던, 절에 근무하시는 보살님께 기왓장을 양쪽으로 펼쳐 놓은 이유를 여쭈었다. 도법스님께서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고 만드신 의미를 설명해 주셨다.
그 이유를 듣고 보니 기왓장을 따라 그 길을 천천히 걸어 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기와를 밟지 않으려 고 조심스럽게 걸었는데 어느 정도 걷다 보니 곧 익숙해졌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실상사 경내를 산책해 보니 마치 내가 수행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도법 스님께서 기왓장으로 길을 만드신 의미를 조금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 길을 실상길이라고 부른다.
문득, 실상길을 걷다가 『지리산 가는 길』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Jirisan 2063, 107x16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Hanji, 2020



4.코로나 시대의 지리산 예술길 

지리산 예술길은 실체가 있는 길이 아니라
지리산의 상징적 의미를 동시대의 예술로 표현하기 위한 개념적인 길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Covid-19)로 인해 고통을 받는 지금, 나의 지리산 작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흔히 우리는 지리산을 어머니의 산이라고 부른다.
어머니가 자식을 품어 주듯 지리산이 동시대의 예술을 품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대면 사회, 초연결성, 공유 네트워크, 스마트 시대를 모두 품을 수 있는 그런 <지리산 예술길>을 만 들고 싶었다. 
2년 전 을지로 작업실에서 유튜브로 영상을 보기 위해 빔프로젝터를 켜고는 커피를 내리느라 전동 스 크린을 내리는 것을 깜빡했다. 그 순간 빔프로젝터에서 투사된 자동으로 바뀌는 배경화면이 전동 스 크린 자리에 걸려 있던 지리산 작품과 오버랩되었다. 잠시 후 오로라 배경화면이 지리산과 오버랩되 는 순간 환상적인 풍경이 만들어졌다. 그때 뭔가 재밌는 작업이 될 것 같다는 직감이 왔다. 
그래서 유튜브 영상도 지리산과 오버랩을 시도해 보니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매칭되는 느낌이 들 었다. <지리산 예술길> 작업의 아이디어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지리산 예술길에서 가장 중요한 컨셉은 고정된 형식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소리나 음악, 유튜브 영상을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맞춤형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의 액자 전면에는 ‘한지에 프린트한 지리산 사진’이 있고 후면에는 소리에 반응해서 빛이 변하는 ‘스마트 LED’가 탑재되어 있다.
작품의 앞쪽에는 빔프로젝터를 설치하여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투사할 수 있다. 관객이 직접 소리나 음악을 들려주고 작품의 색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유튜브 영상으로 오버랩해서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관객이 직접 제작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코로나 시대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지리산 예술길>로 산책을 떠나 보는 건 어떨까. 


Jirisan S01, 100x177cm, Smart Lighting, Archival Pigment Print on Hanji, 2020







실상사 가는 길

글 : 최연하(독립큐레이터, 사진평론가)

그때가 스물두 살이었을까. 나는 홀연히 실상사에 들었다. 남원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탄 버스는 운봉읍을 경유해 산내면까지 완행하였다. 남원에서 운봉으로 가는 길은 차멀미를 일으킬 만큼 구불구불하였는데, 운봉에서 산내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산길이어선지 꽤 시간이 소요된 듯하다. 전주에서 출발해서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산내면에 도착해, 다시 물길과 나란하게 뻗은 아스팔트를 따라 실상사 푯말이 나올 때까지 한참을 걸었다. 길의 오른쪽으로 넓은 시내가 흘렀고 큰 바위들이 냇가 곳곳에 툭툭 놓여 있는 것이 신기했다. 고요한 강가에서 유년을 보냈던 내겐 심상치 않은 풍경이었다. 실상사로 가기 위해서는 그 냇물을 건너야 할 것 같은데, 마침 ‘무지개 구름’같은 아치형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다리를 건너면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처럼 신묘한 기운이 돌았다. 벙거지모자를 쓴 눈이 부리부리한 석장승과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다리를 건너니 길 양쪽으로 두 기의 석장승이 본격적인 검문을 하듯 엄한 눈으로 바라본다. 나도 눈을 크게 뜨고 장승을 바라본 후, 논둑을 따라 지그재그로 걸었다. 실상사 천왕문을 지나자 누군가 나를 맞이해준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때부터 계절이 바뀌는, 봄에서 여름까지, 그 절에 있었다. 달리 할 일이 없던 나는 공양간에서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를 열심히 했다. 가난하고 남루하고 지루한 봄날, 느린 시간의 한 중심에, 나는 실상사에 있었다. 

실상사에서 지리산을 처음 보았다. 시내를 가로지르던 그 다리 이름은 ‘해탈교’였고, 해탈교에서 보이는 산이 지리산 천왕봉이었다. 그 옆으로 칠선과 백무동계곡이 이어진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읍내에 스님 심부름을 가기 위해 해탈교를 건널 때마다 그 산을 유심히 보았다. 산은 연하고 진한 구름과 신비로운 안개를 동반하곤 했는데 간혹 청명하게 얼굴을 드러내 깜짝 놀랐다. 멀리 있지만 가깝게 다가와 비밀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듬해 봄에 드디어 뱀사골계곡코스로 장터목산장을 지나 천왕봉에 올랐는데 해탈교에서 보았던 천왕봉은 보이지 않고, 다만 약간 높은 봉우리에서 함성을 지르는 무리가 기억에 남는다. 

지리산을 다시 본 것은 놀랍게도 겨울 덕유산에서였다. 눈 쌓인 덕유산 능선을 따라가는데 멀리 지리산이 곁에 있지 않은가. 덕유에서 본 지리는 하늘 바다의 물결 같았다. 부드럽고 유연하고 굵고 선명한 흐름. 순간, 홀연히! 오래전 해탈교에서 본 지리산이 생각났다. 그즈음에 실상사를 다시 찾았다. 실상사가 논 한 가운데 평지에 있음을 새삼 보았다. 곳곳의 유명사찰이 몇 개의 문을 통과하며 높이 올라가야 한다면 이 절은 산내면 한가운데에 화려한 건물도 없이 다만 이웃처럼 나지막하게 있었다. 종무소에서 총무스님께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고(왕년에 나는 이 절에서 밥 짓는 일을 했었다... 등) 하룻밤을 유하는 특권을 얻었다. 그때도 봄이었다. 산기슭 마을에는 진달래가 숨바꼭질하듯 피어있고, 실상사 앞 논둑에는 쑥, 달래, 냉이, 씀바귀가 한창이었다. 도량 곳곳에 옛 주춧돌과 건물터를 발굴하고 있는지 예전의 단아함은 스러지고 뭔가 새롭게 발굴되고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보광전 앞 삼층석탑을 돌아 내가 좋아하는 철부처님(철조여래좌상)께 인사드리고 명부전에서 기도를 한 후, 저녁예불을 드리기 위해 보광전에 미리 가 앉았다. 저녁예불을 알리는 종소리, 풍경 소리, 바람 소리가 법당으로 들어와 한참을 머물다 나간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이 목숨 바쳐 귀의하며 예배를 드립니다)…’오체를 던져 절을 하며 예불문을 읊조린다. 이어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반야심경도 따라 하다 보니 이윽고 보광전에 어둠이 스민다. 산사의 밤은 유독 길고 캄캄하다. 온갖 소리가 요사채의 창호지를 뚫고 들어오니 쉬이 잠이 오질 않았다. 10년이 훌쩍 지나 다시 찾은 실상사에서 생각이 무성해진다. 불안하고 예민했던 스물에서부터 서른을 건너면 나의 ‘실상(實像)’이 보일 줄 알았다. 비 온 뒤 아침, 맑게 얼굴을 선보이는 천왕봉처럼 ‘참나’가 나올 줄 알았나 보다. 다음 날 아침공양 후 방장스님이 우려주신 녹차를 마신다. 실상사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해탈교를 건너며 생각했다. 이 절은 내게 무조건 지복에 이르게 하는구나.

얼핏 잠이 들었던가, 풍경소리에 눈을 뜬다. 또 비가 오려는지 산바람이 세게 불어왔다. 삼 년 전 산 밑으로 이사를 온 후, 산의 계조와 하늘의 채도를 가늠하며 날씨를 헤아린다. 실상사 큰스님이 가르쳐주셨다. 각종의 녹차 이름과 꽃, 들풀, 나무, 날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절로 산기슭 마을로 집을 옮긴 것도, 그리고 이 글을 쓰게 된 인연도 생각해보니 모두 실상사가 근원에 있었다. 임채욱이 실상사에서 사진 전시를, 그것도 ‘지리산 가는 길’을 주제로 한다니 해탈교 옆 석장승처럼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운 실상사를 다시 볼 수 있어서, 무엇보다 실상이 내게 보내는 신호가 희미하게 잡히기에. 실상사 가는 길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몇 해 전엔 임채욱이 인수봉 아래 백운산장에서 전시를 한다고 해서, 한 시간여 산을 올라가 전시를 보았다. 인수봉을 찾았던 산악인들의 쉼터인 백운산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아예 백운산장에 북한산 사진을 들여 저항한 것이다. 고집스런 작가의 사진실천과 모던한 사진형식이 결합하니 그의 진정성은 두터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특별히 산(山) 사진에서 두각을 보이는 것도 자연과 환경에 대한 그의 경외가 사진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임채욱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최상으로 끌어올리려는 지대한 열망에 사로잡혀있다. 그의 사진이 고전적인 것도(고전(古典)이란 단어의 어원은 ‘classicus’, 즉 가장 좋은 것에 속한다는 뜻이 있다.) 모더니즘 사진이 추구했던 프레임(frame)과 톤(tone)의 조화를 놓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의 역사에서 모더니스트들은 엄격한 양식을 추구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일군의 사진가는 흑백의 계조를 인화지에 과학적으로 옮기려는 실험을 거듭한다.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까지 사진으로 재현하려 한 것이다. 온도와 습도, 아주 작은 먼지에도 유독 까다롭고 민감한 사진 재료를 인내하며 다루는 일은 마치 화학실험실의 과학자를 방불케 한다. 임채욱은 사진이 탄생하는 전 과정에 직접 개입한다. 즉 자기 데이터가 확실하니 사진 촬영의 기획에서부터 전시와 출판까지 육중하게 밀어붙인다. 그의 사진적 성취와 꼼꼼하고 성실한 이미지적 감동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의 언급이 있었다. 매번 사진 전시와 사진집 출판에서 그가 보여준 성실함과 노고가 이번 『지리산 가는 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먼저 노고단 숲길로 들어가, 노고단 정상에서 굽이치는 섬진강과 구례마을을 보고, 그 곁에 있는 왕시루봉 전경을 담은 후, 종주를 나선다. 지리산 ‘종주길, 둘레길, 실상길, 예술길’ 위를 걷는 사진가 임채욱에게 지리산은, ‘지이智異’가 안은 의미 즉, 지혜로움과 특별함을 부여한 것이리라. 열정은 언제나 지고의 자유를 이루듯, 설악산과 북한산,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임채욱의 사진산맥이 자유롭고 활달하다. 

내게 실상사는 작은 공양간에 울려 퍼지는 도량석 목탁소리로 기억된다. 사람 사는 마을에서 동떨어져 멀리 산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 한가운데서 사람을 ‘살리고 깨우는’ 곳, 육바라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게 지켜주는 곳, 함께 보리살타를 이루는 곳이었다. 실상사에 지리산이 있었다. 실상사 가는 길은 존재의 길이었다. 실상사에서 열리는 임채욱 사진전 <지리산 가는 길>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를 지리산이 품은 마을들과 함께 자꾸 생각하게 된다. 임채욱 사진가가 평사리와 형제봉, 왕시루봉과 노고단, 섬진강으로, 지리산 산속 깊숙이, 산 둘레에 계속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도 헤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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