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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공주이시대의 작가전, 정영진:소나무가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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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정영진이 만드는 「소나무가 있는 풍경전」


 


김병호


 


화가 정영진을 움직이는 힘은 호기심이다. 긴 시간 동안 세상을 떠돌게 한 것도 호기심이고 고향인 공주로 돌아와 마음의 뿌리를 내리면서 우리 땅과 자연을 탐색하게 만든 원동력도 호기심이다. 또 글이나 영상, 사진 등 다양한 장르를 떠돌며 표현 양식을 연구하다가 그림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탐구하게 한 힘도 호기심이다. 그 호기심은 이제 소나무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화가 정영진의 고향은 공주이다. 고향을 사랑하는 그는 공주에서 성장해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한다. 그중에는 음악카페를 운영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면서 경찰들의 감시가 싫어 접어버린다. 그때 마침 충남대학교에 미술학과가 생기면서 미술의 길에 들어선다.


그가 전하는 미술과의 첫 인연은 흥미롭다. 집안은 보수적인 옛 분위기인데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바깥출입마저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을 살았다. 이런 어머니에게 어린 아들 정영진은 세상과의 어머니를 연결하는 끈이었다. 아들에게 어떠한 제한도 가하지 않고 자유롭게 키웠던 어머니는 집밖에서 신나게 경험을 쌓고 돌아온 아이에게서 세상 이야기를 들었고, 아이는 그림일기를 쓰고 그리며 세상을 표현했다. 이 과정은 어머니에게는 큰 위안이었지만 아이 정영진에게는 세상을 경험하고 풀어놓는 표현력을 쌓는 계기가 되었다. 


성장한 그는 그렇게 화가가 되었고 다시 세상을 떠돌았다. 그리고 얼마 전 돌아온 그는 다시 그림으로 세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긴 여정에서 그가 들고 온 대상은 소나무이다.


세상을 주유하며 화가는 자연을 보았고 또 소나무를 보았다. 중국에도 일본에도 소나무는 있지만 우리 소나무는 달랐다. 한국의 바람을 맞으며 한국의 물을 끌어올리고 한국의 땅에 뿌리를 박은 적송은 바로 한국의 역사였다. 우리 적송에서는 뿜어 나오는 열기를 느낄 수 있고 널리 뻗치는 혈기를 느낄 수 있었다. 구불구불하게 휠망정 버티고 올라가 하늘을 머리에 얹은 소나무의 모습은 수많은 변화와 역경을 그대로 몸에 담고 이를 승화시키는 치유였다. 화가에게 우리 소나무는 이 땅에서 삶을 가꾸어온 우리들이었고 우리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소나무는 바로 우리 정체성으로 다가왔다. 소나무는 여기서 다시 우리 스스로를 치유하는 주체로 거듭난다. 주체가 가진 이 건강한 힘은 바로 땅의 힘이고 자연이 가진 내적인 힘이다.


이렇게 자연은 예술의 어머니가 되어준다. 예술가는 자신이 자라며 보고 느낀 것을 정서에 담는다. 이것을 화가는 ‘보편의 진리’라고 말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와 살 부비는 것들이야말로 소중한 것으로 우리 정체성이 되고, 그래서 치유의 샘물이 되는 것이다. 


이제 화가의 그림을 본다. 먼저 소나무와 풍경에 주목해야 한다. 소나무는 구도의 중앙에서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역사를, 정체성을, 땅의 조용한 외침을, 자연의 힘을 들려주는 주체로 나선다. 스스로의 목소리로 굽이치며 현실을 말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다른 그림에서는 구도의 변방에서 풍경을 바라보면서 사색하고 해석하는 자연의 인식체가 된다.


반면 풍경은 전반적으로 살짝 뒤로 물러앉아있다. 디테일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분위기로서 땅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종교적 성화에서 느끼는 성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로 아련하다.


이렇게 소나무가 풍경을 바라보는 경우 그림을 보는 이는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을 가진 소나무가 된다. 우리가 현재에서 겪는 특수한 상황을, 우리의 시대성을 가진 주체로서 소나무가 되는 것이다. 소나무가 되어 풍경을 바라보고 해석한다.


이제 소나무와 풍경의 관계를 바라본다. 소나무가 현실을 웅변한다면 풍경은 이데아를 속삭이고 있다. 소나무가 스스로의 몸으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면 풍경은 역사가 나아가야할 이상사회를 가리키고 있다. 소나무가 특수한 상황 속의 시대적 양상을 드러낸다면 풍경은 시간에 변하지 않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 둘의 관계는 서로 다른 듯, 반대인 듯하나 세계를 떠받치는 두 기둥을 상징하면서 이들이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도 따뜻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화가 정영진의 작업을 따뜻한 변증법이라 부를 수 있다. 소나무와 풍경으로 대변되는 현실과 이상이 서로를 바라보고 거리를 유지하며, 때로는 누르기도하고 때로는 서로를 보듬으며 상승하고 있다. 어두울지언정 차갑지 않고 밝을 때에도 과하게 뜨겁지 않게 한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화가 정영진의 색채도 이러한 관계와 운동에 부합하고 있다. 소나무를 구성하는 색은 다채로우면서도 차분하게 실존을 구성하고 있고 풍경은 밝아도 가볍지 않으며 어두운 경우에도 무겁지 않다. 색들이 이루는 이러한 조화와 서로를 떠받치는 상생의 구조는 화가의 신념에 기인한다. 그림이 보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그의 소나무와 풍경은 보는 이를 안아 토닥이면서 치유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일은 단순히 손으로 만드는 기술로는 할 수 없다. 칠하는 일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아야 가능한 일이다. 손이 대신하는 작업이지만 영혼을 담지 않고는 감동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상처가 많아도 꿋꿋하게 서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여유를 찾을 수 있고 한겨울에 봐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상을 찾을 수 있다. 그의 믿음대로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품을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화가 정영진은 우리 소나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우리가 바라보는 우리 소나무와 외국인이 바라보는 우리 소나무의 느낌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한 것인데, 환경과 문화의 다름을 원인으로 하는 이 차이는 문화적으로 상당한 가치가 있다. 우리 정체성을 대변하는 우리 소나무가 외국인에게는 아주 새로운 문화 상품으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화가 정영진의 그림에 가까이 다가서면 익숙했던 우리 주변의 자연과 사물들을 다시 느끼며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정영진의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고유의 그림이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둑으로 말하자면 정영진 류가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화가는 쉼 없이 자신 그림의 깊이와 싸워나갈 것이다.


최근에 정영진의 작업실에 화재가 있어 물감 튜브 몇을 제외하고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이런 일에서도 화가는 깨우침을 얻는다. 자신과 그림과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한 것이다. 진정으로 남겨야할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그림인지 그림에 담긴 진실인지 고민한 것이다. 이 끝없는 싸움의 결과물은 다음에 보여줄 그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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